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의 에세이
우리 술의 도전과 응전(應戰)
우리술대축제
2016년 대한민국 우리술대축제에 다녀왔다. 근 10년간 이런 행사에 전혀 다니지 않아서 나름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몇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는데 먼저 규모가 예전의 행사에 비해 좀 즐어든 감이 있다. 전반적인 경기침체, 그리고 특히 전통주의 침체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최근 들어 전통주의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전주에서 유명한 막걸리도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전주 막걸리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모 업체도 매출이 반 토막 이상 줄었단다.
두 번째는 고전의 전통주 느낌이 아니다. 전통주하면 왠지 고전적이고 장인의 냄새가 날 것 같은데 이번에 나온 제품들은 발랄하고 젊다.
특히 맥주나 와인 등의 다른 문화권 술들과 결합한 점이 눈에 띈다. 실제로 맥주부스도 몇 개가 나왔다. 고전의 전통주는 아니지만 우리민족의 원형인 쌀을 맥주에 활용했다.
어떤 제품들은 탄산을 가미하여 전통주의 다양성을 획득하고 있으며, 이국적 원료인 바나나 혹은 멜론을 활용한 술도 보인다.
어떤 와인은 술에 금박이 떠다니는 개성을 보여주었고 북유럽처럼 벌꿀로 와인을 만들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런 변화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구의 맥주와 와인 그리고 일본의 사케가 우리 술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다만 형태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 근간에 있는 농업이 더욱 탐색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쌀을 활용한 맥주들을 보면서 우리 농업의 토대가 이제 새로운 우리 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발효재보급 사업 등은 우리 술의 경쟁력을 한층 넓히는 작업이라고 본다. 이미 서구의 와인이나 맥주, 사케 등은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는 과학적인 방식을 오랜 세월동안 쌓아왔다. 그 당을 다시 알코올로 만드는 효모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이 되어서 다양한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비록 우리농산물로 맥주나 와인을 만든다 해도 서구는 술의 씨앗인 효모를 독점하여 판매하고 있다. 우리 술은 현재 그나마 누룩이라도 연구해서 다행이지만 향후에는 효모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지역농산물로 만드는 맥주
지역의 농산물을 활용한 맥주의 약진이 눈에 띈다. 제주, 전북 고창 및 순창, 강원 강릉 등에서 지역의 원료로 맥주를 만들고 있다. 크래프트맥주 바람이 불었지만 그 원료는 여전히 수입인 상황에서 농업이 근간한 우리의 맥주를 만드는 것은 긴 안목을 가지고 정책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막걸리도 많이 마시지만 갈수록 맥주의 수요가 더욱 커지는 현실적인 점을 고려한다면 쌀을 맥주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보급하여 가뜩이나 남아도는 쌀 소비의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현재 지역원료를 사용해도 지역특산주 추천을 받을 수 없는 맥주의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지역특산주는 지역원료를 사용하면 주세를 50% 인하해주는 제도이다. 주세뿐만 아니라 유통에 있어서도 가정용과 업소용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어디든 유통을 태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현재 맥주의 주세 율은 72%이다. 가령 210원을 주고 맥주를 샀다면 72원이 세금이며, 여기에 약 20원의 교육세가 부과되고, 다시 20원 가량의 부과세가 과세된다.
그러니까 맥주 한 병에는 세금이 반절 이상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소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증류주 등은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면 주세를 50% 감면해주는 지역특산주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주세뿐만 아니라 교육세도 50%가 감면이 되어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는 우리 농산물을 소비 하려는 취지이며 또한 수입 산에 비해 가격이 높은 국산 원료를 쓰는 제품에 대한 보호차원이기도 하다.
기술적으로는 제맥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 제맥이란 보리를 싹틔우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맥주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과정이다. 전통주에 마치 누룩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중소형 양조장에서 제맥을 하는 일이 쉽지 않다. 비용도 많이 들고 인건비도 들여야 한다. 따라서 국산 원료로 맥주를 만들고 싶어도 제맥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결국 수입산 맥아를 쓸 수밖에 없다.
중소형 양조장에서 쉽게 제맥을 할 수 있는 방식이나 소형 기계를 개발하여 보급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혹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제맥시설을 만들어서 우리 농산물을 쓰고자 하는 중소형 양조장들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
지난 6년간 나도 전주 보리로 만든 맥주에 매달려 왔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역시 가장 큰 것은 맥아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이는 국내산 원료를 쓰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국내산 보리는 수입 산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품질도 떨어진다. 당연히 국내산 보리는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먼 미래의 우리나라 맥주를 생각하면 지금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우리 농산물로 만드는 맥주가 자리할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일본의 발포주 시장에서 힌트를 얻어서 굳이 맥아를 만들지 않아도 맥주를 만들 수 있는 방식을 터득하였다.
이는 주세법상 기타주류로 지역특산주 추천을 받으면 주세가 15%에 교육세는 면제가 되어 값비싼 국산원료를 사용하는 약점을 충분하게 덮고도 남는다.
그동안 맛 등이 올라오지 않아서 그 부분을 보완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비했다. 지금은 완도의 청산도 등에 이러한 방식을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향후 국산 원료로 맥주를 만들려는 사람들과 함께 협회를 조직하여 맥류의 보급과 우리식의 효모 등을 보급하는 작업을 진행하려고 한다.
술은 그 근간이 농업이다. 농업의 세례를 입지 않은 술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소주나 맥주도 나는 훌륭한 술이라고 생각한다. 그 가격에 이 정도의 품질을 지닌 술은 한국의 맥주와 소주 밖에 없다. 더군다나 세금이 반절도 더 되는 환경에서 이 가격대의 맥주와 소주는 사랑스러울 수밖에.
다만 우리 술에서 맛과 향기 그리고 문화와 농업의 향기가 함께 융성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