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가양주(家釀酒)와 세시풍속(下)
상월(上月)의 성주제(聖主祭), 시제(時祭)
상달은 국조 단군이 최초로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하였음을 기리는 뜻으로, 음력 10월 3일에 개천 행사를 갖는다. 또 10월 보름을 전후하여 4대 조상까지 사당에서 모시지 못한 5대조 이상의 조상에 대하여, 산소에서 한 번에 지내는 제사를 ‘시제(時祭)’라고 한다. 10월 15일 전후하여 5대조까지의 제사를 한꺼번에 지낸다. 제물은 후손 중에서 만들거나 산지기가 제실에서 장만하는데 ‘반병(飯餠)’과 ‘주찬(酒饌)’을 마련하여 집단으로 지낸다.
동짓달
음력 11월은 겨울의 시작이자 밤이 깊어지는 시기이다. 그래서 명기 황진이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 다음과 같이 애절하게 읊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冬至(동지)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春風(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 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초장은 임이 없이 홀로 지내야 하는 동짓달의 밤은 주관적으로 볼 때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 시간으로 추상적인 시간을 구체적인 사물로 형상화시키면서 임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사랑을 절실히 환기시키는 표현의 솜씨가 두드러진다. 중장은 길고 외로운 밤을 잘라 두었다가 임과 함께 보내는 밤을 더 길게 하고 싶다는 것이 이 시조의 중심 시상이다. 시적 화자는 임과 함께 보내는 밤 시간에 잇기 위해 동짓달의 춥고 외로운 밤 시간을 잘라서 따뜻한 이불 아래 넣어 두려 하고 있다. 종장은 그리운 임이 오시거든 이불 아래 넣어 둔 기나긴 밤을 다시 펼쳐 내겠다는 내용으로 임에 대한 그리움을 대담한 비유법을 통해 표현하였다. 이러하니 임이 없고 술은 있고, 반면에 술은 있는데 임이 없는 동짓달 기나긴 밤은 기다림 미학을 극치화 시킨 것이다.
겨울 ‘冬’의 의미는 본래 끈을 묶은 모양으로 계절의 끝인 겨울을 상징하다가 추위의 표현인 얼음 ‘빙(氷)’의 의미를 넣어서 만든 글자이다. 죽음과 암흑의 상징이면서도 역시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암시해 주고 있다. 겨울의 추위는 다음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치고 삼한 사온(三寒四溫)이면 풍년, 이상 난동(暖冬)이면 흉년, 조상에게 묘제(墓祭)를 올리는 시향(時享)을 지내는 시기이기도 하다.
‘동지(冬至)’는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다. 양(陽)이 부족하고 음(陰)의 기운이 최고치에 이른 날이어서 귀신이 가장 움직이기 좋은 날이다. 예부터 동양의 음양오행 색깔중 양의 기운을 가장 많이 나타내는 색은 붉은 색이기에 양을 상징하는 붉은 팥죽으로 음의 귀신을 물리치려고 동짓날 팥죽을 먹어왔다. 고대로부터 해(日), 불(火), 피(血) 같은 붉은 색은 생명과 열정을 나타냈기에 양의 기운이 생겨나는 동지에 붉은 팥죽을 먹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전통인 듯하다. 이사를 하면 팥떡(시루떡)을 만들어 집안에 잡귀와 액운이 깃들지 않도록 하는 것도 다 그런 뜻이기도 하다.
섣달 그믐의 수세(守歲), 망년주와 송년주
섣달 그믐날 밤은 방, 뜰, 부엌, 곳간, 변소 할 것 없이 집안 구석구석에 불을 밝혀놓고 잠을 자지 않고 날을 새우니 이를 ‘수세(守歲)’라고 한다. 시재(時才)에 뛰어난 고려의 이태백이라 불린 문인 이규보가 <수세(守歲)>라는 시를 남겼다. 여기에서도 섣달그믐에 마시는 술 이야기가 나온느데 아마도 ‘초백주(椒柏酒)’를 일컬은 것으로 생각된다.
수세(守歲)/ 이규보(李奎報)
문상삽도하궤탄(門上揷桃何詭誕)/ 대문에 꽂는 도부(桃符) 너무도 허황되고
정중폭죽내지리(庭中爆竹奈支離)/ 뜰 안의 폭죽 소리 시끄럽고 지루하네
벽온단립유허어(辟瘟丹粒猶虛語)/ 벽온단으로 온역(瘟疫) 피함도 헛말이지만
위도심배고불사(爲倒深杯故不辭)/ 깊은 술잔 기울이려 짐짓 사양 않노라
위의 시는 짧은 칠언 절구이지만 제야에 행하는 여러 풍습이 고루 담겨 있다. 보통 수세(守歲)는 ‘해지킴’이라고도 하는데, 섣달그믐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풍습을 말한다. 소식(蘇軾)이 지은 <궤세(饋歲)>, <별세(別歲)>, <수세(守歲)> 시 서문에 “한 해가 저물 때에 서로 음식물을 가지고 문안하는 것을 ‘궤세’라 하고,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서로 불러 함께 마시는 것을 ‘별세’라 하고, 섣달그믐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것을 ‘수세’라 하니, 촉(蜀) 지방의 풍속이 이와 같다.”라고 하였는데,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때부터 수세의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첫 구절에 나오는 도부(桃符)는 복숭아나무로 만든 부적이란 의미이다. 이는 악귀를 쫓는 부적의 일종으로 복숭아나무 판자에 신도(神荼)와 울루(鬱壘)라는 두 신상(神像)을 그려서 대문 곁에 걸어 두어 악귀를 쫓는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마당에서 폭죽을 터뜨려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도 벽사(闢邪), 즉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풍속의 하나였다. 또 열병을 물리치는 데 유용하다는 벽온단(辟瘟丹)을 만들어 향으로 피우거나 단약으로 술과 함께 복용하기도 하였다. 궁중에서는 내의원에서 제작하여 임금께 진상하기도 하고 민간에서 만들어 서로 선물하기도 하였다. 이규보는 이런 부적이나 폭죽놀이, 벽온단 등은 모두 실제 효용이 없는 헛소리라 치부하면서도 제석(除夕)에 술을 마실 수 있다면 사양하지 않겠노라는 호쾌한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
섣달(12월)을 ‘납월(臘月)’, 그믐날 밤을 ‘제석(除夕)’ 또는 ‘작은 설’ 이라고 한다. 12월 섣달은 ‘납월(臘月)’이라 하며, 섣달 그믐날은 ‘납일(臘日)’이라 불린다. ‘납(臘)’은 ‘승려의 한 해’를 뜻하는 말로, 승가의 한해가 마무리됨을 뜻한다. 1년의 마지막 날로 새해의 준비와 한 해의 끝맺음을 하는 날로써, “조상의 산소에 성묘를 하고, 친척 일가를 찾아 묵은세배를 하기도 하며, 밤늦게까지 호롱불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왕궁의 풍속으로는, 조선조 연산군은 ‘그믐날 밤을 즐기며 수세하라’고 승지에게 술을 하사한 기록이 있고, 중종 이후 명종 때에는 도학자들이 조정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러한 세속적 놀이가 없어졌다가, 선조 때부터 다시 제석, 수세 풍속이 이어졌다.
다음은 조선시대 4대 문장가로 꼽히는 택당 이식(澤堂, 李植, 1584~1647)의 ‘섣달 그믐날 밤에 우연히 쓰다’라는 시다. “3년 동안 훔친 국록(國祿) 이미 부끄러운데(三年竊祿已堪羞)/ 새벽 시간 묻다 보니 어느새 세모가 닥쳤어라(問夜如何歲忽遒)/ 주사위 노는 애들 모습 그래도 어여쁘다만(蒲局尙憐兒子戱)/ 초백주(椒柏酒) 마신들 장부의 근심 풀어지랴(椒觴詎解丈夫憂)/ 타 들어간 등화(燈火) 보며 분분한 세태 생각하고(紛紛世態看燈燼)/ 어김없는 물시계 소리 곤곤한 천기가 느껴지네(衮衮天機閱漏籌)/ 말안장 또 올려놓고 대궐 조회 서두나니(鞴馬又催朝北闕)/ 얇은 솜옷 파고드는 새벽 찬 바람(曉風寒劈薄綿裘).”
섣달 그믐밤에 ‘초백주’를 마시고, 설날 아침인데도 대궐로 출근하는 모습이 보인다. 초백주는 그리 복잡한 술은 아니다. 서유구가 쓴 <임원십육지(林園經濟志)>에 나온 양조법으로는 섣달 그믐날 후추 7알과 동쪽으로 뻗은 잣잎 7개를 따서 술에 넣으면 된다. 이 술을 마시면 괴질이나 전염성이 강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흔히 술 빚을 때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가지로 술을 저으라는 처방이 있듯이, 동쪽으로 뻗은 잣잎을 넣으라는 것은 삿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지닌다.
설날 아침에 마시는 ‘도소주’는 훨씬 복잡하게 만들고, 의미 부여도 많이 되어 있다. 도소주(屠蘇酒)의 한자를 해체하면 재미있는 뜻이 나온다. ‘도소주(屠蘇酒)’는 돌아가신(尸) 분(者)을 위하여, 한 지붕(戶) 아래 사람들이(者) 모여 나물(艹)과 생선(魚)과 밥(禾)을 차려두고 모여 앉아 마시는 술(酒)이라는 뜻이다. 곧 설날 차례 상에 올려놓았다가 마시는 술이다. <동의보감>에서는 도소주 마시는 것을 ‘도소음’이라 하며, 그 양조법과 마시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사마천(司馬遷)은 하늘에 제사 지내고 사당에 제사 지내는 때도 술이 아니면 신령이 흠향하지 않고, 군신과 친구 사이에도 술이 아니면 좌석이 아름다워지지 않으며, 싸움을 하고 서로 화해하는데도 술이 아니면 성사되지 않는다. 그러나 술은 또한 일을 망치기도 하기 때문에 함부로 마셔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였다.
특히 농경사회인 동양에서는 세시(歲時)나 절기(節氣) 개념을 무척이나 중요시하였다. 이들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그들의 소망과 희망을 담은 가양주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농경사회에서 술은 기운을 북돋아주고 함께 나눠 마시며 서로를 응원해주는 역할을 했다. 추수 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술을 통해 자신과 더불어 서로를 위로했을 것이다. 중요한 일이 끝난 후, 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술로 회포를 푸는 문화는 전 세계가 비슷한 것 같다.
술은 적당히 마실 수 있다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이로운 측면이 있다. 인간은 물이 없이 살 수 없듯이 술이 없이 삶과 문화를 얘기할 수는 없다. 술은 우리 일상에서 많은 의미를 지닌다. 좋은 일이 있으면 술로 축하를 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술로 위로를 한다. 술이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하고, 마음속에 숨겨왔던 이야기를 털어놓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고래로부터 물을 물리적, 지리적 형상이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위상으로 받아들여 왔다. 물의 원형성을 곧 세상의 창조력, 영원한 생명력, 풍요의 근원, 청정한 정화력으로 생각하여 왔던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물은 농경생활의 실용성을 훨씬 뛰어넘어 약수, 정화수처럼 성스러움 그 자체였다. 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불도 생명력 또는 창조력의 상징으로 여겨 왔으며, 불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파괴력을 제사에서의 소지, 향불, 정월대보름의 쥐불놀이처럼 흔히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청정의 힘, 정화의 힘으로 받아들였다. 흔히 물과 불을 상극관계로 생각하지만, 물과 불의 원형성은 동일하므로 오히려 상생관계라고 하는 것이 옳다.
우리 민족이 본 술은 물과 불의 상생적 결합이다. 물과 불은 서로 밀어내고 서로 이기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조화하고 보완하는 신비가 있다. 물과 불의 조화는 푸른 열매인 벼[禾]로 변화한다. 그리고 벼는 술을 만든다. 그러므로 평화(平和)는 벼[禾], 곧 밥과 술을 먹는 것[口]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곧 물과 불의 조화로 만들어진 밥과 술을 나누어 먹는 것이 평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