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규제 관련정책 20년 약사(1997-2016)(上)
조 성기(아우르연구소 대표/경제학박사)
지난 20년간의 주류규제 관련정책을 주변의 일들과 함께 둘러보기로 한다. 하나하나의 내용은 누구든 언론을 통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모아 놓고 보면 별다른 흐름이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함께 곱씹어 볼만한 것들이다. 술은 우리의 삶과 관련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우리 술 산업의 모습은 규제와 정책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해 왔다.
그간은 수요보다는 공급측면에서 술산업의 모습이 결정되어 왔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대체로 주어지는 술을 마셔왔다고 봐도 그다지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규제와 정책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술 산업의 특성도 소비자의 생각, 느낌, 의견들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분야가 공급부문이 중요했다. 예를 들자면 중앙정부가 힘이 쎄고 지방정부는 약했다. 중앙에서 통제하면 지방은 순응했다. 대통령이 쎄고 지자체장은 약했다.
지방정부라 부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중앙정부이고 지방은 자치단체였다. 단체는 정부와 천지차이가 아닌가. 이제 지방이 중요해지고 지역정부라 부르고 힘을 길러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기업이 쎄고 소비자는 약했다. 주어지는 물품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대였다.
그렇지만 이제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소위 소비의 힘이 공급의 특성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이 우리나라에 돈을 꿔주고 정부에 이래라 저래라 하던 시대 이후로 부터도 어언 20년이 지났다. 그 기간이 지나면서 정부와 기업에서 국민과 소비자에게로 힘이 이전되어오고 있었다.
2000년대 초에는 대통령조차 시장이 정부를 좌지우지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이후 또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통령이 느꼈던 시장의 힘을 요즈음은 우리 소비자들도 느낄 수 있다. 술시장에서 술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업체 수도 늘고 있다. 규제도 줄고 있다. 자율성이 커지고 있다.
그 흐름을 법과 규제의 변화를 통해서, 정책의 변화를 통해 살펴보자. 1997년 이전도 물론 중요하다. 법과 제도의 변화는 아마 1966년 국세청 창립부터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당장에는 최근부터 보는 게 나을 성 싶다. 지난 20년간의 변화를 하나하나 찾아보고 살펴보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다 그런 의미가 있다. 전인권의 노랫말이다.
주류규제의 시초인 주세법은 대한제국 말인 1909년에 공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 90년이 지난 1997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일제강점기로 부터 해방된 이후 미군정시기가 있었다. 짧은 시기였고 그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선 1949년에 새 주세법이 공표된다.
그 때부터 주질, 사치품의 상황판단, 가격의 높낮이, 원료 등을 고려해서 주종 간 세율차이를 두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특히 주류산업에 대한 통제가 강력했던 시기다. 주로 주세의 보전이 주류정책의 핵심이었다. 지금도 유사하지만 상황이 많이 변했다.
1990년대는 소위 개방의 시대다. 그에 따라 그때 이후로 규제완화가 급격히 추진되었다. 규제완화의 타당성 검증이 미흡한 채로 완화가 시작되었다. 제도변화가 너무 빨라 그 부작용도 컸다는 의견이 많았던 시기였다. 규제정책은 시대를 반영했다.
외국정부의 자유화 압박도 함께 있어 주세당국은 단계적 개방과 사후관리 대책마련에 고심했던 시기였다. 특히 국민소득 증대와 함께 유흥업소가 대폭 늘면서 유통과정조사와 무자료단속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조직적 무자료 주류도 많았고 생계형 탈세도 많았다.
소비자들도 소득증대와 함께 음주량이 크게 늘렸다. 그 이유로 1990년대 후반에는 전통적인 주세관리로 부터 음주문제관리로 정책적 관심이 규제당국에서도 증폭되었다. 그러던 시대였다. 변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 1997년
– 보건복지부, ‘청소년 보호법’에서 주류를 청소년 유해약물로 규정하고 19세 미만의 청소년 보호를 위해 주류 판매를 금지하고, 청소년 유해약물에 대해 청소년 유해표시를 하도록 법으로 규정하다.
– 보건복지부,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서 20세 미만의 자가 술집에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다
– ‘방송광고위원회’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건전한 사회질서와 국민건강, 청소년의 건실한 생활을 해치는 표현을 주류광고에서 금지하다. 주류광고에 등장하는 인물은 20세 이상이 되어야 하고, 주류광고에서 광고노래, 경품류의 제공, 할인특매에 관한 표현을 금지하다. 알코올성분 17도 이상의 주류광고가 금지되다.
–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소비자보호추진에 필요한 기금을 조성하고 기금 액의 규모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다. 한국생산성본부에 그 추진연구를 의뢰하다. 그 결과 2000년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가 설립되고, 2004년 병원을 개원하다. 그 기관들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운영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 때 그런 일들이 있었나 싶다. 또한 그 이전엔 그런 일이 없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1997년은 우리나라 음주문화 역사에서 획기적인 해가 아닐까. 20년 전의 일인 것이다.
1997년에 산업계에서 주류소비자보호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청소년보호법에서 구체적인 술 문제로 부터 청소년을 보호하자는 문구가 명시되기 시작한다. 사실 조금 늦었다. 그렇지만 그럴 때가 항상 빠른 때이다. 늦더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도 제대로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통상 국민소득이 1인당 8000불이 넘어가기 시작할 때쯤에 음주문제에 관심을 구체화하는 것을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시기는 우리나라의 경우 1993년이었다. 그해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8,402달러였다. 한 5년쯤 늦었으니 다른 제도에 비해 시간상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산업계의 소비자 보호활동에는 국세청이 직접 개입을 한다. 규제당국인 국세청이 산업계 전반에 대해 행정지도를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체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우리 보건당국이 음주문제에 제도적 개입을 공식적으로 시작하는 것은 나중 2006년에 파랑새플랜이 시작되면서라고 보는 것이 옳다. 1997년은 다만 그 문제에 ‘보건당국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때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보호법 등 법적 기반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주류산업계에서도 음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자체도 중요한 일이었다. 범국민절주운동본부나 학계에서도 그 해에 사회활동차원이든 학문 차원이든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 해 이후 우리나라의 음주문제 예방과 치료활동이 느리지만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학계에서도 관련 논문이 학술지에 본격적으로 게재되기 시작된 것은 그때 부터였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제국들 보다 늦었지만 시작은 의미 있다.
◈ 1998년
– OB맥주가 벨기에의 인터부루에 매각되다. 그 후 미국 안호이저부시와 합병해 ABInbev’s로 개명하여 운영된다. 그 이후 해외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주류회사가 늘어난다. 하이트 진로홀딩스는 해외자본이 참여하고 있지 않아 예외다. 롯데칠성음료는 미국계 펀드 이너내셔널 밸류 어드바이저스가 6.4%, 무학은 미국계 투자사인 피드로우프라이스드스탁펀드 10.34%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 주세사무처리규정에 주류통신판매업자에 대한 내용이 새롭게 기록되다.
– 대통령령 제 15775호로 주세법시행령이 개정되다. 주류의 제조와 유통경쟁력 관련 제도를 개선하다.
1998년은 주류회사에 해외자본이 들어오는 계기가 만들어진 해다. 김영삼 정부이후 소위 우리 산업과 국가 전반에 세계화가 진행되었다. 세계화는 사실 세상이 평평해져서 우리기업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호된 경험을 우리기업들이 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미 서구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경쟁으로 기업 간 경쟁이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특히 금융자본이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약육강식의 발길을 내딛다 그 발길을 한반도로 돌리는 때가 그 해가 아닐까. 그 당시 1달러 환율이 무려 1995원으로 까지 올라갔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재산이 졸지에 절반으로 줄어든 것을 경험하는 시점이었다.
주가 하락폭도 사상최대였다. 1924년에 설립된 합자회사인 진로그룹이 부도를 맞은 것도 그 즈음이다. 진로그룹의 부도는 주류산업에 장인정신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특별한 해였다. 그 사건은 다른 모든 산업에도 놀라움을 주었지만 주류업계로서는 큰 사건이었다. 그 해에 진로가 대법원으로 부터 법정관리와 화의신청개시 명령을 받았다.
그 여파로 국세청은 1998년에 주류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고 주류의 규격을 정비하여 다양한 주류의 개발을 촉진 하도록 하는 제도개선을 도모한다. 그때 이후에 주류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한 각계의 노력이 점차 늘어난다. 느리지만 주류산업도 외풍을 타고 변화의 씨앗이 심어졌다고 볼 수 있다.
1998년에 특히 진로가 1000여억 원의 주세를 미납했고, 조선맥주도 600여억 원의 주세를 미루는 특이한 경험이 있었던 시기였다. 주세의 크기뿐이 아니라 주세의 안정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다들 국제통화기금의 압박과 전횡이 한 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게 클 줄 몰랐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짓던 경험을 했던 것이다.
특히 이즈음에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급증했다. 사업을 타의에 의해 버리게 된 사람들이 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졌다. 가정도 파탄이 되었고, 국민건강상의 문제도 커졌다. 알코올의존증 치료시설에 입원한 환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사업상의 실망을 언급하는 이가 많았다. 어려운 시절이었다.
◈ 1999년
– ‘유럽연합’이 ‘세계무역기구’의 판결을 통해 한국증류주, 소주의 주세체계를 바꾸는데 성공한다. 위스키와 브랜드 주세 율은 100%에서 72%로 낮추었다. 맥주세율은 130%에서 100%로 단계적으로 인하하기로 하다.
– 주류단체의 설립 및 가입제한을 폐지하고, 주세환급의 범위를 확대하다.
– 대통령령 제 16665호로 주세법시행령이 개정되다. 탁주의 규격이 6도 이상에서 3도 이상으로 조정되다.
– 탁주와 약주를 제외한 주류의 제조시설 기준을 현행보다 50% 수준으로 완화하여 진입장벽을 낮추다. 맥주에 식물약재 또는 과실을 첨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맥주개발을 지원하다. 특정주류도매업 면허요건 완화하다.
– 주류유통체계의 대형화와 선진화를 유도하기 위하여 주종별 판매자별로 12종으로 세분화되어 있는 판매업 면허를 6종으로 통합하다.
– 납세병마게 제조자를 국세청장고시에서 국세청장이 일정한 인적 물적 요건을 갖춘 자 중에서 지정하도록 투명성 제고를 높이다.
– 진로 쿠어스맥주를 OB맥주로 매각하다.
1999년은 당시 선진국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시스템의 압력 또는 분위기로 세계시장이 더욱 더 열리고, 벽이 허울어지던 해다. 그야말로 경제 사회 거의 모든 데에서 본격적인 변화가 추진되었다. 주류제조업의 규제완화도 물론이었다. 특히 맥주나 탁약주 등 발효주를 중심으로 주류다양화가 과제라는 인식이었고 규제를 허물어야 그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생각이 그득했다.
제조의 변화에 맞추어 유통분야도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진입장벽을 완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그것이었다. 주세법 28차 개정에서 세계무역기구의 권고에 따라 주세율체계가 국제규범에 맞추도록 개편되었다. 외국산 주류의 국내진입에 대한 신호등이 켜진 것이다. 그 때 이후 맥주 와인 위스키 등 다양한 외국 술이 국내진입 속도가 빨라졌다.
그에 발 맞춰 OB맥주의 약진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주종개발을 위한 제조방법의 제한완화도 구체화되었다. OB맥주가 요즘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당시 규제완화의 효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오비는 근본적인 제품개선을 도모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다만 리뉴얼 제품을 늘려 품목다양화의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OB맥주에서 두드려졌었다.
이는 고객들의 선호다양화에 누가 더 부응하는가가 중요해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작은 변화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에는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영향력이 커졌다. 고객시대가 다가올 때 작은 변화로 반응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였다. 소비자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암시였다.
이 때 대세였던 자유주의와는 색다른 변화가 주류업에서 생겼다. 종합주류도매업에 TO제도가 도입된 것이었다. TO는 인구와 매출액에 연동하여 업체수를 변동시키는 것이므로 근본적으로 강력하게 문을 닫는 규제는 아니다. 그 제도를 평가해 보자면 도매는 오히려 규제가 강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종합주류도매업은 제조업과 달리 업체수가 많다. 즉 업체 간 제한적 경쟁이 가능한 상황 하에서 진입규칙을 정한 것이다. 그 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통에 관한 한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가 정부규제를 작동시키는 것이어서 당시 대외적인 시비는 없었다. 요즘은 시장이 어려워지니 많이 달라졌다.
그 즈음에 일본 주류소매업에서 대대적인 규제완화가 있었다. 진입규제가 완화되자 주류소매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주류소매업의 진입에 대해 긴급조치법이 발동될 정도였다. 세무관서에서 재량껏 규제를 강화하도록 했다. 규제완화는 시장을 혼란시킨다. 그렇지만 영업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입규제를 풀라고 외친다. 그 씨앗이 그때 땅에 심어졌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