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 풍정사계 李漢相 대표
향온곡으로 빚은 풍정사계 중 ‘春’과 ‘冬’ 최우수상 수상
술빚는 행위가 것이 곧 예술이라고 생각 하며 혼신을 다해 술을 빚는다. 그러기를 한 10여년 하다 보니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술쟁이들이 출품한 ‘2016 우리 술 품평회’에 그 동안 빚은 술을 출품했다. 두 종류의 술을 출품했는데 2가지 모두 품목에서 최우수상을 획득했다. 대상은 차지 못했어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대상은 술 업계에서 이름 있는 대기업이 타야하는 것입니다. 아직 연륜과 기술이 부족하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타는 날이 오겠지요. 다만 향온곡이라는 내 누룩으로 빚은 누룩 술이 인정받았다고 봅니다. 진정한 우리 술이 이런 것이라고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과 남들이 다 넣는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고 맛을 낸 자부심이 있습니다.” 부부는 그렇게 위로하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풍정리에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유한회사 화양(和釀)의 이한상(李漢相, 62세) 대표와 이혜영 부부 이야기다.
◈ 할머니가 술 빚는 모습 보고 자란 이 대표
회사이름 ‘화양’보다 주품명인 ‘풍정사계(楓井四季)’로 더 알려진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한상 대표는 현재 화양양조장이 있는 풍정리에서 나고 자랐다.
먼 길 떠나 타지에서 살아보지 않고 오직 이 주변에서만 살아왔다. 양조 일을 하기 10여 년 전만 해도 청주시내에서 ‘샘’이란 사진관을 운영했다고 한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 필름카메라가 자취를 감추고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를 이루고 있더라고요, 이러다간 사진관 문 닫는 것은 시간문제다 싶어서 사진관 일이 정점에 섰을 때 술을 배우기 시작했죠.” 이 대표가 사진관을 하면서 술 빚을 생각을 한 것은 어렸을 적 할머니가 술을 빚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술 고두밥을 지을 쌀은 물속에서 알알이 보일 정도로 깨끗이 백세 하여 하루저녁 정도 불렸다가 고두밥을 지을 때도 떡 만드는 고두밥보다 더 오래 불을 들였습니다. 할머니가 뒤뜰에 맷방석을 펴고 고두밥을 식히면 집어먹다 혼나기도 했습니다. 고두밥에 누룩을 고루 섞어서 고두밥 알알이 누룩이 묻혔을 때 항아리에 넣고 솥에 밥을 안칠 때처럼 술항아리에 손을 넣어 물 가늠을 하셨고, 아랫목에 두꺼운 솜이불로 감싸놓으면 술 냄새가 온 방에 가득했습니다. 술이 익으면 용수를 박아 떠내어 잔치나 제사 등 행사에 쓰고 나머지는 자루에 넣어 치대어 막걸리를 걸러 일청에 보내거나 동네사람들을 불러 즐겼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가마솥에 솥뚜껑을 엎어놓고 소주도 내리셨습니다. 나도 언젠가 술을 담가봐야 갰다는 생각이 그 시절에 잠재 되어 있었던 같습니다.”
◈ ‘조화양지(調和釀之)’에서 따온 ‘화양’
회사 이름이 ‘화양’이란 것도, 주품명이 ‘풍정사계’란 것도 이 한상 대표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전만 해도 풍류객이 먹고 마시고 신나게 놀자는 뜻인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었다.
먼저 ‘화양(和釀)’ 이란 회사 이름은 1554년 어숙권이 만든 백과사전인『고사촬요』의 ‘내국향온법’에 나오는 ‘조화양지(調和釀之)’에서 ‘화양’만 차용했다고 한다. “‘화양’은 찹쌀과 직접 디딘 누룩(향온곡)을 끓여 식힌 물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조화롭게 섞어 빚는다는 뜻”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이 대표는 “화양이 추구하는 술은 그 맛이 쓰거나 달거나 시거나 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로운 술을 빚어야 향기를 머금은 술맛을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풍정사계(楓井四季)라는 뜻은 ‘풍정’은 단풍나무 풍(楓)자와 우물 정(井)자로 단풍나무 우물 동네라고 풀이하면 된다.
예전에 이곳을 ‘싣우물’ 혹은 ‘시드물’이라고 불렀다. 싣나무는 단풍나무중 하나로 일제 강점기에 순 우리말 대신에 한자로 된 이름을 짓다보니 풍정이라고 했단다.
“제가 어렸을 적에 이곳엔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참으로 많아서 단풍이 아름다웠습니다. 원래 나무란 것이 계절에 따라 아름다움이 변하잖아요, 그래서 풍정사계는 풍정의 자연을 정성껏 술독에 담아 맛과 향이 다른 네 가지 술에 春(약주), 夏(과하주), 秋(탁주), 冬(증류식소주)으로 사계란 이름을 지었습니다.”풍정사계 春·夏·秋·冬은 국내산 쌀과 직접 디딘 전통 누룩(향온곡)으로 빚는다. 또한 어떠한 인공 첨가물도 가미 하지 않고 100일 이상 숙성시키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깔끔한 맛과 풍부한 향을 지녀 숙취가 없고 뒤끝이 깨끗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우리 술 품평에서 春과 冬이 최우수상 수상
‘2016 우리 술 품평회’에서 화양이 받은 최우수상은 약주·청주부분에서 春(15%)과 증류식소주 부분에서 冬(42%)이 수상했다.
풍정사계가 제품으로 내놓은 네 가지 술의 특징을 살펴보면 春(봄)은 감미로운 술, 약주다. 특유의 과실향이 있어 우리의 한정식과 함께 반주로 마시면 격조 있는 만찬을 즐기실 수 있다. 술안주로 회를 빼 놓을 수는 없다.
夏(여름 18%)는 향기로운 술, 과하주다. 약주 발효 중에 증류주를 더해 빚었다. 상온에서 여름을 날 수 있는 조상의 지혜가 담긴 술이다. 秋(가을 12%)는 맛있는 술, 탁주다. 부드럽고 감미롭다. 가을걷이의 기쁨을 함께 하는 술이다.
冬(겨울)은 귀한 술, 증류식 소주다. 약간의 누룩 향과 부드럽고 깨끗한 맛이 일품이다. 소주의 강렬함을 즐기거나 칵테일에 제격인 술이다. 커피에 몇 방울 넣어 마시면 풍정사계 동의 진한 풍취에 흠뻑 취할 수 있다
◈ 밀과 녹두 섞어 ‘향온곡’만 고집스레 디뎌
2006년 9월3일. 이한상 대표가 술에 입문 한 날이라고 했다.
“술을 시작한다고 했지만 막상 어떤 술을 빚을 것인가 생각하다가 경주로 여행을 갔을 때 마셔본 법주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 때 술 맛이 할머니가 빚던 술처럼 맛이 있어서 그와 같은 술을 빚어야 갰다고 생각했지만 술 빚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에 스승을 찾아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청주와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전주 술박물관에서 술을 배웠고, 다음에 당시 녹번동에 있던 박록담 선생의 전통주연구소에서 배웠다.
“양조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주품을 홍삼법주로 정했습니다. 법주방문을 이용하여 술을 빚으면서 쌀, 누룩, 물량을 조절해서 맛을 찾았습니다. 다음으로 홍삼을 가미하여 맛의 조화를 찾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좀 오래 걸린 것처럼 보이는데 내 술이 100일주라 한 회를 빚으면 한 계절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내 맘에 드는 술이 빚어져 박록담 소장님을 찾아가 점검을 하고 방문을 완성했습니다. 면허를 내고 생산을 하려고 술을 빚는데 계속 시어졌습니다. 그렇게 다시 2년을 허비하니 면허가 취소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술을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은 내 누룩을 가져야 나만의 독특한 술을 빚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술을 시작할 때부터 누룩 딛기를 지금껏 해오고 있다. 이 대표는 초복과 중복 사이에 밀과 녹두를 10:1로 섞어서 향온곡을 만들고 있다.
화양은 여느 양조장에 비해 규모가 크지는 않다. 이 정도 규모의 양조장이라면 구태여 손수 누룩을 딛지 않고 기성품을 삽입해도 되련만 원자재가 비싼 국산 녹두를 고집하며 향온곡을 딛는 이유는 좋은 맛의 술을 얻기 위해서다.
사실 향온곡은 예로부터 띄우기 어려워 아직까지 상업적으로 향온곡만 쓰는 양조장은 없었다.
보통 누룩방을 만들어 온도 조절 같은 것으로 갈무리를 잘하는데 반해 이 대표는 우리 조상들이 초복과 중복사이 누룩을 디뎌 정자에서 바람에 띄우듯이 일 년 사용할 누룩을 복날 디뎌서 옥상에서 띄운다.
이 대표는 “이 동네는 본래 퇴적층이라 땅을 파보면 사질토, 자갈, 이암 층이 차례로 나타나서 자연스럽게 필터링이 된 좋은 물이라 물맛이 좋기로 유명했고, 청정한 공기로 누룩에 나쁜 균이 서식하지 않는 환경 탓에 질 좋은 누룩을 딛을 수 있다”고 말한다.
◈ 나만의 술 빚기 위해선 내 누룩 있어야
풍정사계는 설기로 한 밑술에 찹쌀 고두밥으로 덧술을 추가하는 이양주법으로 술을 빚는다. 증류식 소주는 상압식 동고리로 소주를 내린다. 상압식으로 내려야 장기 숙성에 의해 향도 나고 풍미를 더 할 수 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화양의 소주 증류기는 자체 설계에 의해서 제작된 것인데 이를 보고 모방된 제품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국문과를 전공한 이 대표는 영락없는 선생님 타입이다. 사실 그런 말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한 곳에 필이 꽂히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그래서 인생 2막을 술로 여는 데 있어서 원칙은 철저히 지키자고 다짐을 했단다. 술이란 쌀과 누룩, 물의 조화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누룩이 가장 중요해서 나름대로 누룩을 딛고 있다. 주변에서는 입국(粒麴)을 쓰지 힘들게 누룩을 딛느냐고 하지만 우리 술은 누룩으로 빚어왔고 누룩으로 빚어야 세계인이 알아주는 명주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신념에서다. 와인을 아무리 잘 빚어야 유럽와인을 쫒아갈 수 없고 입국으로 아무리 잘 빚어야 사케만 하겠느냐는 생각에서 누룩을 고집한다. 술을 빚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고집은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런 고집이 있기 때문에 2015년 설을 맞아 출시한 풍정사계가 2016년 우리 술 품평회에서최우수상을 받았는지 모른다. 풍정사계에서 표현하고 싶은 술맛은 달지도 시지도 쓰지도 않은 맛을 추구한다고 한다. 그래야 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충청도 기질을 품고 있는 술을 완성해 보고 싶은 것이 이 대표의 목표다.
◈ 홍삼으로 빚는 홍삼주도 개발 중
화양은 풍정사계 등으로 이제 전통주업계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양조장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아직 영세해서 혼자 술을 빚다보니 밖으로 다니며 적극적인 마케팅은 하지 못하고 맛을 보고 찾아주는 분들과 인터넷을 통한 판매에 의존하고 있다. 2017년에는 수요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홍삼주 같은 고급주 개발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이 대표는 오히려 그럴수록 새로운 분야의 술을 개발하고 싶은 욕망이 솟아오른다고 했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