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에게 묻다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李武炯 원장
“금연 결심했다면 술친구부터 멀리 해라”
술 담배 하는 사람에게 “너 어느 것부터 끊을래?”
“왜 끊어야 하는데?” 몸에 나쁘니까. “그렇다면 담배부터 끊어 볼까”
술과 담배는 우리 인간의 기호식품(嗜好食品) 가운데 당연 으뜸으로 쳐주는 기호품이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유해성 여부에 시달리는 물질이기도 하다. 술을 마시는 사람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아니면 둘 다 하는 사람도 줄이거나 끊어야 한다면서 먹고 피운다. 그놈의 중독성 때문에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술이란 순기능일 때는 더없는 고마운 물질이지만 역기능을 발휘할 때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술이 백약지장(百藥之長)이란 소리를 들을 때는 적당히 잘 마실 때 듣는 말이지 아무 때나 듣는 소리는 아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나서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오들이 피우는 담배를 처음으로 본 이후부터 비로소 문명인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졌다고 전해지는 담배는 어떤가. 담배의 역사는 길어야 5백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나라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년 전인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일본으로부터 전래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음에도 이로 인한 폐해 역시 적지 않다. 술의 역사에 비하면 참으로 미천하기 짝이 없지만 담배 때문에 생을 일찍 마감한 사람은 별만큼이나 많지 않을까.
해가 바뀌면 가족들 성화에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전매청이 문을 닫을 만큼 많지만 대개는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버리는 ‘금연’을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이무형(李武炯, 48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10명 가운데 6명 정도는 금연에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은 “금연을 결심하면 금연에 성공할 때까지 가급적 술자리를 멀리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술과 담배는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한 물질로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하는 작용이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이 체내에 흡수되어 혈관을 타고 뇌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수십 초에 불과하다. 이때 니코틴이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시켜 쾌감이나 긍정적인 기분을 선사한다.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 역시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문제는 이렇게 술과 담배와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자주 도파민을 유발시킬 경우, 뇌는 어떻게 하면 쾌감을 얻을 수 있는지 학습하게 된다는 데 있다. 만일 술과 담배를 함께 했다면 보상회로를 자극하는 힘은 더욱 커지게 되고 뇌는 더 많은 쾌감을 원하게 된다. 자연히 술은 담배를, 담배는 술을 부르는 습관이 만들어진다.
“이를 테면 술을 마셔서 도파민이 1이라는 숫자가 나오고, 담배를 피웠을 때도 1이라는 숫자가 나온다면 술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면 1+1=2가 아닌 3~4배로 도파민이 나와 보상회로를 더욱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 이 원장의 설명이다.
따라서 ‘금연’을 할 때는 술자리가 적은 시기를 택하는 것이 그나마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한동안 금연을 했던 사람도 술자리에서 무너지는 이유는 알코올이 니코틴 대사를 촉진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로스웰파크 암연구소 연구팀이 남성 흡연자 2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 결과 알코올이 니코틴 분해를 촉진, 담배 끊기를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니코틴 분해 속도가 빨라지면 니코틴이 체내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지기 때문에 담배를 더 찾게 돼 그만큼 담배 끊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연구팀을 지휘한 마시에즈 고니에비치 박사는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들에게 술을 끊게 하고 술을 끊은 직후, 4주 후, 7주 후 니코틴 대사의 부산물인 코티닌의 혈중수치를 측정했다.
그 결과 술을 끊은 지 4주가 지나서야 니코틴 대사 속도가 느려지면서 정상으로 회복됐다.
“니코틴 대사 속도가 빠르면 하루 흡연 량이 늘어나고 담배를 끊었을 땐 금단증상이 심해질 뿐 아니라 니코틴 대체요법도 효과가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고니에비치 박사는 지적했다.
이무형 원장은 “일반적으로 한 가지 습관성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에 의존하면 다른 중독 물질에도 의존하기 쉽다”며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0%가 흡연자로 나타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음주가 흡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은 “최근 담뱃값 인상, 금연 구역 지정 등 정부의 적극적인 금연 정책으로 담배를 끊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정작 음주 문제는 간과하는 경향이 많다”며 “금연에 성공하고 싶다면 금주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알코올과 니코틴과 같은 중독물질은 무작정 끊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작심삼일에 그치기 쉬우므로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이 필요하다”며 “혼자서 힘들다면 지역의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나 전문병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담배를 끊으면 주전부리를 많이 해서 살이 찐다는 속설은 근거가 희박한 일이고, 담배 생각이 날 때는 물 한 모금 마시는 방법도 좋다.
이 원장은 “담배를 끊을 때 아무 예고 없이 순간적으로 끊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이렇게 하면 금단 현상이 심해질 수밖에 없으므로 헤비스모커들은 목표를 세우고 서서히 줄여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남령초(南靈草=남쪽에서 온 신비로운 풀), 망우초(忘憂草=근심을 잊게 하는 풀)라고 불렸다가 심심草라고 했던 담배가 담뱃값 인상 후 1인당 흡연 량이 2015년 64.6갑에서 작년 80.8갑으로 25%나 급증했다고 한다.
(주)KT&G와 지자체(담배 소비세 증가)는 함박웃음을 웃을지 모르지만 국민 건강 측면에서는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신나는 일이 많아지면 술 소비량이 많아지고 열 받는 일이 많으면 흡연 량이 증가한다는 설이 맞는 모양이다. 사회적 대형 이슈로 시국이 어수선해진 탓에 흡연 량이 늘고 있다면 이를 누구에게 탓해야 하는 것일까.
◇ 이무형 원장:[프로필] (현) 다사랑중앙병원 원장, (현)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 (현) 대한전문병원협의회 홍보이사, (현) 알코올전문병원협의회 회장, (전) 다사랑병원(광주) 진료부장 역임 [저서] 알기 쉬운 회복의 길(2014. 하나의학사), 술: 사람이 선택한 술 술이 선택한 사람(2009. 느낌이 있는 책), 중독적 사고(2009. 하나의학사), 알코올의존 환자와 가족을 위한 회복교실(2007. 하나의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