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박록담의 복원 전통주 스토리텔링(34)
12간지 중 12번째 지간인 ‘해일(亥日)’에 빚 ‘해일주(亥日酒)’
동양철학 가운데 <주역(周易)>에서 “무극(無極)이 일원(一圓)이 되고 일원이 양의가 되어 사상(思想)을 낳고, 사상은 팔괘(八卦)를 낳고, 팔괘는 64괘로 이뤄진다.”고 하는, 즉 자연계가 형성된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자연계의 사물을 음과 양으로 표현하고, 동양의 기(氣)를 나타내는 것인데, 이를 세부적으로 나누고 표현한 것이 천간(天干) 10간(干)과 지간(地干)을 뜻하는 12지(十二支)이다.
큰 의미로 양은 하늘이고, 음은 땅으로 보고, 하늘을 나타내는 10가지 기호(천간)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라고 하고,땅을 나타내는 12가지 지기(地支)로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라고 하는데 이 천간 10개와 지지 12개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60 개가 되는데, 이를 ‘60갑자(六十甲子)’라고도 한다. 여기엔 10진법과 12진법이 들어있어, 이 60갑자(甲子)로 세상만물을 나타낼 수 있고 해석도 가능하고 본 철학이다.
따라서 12간지 중 12번째 지간인 ‘해일(亥日)’에 빚는 술을 ‘해일주(亥日酒)’라고 하며, 한 번 빚는 술이면 ‘일해주(一亥酒)’가 되고, 세 번에 걸쳐 덧 담근 술이면 ‘삼해주(三亥酒)’라고 한다. 그런데 해일에 빚는 주품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삼해주’는 음력으로 12일 간격 또는 36일 간격으로 돌아오는 해일에 세 번 술을 해 넣는 만큼 고급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처음 술을 해서 안친 지 36일 또는 96일 만에 술이 익게 되므로, 술의 맛이나 향, 색상이 뛰어난 명주가 되었다.
그러나 ‘해일주’라는 주품 명으로 기록된 경우는 <양주방>이 유일하다. <양주방>의 ‘해일주’는 무엇보다도 함께 수록되어 있는 ‘삼해주’와는 재료배합 비율만 다를 뿐, 술을 빚는 과정이 동일한 데도 굳이 ‘해일주’라는 주품 명으로 수록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았으나, 그 답을 찾지는 못했다.
또한 <양주방>의 ‘해일주’는 <음식디미방>과 <홍 씨 주방문>에 수록된 ‘삼해주’와 술을 빚는 과정이 매우 유사하며, <山林經濟>를 비롯하여 <增補山林經濟> 등의 여러 문헌에 수록된 여산지방의 3양주법의 ‘호산춘(壺山春)’ 제조방문과도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양주방>의 ‘해일주’는 함께 수록되어 있는 ‘삼해주’와는 재료배합 비율만 다를 뿐, 술을 빚는 과정이 동일한 데도 굳이 ‘해일주’라는 주품 명으로 수록되었을까 하는 의문에 따른 그 답을 찾지는 못하다가, 지난 2012년 1월에 이르러서야 다시 ‘삼해주’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두 주방문의 차이점을 알게 되었는데, ‘삼해주’는 밑술의 범벅을 쑬 때 쌀가루에 끓는 물을 합하고 개어 범벅을 만드는, 일반적인 범벅을 쑤는 과정으로 주방문이 이루어져 있고, ‘해일주’는 <산림경제(山林經濟)> 등의 ‘호산춘’의 밑술 과정에서처럼 쌀가루를 찬물에 개어 ‘아이죽’을 만들어 두었다가 끓는 물과 섞어 범벅을 쑤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해일주’가 ‘삼해주’라는 주품명이 아닌, ‘해일주’라고 명칭하게 된 배경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밑술의 발효기간을 36일로 끌고 가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결국 ‘해일주’는 3양주법의 ‘호산춘’ 방문을 빌려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방법이나 과정이 바뀌면 ‘삼해주’의 특징이 사라지는 것인 만큼, 다른 명칭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이었으리라.
최근에 와서 새로 개발된 브랜드에 대한 특허 침해 논란과 특정 브랜드를 모방한 주품 명에 이르기까지 ‘잃어버린 양심’들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에서 ‘삼해주’와 ‘해일주’의 차이를 규명하면서 다시금 술을 빚는 사람의 마음자세와 상거래에 따른 도덕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 해일주(亥日酒) <양주방>
◇술재료▴밑술:멥쌀 1말 2되, 가루누룩 2되, 밀가루 2되, 물 2말 5되.▴덧술:멥쌀 3말 5되, 끓는 물 4말 5되. ▴2차덧술:멥쌀 5말, 끓는 물 5말
◇밑술 빚는 법:①정월 첫 해일에 희게 쓸은 멥쌀 1말 5되를 깨끗이 씻고 또 씻어(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서 물기를 뺀 후,) 고운 가루로 빻는다. ②찬물 7되를 쌀가루에 붓고 풀어 아이죽을 만들어 놓고, 다시 1말 8되를 팔팔 끓여 아이죽과 합하고, 주걱으로 골고루 꽤 익게 개어 범벅/담을 만든다. ③범벅/담을 넓은 그릇에 나눠 담고, (식기 전에) 누룩가루 2되와 밀가루 2되를 섞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밀봉한 후, 찬 곳(한데)에 두어 12일간 발효시킨다.
◊덧술 빚는 법:①둘째 해일에 희게 쓸은 멥쌀 3말 5되를 깨끗이 씻고 또 씻어(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서 물기를 뺀 후,) 고운 가루로 빻는다. ②솥에 물 4말 5되를 팔팔 끓여 쌀가루에 붓고, 주걱으로 고루 개어 밑술과 같이 범벅을 쑨 뒤,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범벅을 밑술과 함께 섞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새로 마련한 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밑술 술독과 같이하여 12일간 발효시킨다.
◊2차덧술 빚는 법:①셋째 해일에 희게 쓸은 멥쌀 5말을 깨끗이 씻고 또 씻어(백세 하여) 물에 담가 밤재웠다가, (다시 씻어 헹궈 건져서) 물기를 뺀다. ②쌀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고, 솥에 물 5말을 팔팔 끓인다. ③고두밥이 익었으면 큰 자배기에 퍼 놓고, 끓는 물을 퍼부어 고루 섞어 두었다가, 고두밥이 물을 다 먹었으면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④진고두밥에 덧술을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⑤새 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차지도 덥지도 않은 곳에 두었다가, 음력 3월 15일 경에 용수박아 떠서 마신다.
*주품 명에 ‘해일주’라고 하였으나, <음식디미방>과 <홍 씨 주방문>의 ‘삼해주’와 술빚는 방법이 유사하며, 여산지방의 ‘호산춘’ 제조방문과도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덧술의 고두밥에 의한 희끗한 술빛깔 때문에 붙여진 ‘은화춘(銀花春)’
우리 전통주와 가양주에 있어, 술 빚는 법의 전형이랄 수 있는 주방문이 ‘방문주(方文酒)’와 ‘부의주(浮蟻酒)’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 하였으나, 그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안 되는 것 같다. ‘부의주’는 기본적으로 맑은 술, 곧 청주(淸酒)를 얻기 위한 방법과 함께 거의 모든 중양주의 덧술 빚는 법에 기초한 방문이라는 사실이고, ‘방문주’는 우리 전통주의 특징이랄 수 있는 밑술의 다양성과 함께, 덧술을 어떻게 빚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는 주방문을 보여준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두 가지 주방문은 전통주를 공부할 사람은 반드시 익혀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같은 맥락에서 <酒饌>이라는 ‘은화춘(銀花春)’의 주방문에서 유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백화주’ 등 다른 방문과 비교하여 별반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술 이름을 ‘은화춘’이라 한 이유를 알아야 하고, 특히 밑술에서 죽(범벅) 형태로 빚는 술의 발효기간이 ‘광릉춘’을 비롯하여 ‘동정춘’, ‘경액춘‘ 등 대부분의 춘주류가 계절에 따라 3일~7일인데 비하여, ‘은화춘(銀花春)’은 5~6일이라는 점과 함께, 실제로 술을 빚어보면 알 수 있듯, 다수의 주품들이 완전히 숙성되기까지 덧술의 발효기간이 대부분 14~ 21일로 발효기간이 비교적 긴 편이고, 계절에 따라서는 다소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은화춘(銀花春)’ 만큼은 못 박듯 밑술 5~6일, 덧술 17일로 그 기간을 정해 놓은 이유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방문을 보면 알 수 있듯 ‘은화춘’은 매우 평범한, 다시 말하면 특별할 것이 없는 방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평범(平凡)이라는 것은 가장 널리 빚어지는 술, 가장 대중적인 맛과 향기를 간직한 술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은화춘(銀花春)’의 방문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은화춘(銀花春)’은 또 밑술에 사용되는 쌀 양과 동량의 물이 사용되고, 덧술은 또 밑술의 2배량이 되는 쌀과 물의 양이 사용되는데, 밑술과 덧술에 2차례 누룩이 쓰이고 있으나 그 양이 2.5되로 쌀과 물 양의 의 3.3%에 불과하다.
결국, ‘은화춘(銀花春)’의 비법이 바로 밑술과 덧술의 발효기간, 그리고 누룩의 양과 고두밥 찌는 방법에 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춘주는 주로 겨울철에 빚기 시작하여 초봄까지가 적기인데, ‘은화춘(銀花春)’은 봄가을에 빚는 술이라는 것이고, 덧술의 고두밥을 ‘물러 퍼지게’ 익힌 데서 발효기간이 짧아지는 특성이 있으며, 소량의 누룩 사용에 따른 부드러운 맛과 뛰어난 방향을 갖는데, 덧술의 고두밥에 의한 희끗한 술빛깔로 인하여 ‘은화춘(銀花春)’이라는 주품 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은화춘(銀花春)’을 빚어 본 결과에 따른 답이라고 하겠다.
◈ 銀花春 <酒饌>
◊ 술재료▴밑술:멥쌀 2말 5되, 누룩가루 2되, 밀가루 1되, 끓는 물 2말 5되.▴덧술:멥쌀 5말, 가루누룩 5홉, 탕수 5말
◊ 밑술 빚는 법:①멥쌀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서 물기를 뺀 후,) 작말하여(가루로 빻아) 넓은 그릇에 담아 놓는다. ②솥에 물 2말 5되를 팔팔 끓여 쌀가루에 골고루 붓고, 주걱으로 고루 개어 죽(범벅)처럼 개어 (넓은 그릇에 나눠 담고)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죽(범벅)에 누룩가루 2되와 밀가루 1되를 합하고, 고루 치대어 술밑을 빚는다. ④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5~6일간 발효시킨다.
◊덧술 빚는 법:①멥쌀 5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쳐, 물러 퍼지게 고두밥을 짓는다. ②물 5말로 팔팔 끓여 차게 식히고, 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어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고두밥에 끓여 식힌 물과 밑술, 누룩가루 5홉을 한데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17일간 발효시킨 다음, 용수 박아 채주한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