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한 손바닥 술잔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인간은 동물 중 유일하게 손을 가진 존재이다. 악수는 우호의 표시이고, 손뼉을 치는 것은 온몸으로 환호하는 짓이고, 두 손을 비비며 고개를 숙이면 아부의 몸짓이 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 정신없이 사죄하는 것이고, 손사래는 온몸으로 거부하는 몸짓이 된다. 남녀지간에 손을 잡으면 연인이 된다. 손으로 간지럼을 피우는 행위는 온 몸을 떨리게 하는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곤지곤지, 짝짜꿍은 손으로 배우는 언어의 시초이다. 이렇듯 손은 말이 없지만, 말보다도 더 많은 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손은 선과 악을 동시에 아우르는 야누스적 행태를 반복한다. 버튼 시대에 손과 손가락이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염려되는 시대이다. 여성들의 장신구인 가락지는 발가락으로 그 위치를 변경시킬 수도 있다.
<설문(說文)>에서는 손바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손 바닥장(𤓯)은 손톱조(爪)와 생김새가 비슷하여 혼동하기 쉬운 글자이다. 그러나 자형을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곧 ‘조(爪)의 모양을 반대로 돌려놓은 모습’이다. ‘조(爪)’는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여 무엇인가를 움켜잡으려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지만, ‘장(𤓯)’은 ‘손바닥을 위로 보이게 하여 무엇을 요구하는 모습’에서 ‘손바닥’이라는 의미를 표출한 것이다.
때문에 같은 의미로 쓰이는 손 바닥장(掌)과 음(音)이 같아서 서로 통용되어 쓰이기도 한다. ‘장(𤓯)’은 ‘손바닥을 내밀어서 물건을 건네받는 모양’에서 ‘지니다, 가지다’의 뜻이며, 또 손에 움켜쥐는 것에서 ‘보존하다’는 뜻과, 아울러 장(掌)의 통용음으로 쓰인다. 그러나 장(𤓯)은 장(掌)의 옛글자이기 때문에 지금은 다른 문자와 어울려 조자(助字)의 구실만 하고 있을 뿐이며, 주로 장(掌)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성끼리는 손을 함부로 내밀지 않는다. 그런데 술잔 중에 가장 오묘하고 에로틱한 술잔은 아마도 여인의 ‘손바닥 잔’일 것이다. 옛날 서울에는 젊은 과부가 차린 ‘내외(內外) 술집’이라는 게 있었다. 남녀 간의 예의가 엄하여 여자가 가까운 친척 외의 남자와는 절대로 대면하여 말을 하지 못하고, 내외라 하여 엄하게 분별하였는데, 이 때 ‘내(內)’는 여자요, ‘외(外)’는 남자를 가리킨다. 일반 가정집 대문 옆에 ‘내외주가(內外酒家)’라고 붙여놓은 곳은 노 과부나 쇄락한 양반가의 안주인, 궁인 등이 생계수단으로 탕, 물, 편육 등과 가양주를 준비해 놓고 파는 술집을 가리킨다.
‘내외주점’은 바깥 대문과 중문 사이의 문간방 정도를 내어 운영을 하였다. 술손님이 바깥 대문을 밀치고 들어오면서 헛기침으로 ‘이리 오너라’를 외친다. 이때 술손님은 일행의 수를 알리게 마련이다. 술손님이 하나면 ‘하나요’, 둘이면 ‘둘이요’하고 외치면 잠시 후 과수댁은 인원수만큼의 술잔과 젓가락을 개다리소반에 내어 놓는다.
모든 대화가 간접적으로 소통되는 이곳에서는 주문도 “이리 오너라”, “술상 내보내시라고 여쭈어라”, “잘 먹고 갑니다고 여쭈어라” 하는 식으로 내외를 했고, 일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경우에는 중문 안에서 개다리소반만을 내민다고 해서 일명 ‘팔뚝집’이라고도 불렀다.
이곳에서는 주객들이 지켜야 할 법도가 있는데, 손님은 반드시 세 주전자 이상을 팔아줘야 한다. 아마도 세 주전자가 ‘손익분기점’이었던 모양이다. 손님이 별도로 안주 주문이 없으면 시디신 김치 사발이나 놓고서 겨우 개다리소반이나 들랑댈 정도의 쪽문을 열고서 두 팔뚝을 쭉 뻗쳐 내놓는다. 그렇게 다 마시면 술값을 그 소반 위에 넌지시 올려놓는다. 들어올 때처럼 헛기침 소리를 내며 “돌아가오!”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잠시 후 내외주점의 과수댁은 중문안의 방 안에서 살며시 나와 대문 사이에 있는 문간방으로 들어가서 개다리소반을 내온다.
이처럼 단둘이 있으면서도 직접 대화를 하지 않고, 꼭 누구를 통해서 하는 식의 간접대화를 하였다. 이처럼 옛날의 지체 있는 집안의 여자들은 생활이 쪼들려 비록 술장사는 할지언정 남녀 간의 예의는 지키면서 영업을 하였던 것이다.
‘내외술집’이란 결국 내외를 분별하면서 술을 판다고 하여 나온 말이다. 내외법은 지켜야하기 때문에 주모인 과부는 손님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팔뚝’만 내어 밀어 술상을 내고, 또 술값도 내어 민 손바닥에 놓아 받았다. 그래서 전자의 행태를 일컬어 ‘내외주점’이라고 하고 후자를 속칭 ‘팔뚝술집’ 이라고도 했다. ‘팔뚝술집’에는 심부름하는 아동이 없는 초라한 술집이다.
그런데 술값을 놓을 때 ‘행하(行下, 팁)’를 두둑하게 얹어놓고 기다리고 있으면, 그 팁의 대가로 과부는 ‘손바닥에 술을 담아 내어민다’ 그 손바닥 술을 핥아 마시는 맛에는 짜릿하게 자기가 통했음직하다. 그런대 행하의 대가로 한번으로 끝나기 때문에 사례의 많고 적음에 차별을 없었다. 그래서 손바닥 잔은 가장 원초적인 에로틱한 술잔이라는 것이다.
영어단어 ‘Gratuity’의 한글 뜻은 ‘행하(行下)’라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심부름을 하거나 시중을 든 사람에게 주는 돈이나 물건’ 혹은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주인이 부리는 사람에게 주는 돈이나 물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알고 보니, 우리가 흔히 쓰는 ‘팁(Tip)’이라는 말을 격이 있게 표현하는 말이요, 좀 더 현대어로 바꾼다면 보너스(bonus)를 말하는 것이며, 귀에 좀 거슬리지만 흔히 ‘떡값’이라는 말도 그 뜻과 무관하지 않다.
팁의 어원은 ‘선물’을 뜻하는 라틴어(stips)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중세 영어에서는 ‘tip’이 단순히 give(주다)와 동의어로 쓰이는 사례들이 나타난다. 소수설로는 ‘To Insure Promptness(신속한 서비스 보장)’의 머리글자를 따 ‘TIP’이라 했다는 주장도 있다.
중세에 봉건영주가 여행을 하다가 길에서 거지들을 만나면 동전을 던져줬다. 안전한 길을 확보하기 위해서 거지들에게 사례로 팁을 줬다. 엄밀히 따지면 이건 서비스에 대한 보상이라는 ‘팁’의 개념과 다르다. 구걸에 대한 동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반인에게 ‘팁’이라는 말은 16세기 후반 영국의 ‘커피하우스’에서 비롯되었다. TIP(To Insure Promptitude)라는 문구가 커피하우스에 새겨졌다. 빠른 서비스를 위해서 돈을 줬던 모양이다. 이런 관행은 나중에 ‘펍(pub)’으로도 확산되었고, 다른 직종으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그러나 ‘팁’이 반드시 서비스 질의 보장과는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술집 작부들에게 팁은 그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질과 양에 반드시 비례한다.
손바닥 잔 보다 더 원초적이고 에로틱한 음주방법도 있기는 하다. 술이 거나 해지면 방에 들어온 술집 아가씨를 발가벗겨 놓고 목 밑에다 술을 부어 두 젖가슴 사이를 타고 아래로 흐르는 술을 젖가슴 밑에서 잔으로 받는 게 ‘계곡주’요, 배꼽에서 받는 술은 ‘우물주’요, 그 아래에 숲에서 받는 술은 ‘솔잎주’요, 조금 더 아래서 받아낸 술은 ‘천국주’라 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입잔은 손바닥 잔의 전율보다는 한 단계 위에 해당된다. 이처럼 여성의 몸 모두가 기가 막히는 술잔으로 변형을 시킬 수 있다.
프랑스에선 식사할 때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브랜디를 스트레이트로 유리잔을 손바닥으로 데우면서 조금씩 음미하면서 마신다. 그 후 외국 사람들이 식후에 마시는 것으로 형식을 바꾸기도 하였다. 영국인들도 대게 스트레이트로 마시는데ㅡ 미국 사람은 다르다. 미국인은 롱 드링크(희석해서 마시는 것)를 좋아해서 코카콜라에 타거나 코냑 프로트라고 하여 탄산수 위에 코냑을 띄워서 마시기도 한다. 그러나 코냑 본래의 맛을 즐기려면 스트레이트로 마셔야 한다.
브랜디 잔을 다른 술잔보다 크고 술잔 밑에 펑퍼짐하게 생겼다. 잔은 크지만 따르기는 조금만 따르는 것이 에티켓이다. 그 이유는 수십 년 묵은 브랜디의 향미를 맛보기 위한 방법이다. 먼저 유리잔을 눈높이까지 치켜들어 색깔을 보고, 그 향을 천천히 맡아 본다. 이어서 한 손이나 두 손으로 잔을 손바닥에 술잔 밑을 닿게 하여 브랜디를 데운다. 2~3분마다 술잔을 흔들어서 향기가 서서히 솟아오르게 되었을 때 마시는 것이 격식이다. 그렇다고 바로 마셔서는 안 된다. 마시기 전에 다시 한 번 향을 맡는다. 처음 맡은 향과의 차이를 확인하는데 그 차이가 많을수록 좋은 브랜디이다.
꼬냑과 아르마냑은 둥글게 생기고 잔 입구가 좁아지는, 그래서 아래서부터 손으로 감싸면 손바닥에 잔의 밑 부분이 접촉되는 잔(Lagoon Shape이라고 한다)으로 마신다. 아무것도 섞지 않는다. 그리고 손으로 데워가면서 마신다. 그러면 특유의 향이 잔 안을 맴돈다. 부부가 깊은 저녁에 발코니에 앉아 서로의 체온을 전달하면서 한 잔 걸치기 좋은 술이다.
“와인을 싸게 살 수 있는 나라치고 국민이 취해 있는 법이 없고, 증류주가 와인을 대신하는 나라치고 국민이 깨어있는 법이 없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던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와인 애호가다. 그는 프랑스 주재 미국 초대 대사로 5년간 머무르며 프랑스의 명품 와인들에 푹 빠졌다. 다양한 와인 수집가로도 유명한 제퍼슨의 1787년 빈티지 샤토 라피트(Château Lafite) 한 병은 1987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18만 7000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그는 팔꿈치가 안으로 굽어진 이유는 와인 잔을 입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한 신의 계시라고도 하였다. 즉 팔꿈치가 안으로 굽어진 이유는 순전히 와인을 와인 잔으로 마시게끔 고안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바닥은 와인 잔을 잡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술꾼의 재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주점이 생겼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고려 초기 성종 때 처음으로 주점이 생겼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당시에는 남녀 간에 유별하여 여자는 외간남자와 대하지 않는 풍속이 있어서 술상만 차려 놓으면 남자 종이 술심부름을 하고 손님들은 서로 술을 따라 주며 마셨다. ‘내외주점(內外酒店)’인 셈이다. 그때의 술집 이름은 ‘성례(成禮)’, ‘희빈(喜賓)’ 등 아름답고 정취 있는 이름들이 유행하였다고 한다.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