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연구개발원 李相均 원장
술은 시간적 여유 있을 때 빚어야 좋은 맛도 나고 향도 난다
청평호반은 계절에 관계없이 아름다운 명소다. 봄은 봄대로 아름답고, 한 여름은 호반에서 수상스키를 타는 구경만으로도 더위를 날려 버릴 수 있는 곳이다. 울긋불긋 단풍이 드는 계절에는 호반에 비친 단풍이 마치 비단을 깔아 놓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겨울은 어떤가. 관광객이 뜸해 한가롭게 풍광을 감상할 수도 있고, 호젓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어 좋다.
해발 632m의 호명산 자락이 급경사를 이루며 호반을 끼고 생겨난 굽은 길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다. 청평호반은 서울에서 불과 50여 km 떨어진 곳이므로 당일코스 관광으로는 최적지라 할 수 있다. 남이섬과 자라섬을 지척에 두고 있어 더욱 그렇다.
이 처럼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전통주연구개발원’이 터를 잡은 것은 아마도 이상균(李相均, 54세)원장의 타고난 눈썰미가 있어서는 아닐까.
전통음식배우다 전통주에 빠지다
‘전통주연구개발원’은 호반로에서 계곡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내비게이션이 없더라면 한참을 물어야 찾을 수 있는 외딴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첫 보기엔 명당자리다. 한 여름에는 피서지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일 게다.
좋은 곳에 터를 잡았다는 말에 이 원장은 “제가 태어난 곳이 인천 송도라 어렸을 적부터 물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래서 청평호반으로 자주 여행을 오다 보니 이곳에 정이 들더라고요” 이곳에 개발원을 짓게 된 이유란다.
이 원장의 명함을 받아 보면 그의 직책이 다양하다.
‘전통주연구개발원’이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지정 받은 전통주교육기관이란 것 외에도▴경기도, 가평군 농진청 지정 전통주 체험장▴(사)한국조리기능인협회 부회장▴한국전통주 소믈리에협회 부회장▴전통주 전문 강사 심사위원 등이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조리협회 부회장’이란 직책이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제가 술을 배우게 된 것은 윤숙자 소장(한국전통음식연구소)으로부터 전통음식을 10여년 배웠습니다. 고서에 있는 떡, 폐백음식 같은 것을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통주도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서에 있는 음식 연구도 하고, 만들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리협회와도 인연을 갖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술을 배운 것은 2004년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박록담 소장으로부터 라고 했다.
전통음식도 어렵지만 전통주를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이 원장은 보다 체계적이고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고 차제에 ‘전통주연구개발원’을 설립했다고 한다.
술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빚어야 좋은 술 나와
“술과 관련된 많은 고서들을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에서 이해가 되지 않고, 미심 적었던 부분이 다른 책에서 찾아 낼 수 있었던 것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이때의 기분은 낚시꾼들이 월척을 낚을 때의 기분 못지않았습니다.”
이런 공부를 통해 전통주의 역사나 문화를 터득하게 되었고, 전통주 강의를 할 때 보다 쉽게 강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전통주연구개발원’이 하는 일은 술을 한 번도 빚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술을 잘 빚도록 하는 일이다. 또한 술을 빚는 사람들의 전통주 사랑, 전통주 재현, 주류 예절, 홍보, 전시, 교육 등이 주 업무다.
전통주는 쌀, 누룩, 정제된 물만 있으면 빚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맛있는 술을 빚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물음에 이 원장은 거침없이 “손맛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손맛이란 말은 참으로 많이 듣는 말이다. 무슨 뜻일까?
“일반적으로 ‘손맛’이 잘못 알려진 부분이 손에 좋은 균이 있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그렇지 않고요, 술을 빚을 때 고두밥과 누룩을 얼마나 잘 버무려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같은 장소에서 술을 빚거나 김치를 담글 때 얼마나 잘 버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시간과 힘의 적절한 배합이라는 것이다. 발효음식은 거의 같은 원리라는 것이 이 원장의 설명이다.
이 원장은 덧 붙였다. “술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빚어야 좋은 술맛이 나고 향이 난다.”고 했다.
이 원장, 농업기술센터에서 인기 있는 초빙상사
정부는 각 지자체가 관할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자체적으로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농촌진흥청 산하의 농촌지도소를 1997년 1월 1일부터 국가 직에서 지방 직으로 소속을 변경하여 농업기술센터를 설립했다. 이 센터에서는 농촌지도사업, 교육훈련, 농업특화사업 등을 관장하는데 농산물의 최대 소비가 술 빚는 것으로 판단하여 전국의 많은 농업기술센터가 전통주 빚기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상균 원장은 인기 있는 초빙강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일 년에 전국으로 강의 나가는 지역이 평균 15개 정도 됩니다. 한 지역에서 평균 20여명의 수강생들에게 강의를 하는데요, 농촌 지역이라 대부분 나이 많으신 분들이 술 빚기를 배우러 오십니다.”
강의를 시작하면 조시는 분들도 많고, 이론은 그만두고 술 빚는 것부터 배우겠다는 사람들도 많단다. 그래도 원리부터 술 빚는 것을 가르치다 보면 어느 사이 술 빚기에 재미를 붙여 연구회까지 구성하는 것을 보면 교육의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남아도는 쌀로 술을 빚으면 쌀 소비가 촉진되고 좋은 술을 빚어 이웃끼리 나누면 지역 화합도 될 수 있는 선 순환적 역할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 원장은 피곤도 무릅쓰고 전국으로 출강을 나간다고 했다.
한 지역에서 전통주 교육을 실시하면 기초, 중급, 고급반으로 나누어 교육을 실시하고 한 과정에서 최소 30-40시간을 강의를 한다. 술은 그저 마시고 즐기는 것으로만 알던 사람들이 점차 술 빚기에 몰입하여 자신들이 빚은 술을 각종 대회에 출품하여 상을 받는 과정을 지켜보면 언젠가 과거 집집마다 술 익는 냄새가 나그네 발길을 멈추게 하던 시절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이 원장은 말했다.
2017 소상공인경진대회서 국무총리상 수상
전통주연구개발원 팀이 지난 11월 2일 ‘2017 소상공인경진대회’에서 국무총리 상을 수상 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하고 소상공인연합회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주관하는 ‘2017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 및 기능경진대회’가 지난 11월 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됐다. 이는 11월 5일 제2회 소상공인의 날을 맞아 매년 별도로 개최됐던 전국 소상공인대회와 기능경진대회를 통합해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다양한 부대행사와 함께 열렸는데 업종별 기능경연을 통해 우수한 소상공인을 발굴·시상하기 위해 열렸다. 이상균 원장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보다 노력하고 귀한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만들기 위해, 교육하기 위해 열정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첨가물 없이 누룩만 사용하여 빚어 香과 味를 완성한 ‘淸 진주’
이론으로 무장이 잘되어 있어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상균 원장이 전통주에 대한 이론 교육이 뛰어나도 실제로 술을 빚는 것과는 다르기 마련인데 최근 이 원장이 직접 빚은 알코올 도수 16%인 약주 ‘淸 진주’가 주당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375㎖ 유리병에 담은 ‘淸 진주’는 현재 강남 압구정 백곰막걸리(02-540-7644), 종로 온지음 한정식(070-4816-6610), 홍대 얼쑤(02-333-8897), 홍대 산울림1992(02-334-0118) 등에서 맛볼 수 있는데 ‘淸 진주’는 가평의 청정지역에서 좋은 쌀과 물을 사용하여 100일 이상 저온 발효와 숙성을 통하여 완성된 술로 멥쌀 죽으로 밑술을 발효하고, 찹쌀 고두밥으로 덧술 하는 삼양주 기법의 술(쌀, 누룩, 물)이외의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저온에서 장기발효로 향과 맛을 낸 고급 프리미엄 약주다.
이 술을 마셔본 사람들은 모처럼 좋은 술이 나왔다고 칭찬이 자자하지만 대량 생산을 하지 않는 관계로 ‘전통주연구개발원’(031-581-1054) 에서만 직접(택배) 구입이 가능하다.
이 원장은 현재 12%인 ‘濁 진주’와 40%인 ‘진주이슬’을 개발해 놓고 출하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술 제조면허는 획득한 상태지만 전통주 교육기관이 일반 양조장처럼 지나치게 양조에만 신경 쓰는 것도 모양세가 좋지 않기 때문이란다.
빚은 술에서 꽃향기가 나게 하려면 최소한 5년은 배워야
500여 평 대지 위에 세워진 개발원은 교육장을 비롯해서 3개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건축의 일부분을 제외하곤 이 원장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교육장에 들어서면 소줏고리 같은 장비들이 즐비하고 한 벽면은 각종 상장들로 가득하다. “웬 상장이 이리 많으냐?”는 질문에 “여기 걸린 것은 반도 안 된다”며 “자랑 같지만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상을 비롯해서 경기도지사상, 관광공사 사장상 등을 여러 번 받았다”고 했다.
벽면을 장식한 사진들은 이 원장이 직접 찍은 사진들이다. 중학교 때부터 찍기 시작한 사진은 프로작가 수준급이다. 이번 지면에도 이 원장이 직접 찍은 작품들이 있다.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우리 술 교육훈련기관’으로 지정 받은 전통주연구개발원은 교육프로그램으로 ▴초급(단 양주):전통주의 역사와 이론 등 술의 기본과정으로 이론과 실습 병행▴중급(이 양주):양조의 이론과 실태를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과정▴고급(삼양주):심화수업으로 전문가 과정▴누룩반:술에 귀한 미생물을 직접 만들어 사용 하는 과정을 교육한다.
이밖에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전통주 홍보와 컨설팅도 실시하고 있다.
이 원장에게 물었다. 맛 좋은 술을 빚으려면 얼마나 공부를 해야 하나요?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곡식이 알코올로 변하기만 해도 신기하고 좋아들 하거든요, 그러다가 조금 욕심이 생기면 맛들을 비교하게 됩니다. 신맛이 나기도 하고 단맛이 나기도 하는 단계를 지나면 그 때는 향을 따집니다. 수박이나 참외 같은 향이 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꽃향을 좋아합니다.”
5년 정도 배워야 꽃향을 낼 수 있다니 술 빚기를 배운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닌 듯싶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