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자재의 양주기술과 하룻밤 사이에 익히는 ‘일야주(一夜酒)’

박록담의 복원 전통주스토리텔링(42) 溫故知新

 

자유자재의 양주기술과 하룻밤 사이에 익히는 ‘일야주(一夜酒)’

 

 

우리나라 전통주는 그 종류가 많고, 한 가지 주품에서도 여러 가지 주방문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양주 관련 고문헌의 숫자가 80여 종에 이르고, 주품명만도 500가지를 선회하는데, ‘별법(別法)’이나 ‘우법(又法)’ 또는 ‘일운(一暈)’, ‘속법(俗法)’으로 표현되는 주품의 숫자까지를 환산하면 1천여 가지가 훨씬 넘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다양한 주품과 주방문 가운데 가장 단시간 내에 발효가 이루어지는 술을 묶어 ‘속성주류(速成酒類)’로 분류하는데 이러한 속성주류 가운데 가장 단시간에 이뤄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주품 명으로 ‘계명주(鷄鳴酒)’를 비롯하여 ‘벼락술’, ‘일야주(一夜酒)’를 <林園十六志>와 <양주방> 그리고 <曆酒方文>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曆酒方文>의 ‘일야주(一夜酒)’는 ‘일일주(一日酒)’ 보다도 더 짧은 시간동안인 하룻밤 사이에 완성시키는 주품이라는 뜻에서, 그리고 특히 시간을 다툰다는 점에서 ‘일일주’ 와는 또 다른 주방문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계명주’는 “저녁에 술을 빚어두면, 새벽닭이 울 무렵이면 술이 익는다.”고 하여 얻은 주품명이고, ‘벼락술’은 말 그대로 “벼락치기로 빚는 술”이라는 뜻이니 ‘일야주(一夜酒)’와 같은 의미의 주품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나, 사실 ‘계명주’와 ‘벼락술’은 ‘일야주(一夜酒)’처럼 단시간에 완성되는 술은 아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계명주’는 “찹쌀 3되를 깨끗하게 씻어 일어 물 6되와 같이 솥에다 넣고 된 죽을 쑤어 여름은 차게, 봄 ․ 가을은 따뜻하게, 겨울은 조금 뜨겁게 한다. 누룩, 효모, 맥아 등을 가루로 찧고 엿과 함께 죽에 섞어 항아리에 담는다. 겨울에는 5일, 봄 ․ 가을에는 3일, 여름에는 2일이면 술이 익는다.”고 하여, 계절에 따라 2일~5일 사이에 이뤄지는 술임을 알 수 있다.

<양주방>의 ‘벼락술’도 “좋은 막걸리를 찬물에 걸러서, 한 동이를 항아리에 넣고 찹쌀 닷 되로 밥을 묽게 지어, 누룩가루 닷홉과 밀가루 닷홉을 섞어서 넣어 두어라. 사흘 만에 따라 보아라. 맑은 술 세병은 된다.”고 하여 하룻밤 사이에 얻을 수 있는 술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역주방문>의 ‘일야주(一夜酒)’ 주방문을 보면, “멥쌀 1되를 백세 하여 맷돌에 갈아 가루로 빻은 뒤, 물 (4~5되)에 풀고 끓여서 풀같이 쑨 다음,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차게 식은 죽에 누룩가루 2홉을 넣고, 고루 저어준 후, 술병(독)에 담아 안친 다음, 술독을 따뜻한 온돌방에 놓아두고 끓어오르려고 할 때 몇 차례 술독을 흔들어 주는데, 밤 3시에 이와 같이 3~4차례 하고, 다음 날 아침에 사용한다.”고 하였다.

주방문을 보아 알 수 있듯, ‘일야주(一夜酒)’는 발효시키기 시작하여 한밤중에 술독을 흔들어 준다고 하였는데, 이는 산소공급을 통하여 효모의 증식을 도모하여 발효를 활발하게 이끌어 단시간 내에 발효를 끝내기 위한 것으로, 더불어 발효과정을 촉발시키는 과정에서 초래될 수도 있는 과발효(過醱酵)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예로서 “술독을 따뜻한 온돌방에 놓아두고, 끓어오르려고 할 때 몇 차례 술독을 흔들어 준다.”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술독을 따뜻한 방에 둠으로써, 고온당화를 유도하여 발효를 촉발시키는데, 이때에 술덧의 품온이 지나치게 상승할 수 있기 때문에, 흔들어 줌으로써 산소공급을 통하여 발효는 촉진시키되, 그에 따른 술덧의 온도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법이다.

이상의 예는 우리 조상들의 양주기술이 매우 자유자재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통주가 가양주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술을 빚는 사람은 우리들의 어머니 할머니였는데, 이들은 양주전문가도 아닌, 평범한 가정주부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특히 속성주에 담겨져있는 양주기술을 두고 편법이나 기교로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가 민간의 전승가양주를 배우기 위해 민가를 찾았을 때 경험했던 것으로, 이와 같은 방법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민간에서 노인들이 밤새워 술독을 끌어안고 흔들어주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술덧이 제 때에 끓어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노인네들이 참 한심스럽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술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그것이 ‘오랜 경험에서 오는 과학적인 지혜’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술덧이 제 때에 끓어오르지 않는 이유를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수십 년 술을 빚어 온 노인들에게서 “제 때에 끓지 않는 술독을 끌어안고 흔들어주다 보면, 술이 제대로 돌아온다.”는 것이 그 대답이었는데, 이는 순전히 ‘경험방(經驗方)’이라고 할 수 있다.

술독을 흔들어준다는 것은 공기를 불어넣어 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사람의 체온을 이용하여 술독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술은 온도가 높아지면 발효가 활발해진다는 것을 경험에서 터득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술독을 안고 흔들어주는 작업이 왜 하필 노인들의 몫이었을까’하는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젊은 사람’과 ‘노인’의 차이에서 오는 상징성이라고 생각된다. 젊은이들은 노인들 보다 성격이 급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하려는 의도로 일에 임하는 경향이 강하여 술독을 세차게 빨리 흔들어주려는 성향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단시간에 빨리 끝내버리려는 생각 때문에 노인들처럼 꾸준하면서도 지속적인 노력에 소홀한 반면, 노인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의도보다는 오랜 경험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되는대로 지켜보려는 성향이 짙다는 점에서 술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닌, 효모로 하여금 발효가 잘 이뤄지도록 적당량의 산소를 제 때에 공급해주는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지혜를 발휘해 온 셈이다.

<曆酒方文>의 ‘일야주(一夜酒)’와 유사한 주품으로 <술 빚는 법>과 <술 만드는 법>의 ‘일일주(一日酒)’ 주방문을 보면, 각각 “죽을 술독에 담아 안치는데, 따뜻할 때 누룩 5홉을 넣고, 대나무 막대기나 주걱으로 2~3시간 저어준 후, 거품이 일어나면 즉시 술독을 두껍게 싸매서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킨다.” “좋은 술 1사발에 물 3말과 누룩 2되를 섞고, 풀어서 항아리에 담아 수곡(水麯)을 만들어 시루에 쪄낸 고두밥을 식히지 말고 항아리에 넣고 매우 저어준다.”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주방문은 ‘일야주’와 양주과정은 다르지만, 일반 양주법과는 다른 방법을 동원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점에서 속성주류의 다양한 양주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 기록이 여인네들에 의해 쓰인 한글 기록인 사실을 감안하면, 수십 년간 술을 빚어 온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방법들이 과학적으로도 매우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방법들이라는 사실에서 “경험이 과학을 앞선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대부분의 속성주들이 그러하듯 <曆酒方文>의 ‘일야주(一夜酒)’ 역시 알코올도수가 높은 술은 아니라는 것이다. 술빚기에 사용되는 쌀의 양이 적다는 이유도 있지만, 쌀을 가공하는 방법이 죽이라는 사실과 함께, 자주 흔들어줌으로써, 발효를 빨리 끝내려다보니 효모의 증식이 과다하게 일어나, 결과적으로는 같은 비율로 빚은 술보다 알코올생성은 낮아진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어디 ‘일야주’ 뿐이랴. 몇 시간 만에 발효를 끝내서 마실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한다.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인내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쉽게 지치고 만다. 그래서 노인들이라야 가능한 술빚는 방법으로, 이 방법 역시 ‘일야주(一夜酒)’와 같은 의미로 해속할 수 있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죽을 쑤어서 미지근하게 식기를 기다렸다가, 누룩을 조금 넣고 죽젓광이로 젓되, 한 방향으로 2~3시간 동안 일정한 속도로 저어주면 그 사이에 술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다시 2~3시간이면 마실 수 있는 술이 된다.

우리나라 속성주 주방문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가능한 단시간에 발효를 끝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해 왔다는 것인데, 가양주가 사라지면서 그에 따른 양주기술도 맥이 끊기고 말았다는 사실이고, 무엇보다 ‘뭣도 모르면서’ 서양의 와인이나 맥주, 사케에 대한 동경에 사로잡힌 나머지 우리 것에 대한 경시사상이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一夜酒方 <曆酒方文>

◇술 원료 : 멥쌀 1되, 누룩가루 2홉, 물 (4~5되 또는 8~10되)

◇술 빚는 법 : ①멥쌀 1되를 백세(물에 백번 씻어 매우 깨끗하게 헹군 뒤, 새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말갛게 헹궈서 물기를 뺀 뒤,) 맷돌에 갈아 가루로 빻는다. ②쌀가루를 물 (4~5되 또는 8~10되)에 풀고 끓여서 풀같이 쑨 다음, 죽이 차디차게 식기를 기다린다.③누룩가루 2홉을 온수에 넣고, 고루 풀어준 후, 체에 밭쳐서 누룩 물을 만든다. ④쌀죽에 누룩 물을 합하고, 고루 주물러서 술밑을 빚은 다음, 술독에 담아 안친다.⑤술독을 따뜻한 온돌방에 놓아두고, 술이 발효되어 활발하게 끓어오르려고 할 때 몇 차례 술독을 흔들어 준다.⑥밤 3시에 이와 같이 3~4차례 하고, 다음 날 아침에 사용한다.

* 주방문 말미에 “빛깔은 비록 담담하지만, 맛이 준열하다. 빚은 날짜가 짧기 때문에 잠깐 취했다가, 즉시 깬다.”고 하였다.

 

<一夜酒方> 白米一升百洗浸水磨成汁作糊若洗踏糊取好曲末二合篩過於溫水調均於右 糊(芬)米飮然納于甁中安於溫突及其將熟數三動(榣)其甁更安於溫突至三更若是者三四次其翌朝取用色雖淡而味則烈以日數少故輴醉卽醒(백미 1되를 백번 씻어서 물에 담가 두었다가 맷돌에 갈아 풀을 만드는데 마치 세탁용 풀같이 묽게 만든다. 좋은 누룩가루 2홉을 따뜻한 물에 타서 체로 받쳐서 위의 풀과 골고루 섞어 미음과 같이 만들어서 병에 담아 따뜻한 온돌방에 놓아둔다. 술이 익으려 할 때에 그 술병을 몇 차례 흔들어 요동시키고 다시 온돌에 놓아둔다. 밤 3시경에 이와 같이 3~4차례 하고 다음날 아침에 사용하면 빛깔은 비록 담담하지만 맛이 준열하다. 빚은 날짜가 짧기 때문에 잠깐 취했다가 즉시 깬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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