‘수운잡방’을 저술했던 순천김문 김유 집안의 ‘보경가주(寶卿家酒)’

박록담의 복원 전통주 스토리텔링(32) 溫故知新

 

<수운잡방>을 저술했던 순천김문 김유 집안의 ‘보경가주(寶卿家酒)’

 

 

고두밥 펼쳐 식히기‘보경가주(寶卿家酒)’는 <수운잡방(需雲雜方)>에 유일하게 수록된 전통주이다. ‘보경가주’가 <수운잡방>에만 등장한다는 얘기는 <수운잡방>을 저술했던 순천김문 김유(1481-1552) 집안의 가양주였다는 것을 뜻한다.

주품명에서도 ‘가주(家酒)’라는 암시를 볼 수 있듯이 이 술은 <수운잡방>의 저자 가문 외에는 전파되지 않은 가양주로서 자리매김 되었고, 언제부턴가는 맥이 끊기고 자취를 감추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보경가주’라는 주품명에 얽힌 유래나 기원은 알 수 없다. 다만, ‘보경가주’의 제조 과정을 통하여 주품명에 얽인 유래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나, 확실하지는 않다.

‘보경가주’의 제조 과정을 보면, 찹쌀 2말을 씻어서 독에 담고 끓는 물 1말을 부어 4일간 불린다. 이 과정에 찹쌀은 몹시 불어서 반쯤은 익고 반쯤은 생쌀이 되는데, 4일간 불리다 보면 쌀에서 붉거나 주황색의 곰팡이와 함께 구린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때 쌀은 부식이 많이 이뤄진 상태여서 냄새를 맡을 수 없을 정도인데, 이 쌀을 헹궈서 시루에 쪄서 고두밥으로 익히게 되면 고두밥은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게 되고, 냄새 역시 가시지 않는다. 이 고두밥을 다시 끓는 물과 섞어서 죽처럼 만든다. 밥은 싸라기 죽처럼 되는데, 좋지 못한 악취와 함께 손으로 만지기 싫을 정도가 된다.

범벅 혼화하기이렇게 하여 죽이 식어, 누룩 2되를 섞어 버무리면 쉽게 묽은 죽이 되고 부드러워진다. 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7일 정도 발효시키면, 밥알이 떠오르면서 술이 익는다. 술덧의 상태를 보아가면서 주면 위로 떠오른 고두밥알을 조리로 건져서 그릇에 담아두고, 남은 술덧은 체에 비벼 짜서 탁주(濁酒)로 거른 후에 건져두었던 밥알을 섞어서 마신다.

‘보경가주’를 빚어본 사람이면 경험했겠지만, 술을 빚는 과정에서 맡게 되는 기분 나쁜 냄새와 손에 와 닿는 느낌에 극도의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어떻게 이렇게 나쁜 냄새 나는 원료로 술 빚을 생각을 하게 되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고, 또 발효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면 한결같이 “그렇게 기분 나쁜 냄새가 나던 술에서 어떻게 이렇듯 좋은 방향(芳香)이 생길 수 있을까” 하고 감탄했을 것이다.

이처럼 술을 빚을 때의 느낌이나 생각과는 달리, 술이 익는 과정과 술이 완성되었을 때 그 맛과 향기를 경험한 사람이면, ‘보경가주’의 매력에 빠졌을 법 하다. 따라서 ‘보경가주’는 정말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맛과 향기가 매우 뛰어난 주품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보경가주’도 몇 가지 단점이 있는데, 무엇보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 저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빠른 당화를 위해 인위적으로 쌀을 부식시키는 방법을 취하고 있어, 당농도가 높아 부드럽고 맛있긴 하나, 실질적인 알코올 도수는 낮은 술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방문 말미에 “생수는 일체 금하라”고 하는 주문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범벅 밑술 입항주방문에 “그 맛이 매우 좋다.”고 한 것을 목격할 수 있는데, 더운 여름철이 아니면 그 맛과 향을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차역하일주(此亦夏日酒)’라고 하여 “이 방문 역시 여름철에 빚는 술이다.”고 소개하고 있는 까닭도 쌀을 부식시킬 수 있는 조건이 무덥고 습한 여름철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밥알을 띄워 마신다고 한 근거를 바탕으로 ‘동동주(浮蟻酒)’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사실 ‘동동주’는 맑은 청주(淸酒)의 한 가지이고 ‘보경가주’는 탁주이므로, 전혀 다른 술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경가주’가 왜 한 가정의 가양주로 국한되어 빚어졌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술 빚는 과정을 본 사람이나, 직접 술을 빚은 사람까지도 그 냄새와 죽의 색깔 등에 대한 느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렇듯 기발하고 다양한 술 빚기가 우리의 가정과 가정주부들에 의해 개발되고 가문의 전통과 자랑으로 뿌리내려왔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게 되고, 또한 소중히 기록되어 오늘날에 그 현장을 목격하는 것 같은 사실감을 보여준다고 하는 점에서 기록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 보경가주 <수운잡방(需雲雜方)>

술 빚는 법:①찹쌀 2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 건져서) 술독에 담아 안친다. ②물 1말을 팔팔 끓여서 더울 때에 술독에 쏟아 붓고, 따뜻한 온돌방에 3일간 둔다. ③4일째 되는 날 불린 찹쌀을 건져 시루에 안쳐서 푹 익은 고두밥을 찐 다음, 끓인 물 4병을 넣고 주걱으로 저어 죽처럼 만든다. ④죽처럼 된 고두밥을 넓은 그릇에 퍼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⑤고두밥에 누룩 2되를 넣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⑥새 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7일간 발효시킨다. ⑦밥알이 뜨면 건져두고, 술은 체에 걸러 찌꺼기를 제거한 탁주를 만든 다음, 건져둔 밥알과 함께 다시 술독에 담아 7일간 숙성시킨 후 마신다.

* 주방문에 “쪄낸 고두밥에 끓인 물을 섞어 죽처럼 만든다.”고 하였는데, 죽이 아닌 진 고두밥 상태이다. 또 주방문 말미에 “차역하일주(此亦夏日酒)”라고 하여 “이 방문 역시 여름철에 빚는 술이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 맛이 매우 좋다.”고 하고, “생수는 일체 금하라.”고 하였다.

 

 

 

술을 빚은 지 15일이면 술이 익어 마실 수 있는 ‘보름주’

 

<양주(釀酒)>의 ‘보름주’는 ‘십오일주’이다. ‘보름주’의 의미를 찾자면 “술을 빚은 지 15일이면 술이 익어 마실 수 있다.”는 뜻에서 유래한 주품명이라는 것이다. 민간에서 15일을 ‘보름’이라고 한 데서 ‘보름주’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 여겨지며, 고령의 ‘스무주’와 상주의 ‘백일주’, 공주의 ‘계룡백일주’, 고흥 포두의 ‘백일주’ 등 민간의 전승가양주를 떠올릴 수 있다.

한편 전남 해남 지방의 계곡면을 중심으로 이웃하고 있는 옥천면, 해남읍 연동, 마산면 일대에서 ‘보름주’가 가양주로 전승되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중 계곡면 덕정리의 나주임씨 가문에 전승되고 있는 전남도 ‘해남진양주’가 대표적인 ‘보름주’로 전남도 지정 무형문화재(기능보유자 최옥림)가 되었다.

<양주>라는 시대 미상의 한글 문헌에 수록된 ‘보름주’는 해남 지방에서 전승되고 있는 ‘보름주’를 수록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해남진양주’와 술 빚는 법이 유사한 것을 볼 수 있으며, 필자도 어렸을 적 고향에서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30여리 떨어진 덕정리까지 술심부름을 다녔던 기억이 있다.

‘해남진양주’의 달짝지근한 맛에 빠져 홀짝거리다 보면 금세 술주전자는 바닥이 나기 마련이어서 줄어든 술 때문에 어른들께 야단을 맞기 십상이거니와, 다시 30리 길을 다녀와야만 했다. 이에 주인은 작은 병에 술지게미를 담아주면서 “술 마시고 싶거든 가는 길에 논물을 섞어 마시고, 이 술에는 손대지 말라.”고 이르던 기억이 새롭다.

그 방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멥쌀 1말 1되에 누룩가루 1되(또는 1되 2홉)와 물 1말 1되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으며, 술이 발효되면 물 1말 1되를 끓여서 차게 식힌 후 후수(後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해남진양주’를 비롯하여 민간의 ‘보름주’는 집안의 형편에 따라 멥쌀이나 찹쌀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누룩의 양은 밑술에 한 차례 2되까지 사용하고, 발효된 후의 후수 양은 5되에서 1말까지 집안마다 그 양이 다르다는 점에서, <양주>의 ‘보름주’가 해남 지방의 ‘보름주’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름주’를 비롯하여 <양주>에 수록된 13종의 주방문은 전라남도 일대에서 빚어졌던 토속주이자, 전남의 해남 지방을 세거지(世居地)로 한 양반 가문의 가양주를 수록한 문헌이라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양주>의 ‘보름주’는 밑술의 죽을 쑬 때 오래 끓여서 죽이 끈적거릴 정도로 퍼지게 익혀야 하고, 반드시 차디차게 식힌 후에 누룩과 섞고, 덧술도 고두밥을 무르게 익히고 차디차게 식혀서 사용하는 것이 비결이다. <양주>의 ‘보름주’는 밑술에서 자주 실패하는 경우를 보는데, 그 이유가 죽이 고르게 쑤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으로서 결국 산패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죽이 고루 익지 않는 경우 주발효가 길어지거나 1차 냉각 후의 후발효 또는 후숙 과정에서 재차 발효가 활발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렇듯 밑술의 상태가 불량하거나 발효가 길어져서 문제가 되는 경우 누룩을 넣기도 하는데, 덧술에 사용할 누룩은 곱게 빻은 가루누룩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후수의 양이 1말일 때는 누룩을 넣고, 물의 양이 5되 정도 또는 그 이하이거나 후수를 하지 않을 때는 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 보름주 <양주(釀酒)>

술 빚는 법:◇밑술:①멥쌀 1되를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밤재워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서 물기를 뺀 후) 작말한다(넓은 그릇에 담아놓는다). ②솥에 물 1말을 붓고 끓이다가, 물이 따뜻해지면 쌀가루를 풀어 넣고, 주걱으로 고루 저어 죽을 쑨 후 (넓은 그릇에 퍼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누룩가루 1되를 찬물(끓여 식힌 물 1되)에 살와(풀어) 차게 식은 죽에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5일간) 발효시킨다.

◇덧술:①멥쌀 1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서) 물기를 빼놓는다. ②불린 쌀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찐다(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고두밥이 차게 식었으면 밑술에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5일간 발효시킨다(익기를 기다린다). ⑤솥에 물 1말 1되를 (백비탕으로) 끓여 (1말이 되면) 넓은 그릇에 퍼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⑥끓여 차게 식힌 물을 가루누룩 2홉과 함께 밑술에 붓고, 다시 예의 방법대로 하여 (5일간) 후숙시킨다. ⑦술의 발효가 잦아들고 술덧이 맑게 가라앉았으면, 5일 후에 용수 박아 채주하여 사용한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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