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마시기엔 너무 아까운 오양주(五孃酒)로 빚은 천비향

좋은술이 생산하고 있는 술들.

‘千秘香’ 빚는 (주)좋은술 이예령 대표

 

혼자 마시기엔 너무 아까운 오양주(五孃酒)로 빚은 천비향

 

 

이예령 부부가 열심히 술을 빚는다. 두 사람의 미소가 보기 좋다. 김승우 부사장(좌) 이예령 대표(우)천년 비밀의 맛과 향을 간직한 전통술이 ‘천비향(千秘香)’이다. 주명(酒名)치고는 참으로 멋진 이름이다. 천비향은 그동안 각종 술 관련 전시회에 나가서 좋은 평판도 받았고, 상도 많이 받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유명한 세계 술 품평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전통주다. 청와대 만찬주로도 채택된 적이 있을 만큼 천비향의 향은 멀리 퍼져 나가고 있다.

천비향이 의왕시 백운호수 부근에서 터 잡고 술을 빚을 때 본란에 소개를 한 적이 있었다. 2017년 평택으로 둥지를 옮기고 나서 많은 변화를 꽤하고 있는 천비향의 향기가 퍼져 나와 이번에 재 취재를 하게 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초등학생이 대학생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새로 지은 건물도 그렇지만 숙성실에서 익어가고 있는 어마어마한 술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많다.

이 술들은 보통 술이 아니라 오양주(다섯 번 빚는 제조방법)로 빚어 6개월 동안 숙성되고 있는 술들이다. 일반적으로 술이 익어가는 숙성실에 들어가면 술 냄새가 진동해서 마시지 않아도 취기를 느낄 정도인데 천비향 숙성실에서는 그런 술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바로 여기에 천비향의 비법이 숨어 있었다.

 

천비향 빚는 일에 온 가족 올인 하다

좋은술 이예령 대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수 있는 술 만들기에 최선을 다한다천비향이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우선 경영자가 이석준 대표(지금은 회장)에서 이예령(53) 대표로 바뀌었다.

전임 이석준 대표가 2013년 8월에 전통주 주조사자격증을 획득하고 나서 이 대표를 비롯해서 이예령 씨 등 6명이 상호 출자하여 술도가를 설립한 회사가 농업회사법인 (주)좋은술이다. 이예령 씨도 이런 일련의 교육과정을 이수했고, 전통주주조사자격증도 땄다. 의기투합하여 회사를 차렸지만 초창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술만 잘 빚으면 잘 팔리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생각들이었지만 사업이란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의협심으로 술도가를 꾸려나갔지만 자본금도 다까먹고 자꾸 재투자를 해야 하기에 한 두 사람 떨어져 나갔다.

문 닫기 일보 직전 이예령 대표가 팔 걷고 나섰다. 때 마침 이 대표의 부군인 김승우 씨(57, 현 천비향 부사장)가 국민은행을 다니다가 명예퇴직을 했다.

이 대표는 남편이 평생직장을 다녀서 받은 퇴직금을 천비향에 투자해 줄 것을 간청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펄쩍 뛰던 남편도 이 대표의 간청에 못 이겨 퇴직금을 천비향에 쏟아 부었다. 그래도 모자란 자금은 은행융자를 받아 지금의 공장을 짓게 되었다고 이 대표는 그 간의 속사정을 털어 놓았다.

2017년은 공장 짓고 준비하느라 정신없었고, 지난해에는 죽어라 술만 빚었다고 했다.

수입은 적고, 할 일은 태산이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할 일이 많아지자 골프선수였던 큰 딸도 선수생활을 접었고, 직장엘 다니던 작은 딸도 달려들어 술 빚는 일을 거뒀다. 김승우 씨도 열일제치고 술 빚는 일에 앞장섰다. 술 빚는 일로 가족 총동원령이 떨어진 것이다.

작은 딸 담희 씨는 어머니 대를 잇겠다고 본격적으로 술 빚는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해 경기도농업기술원과 평택시농업기술센터 등에서 술과 농업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를 개발해 이 대표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시댁식구들 술 시중들다가 생각해낸 전통주

이예령 대표는 평택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의 부군인 김승우 씨를 만난 것은 건설회사를 다닐 때였다. 시집을 가보니 11식구의 대가족이었다. 11명 가운데 남자는 시아버지를 포함해서 5명. 모두가 술이라면 둘째가랄 만큼 술들을 잘 마셨다. 때론 남편의 친구들이 몰려오면 술시중을 도맡아 했다. 느는 것은 술안주 요리였다. 이 때 느낀 것은 소주 말고 우리의 전통주를 마시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이 대표는 물론이고, 친정 식구 모두가 술과는 담쌓고 지내는 사람들인데 술시중을 드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술 마시는 식구들을 위해 술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이 대표는 전통주 배우는 곳을 수소문 한 끝에 찾아낸 곳이 가양주연구소였다고 했다.

술 공부하면서 만난 이가 이석준 씨를 비롯한 천비향 발기인들이었다.

“참 열심히 배웠습니다. 누룩과 쌀만 가지고 빚어 놓으면 술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고 즐거웠는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빚은 술을 가족들에게 먹어보라고 했더니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주만 찾더란다. 이예령 대표가 술과 접하게 된 이야기다.

이 대표의 부군인 김승우 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술자리가 잦았고 술이라야 소주 같은 독한 술만 마시다 보니 속이 많이 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대표가 빚은 천비향을 맛 보고나서는 소주는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천비향을 마시면서 위장은 과거보다 더 좋아졌다고 했다. 그의 얼굴이 밝고 건강한 것으로 보아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이 백약지장이란 말이 적용된 것일까.

 

정부가 전통주 업계 발전 위해 관심 가져달라

이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 여건에서 전통주를 빚는 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라고 했다.

왜 그럴까?

여타 산업에 비해 정부의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좋은 술을 빚기 위해선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우리의 전통주도 외국의 유명한 양주나 일본의 사케, 빠이주처럼 오랜 숙성된 술을 시중에 내 놓기 위해선 계속 술을 만들어 저장해둬야 하는데 자금 사정들이 여의치 않아 금방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 술 맛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천비향의 경우 지난해는 쌀을 20톤가량 사용했고, 올해는 35톤 정도 소비를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소규모 업체에서 많은 자금을 투입해서 생산품(술)을 쌓아 놓기란 어려운 것이다. 이런 경우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것이다.

특히 평택지역은 쌀이 좋아 타 지역에 비해 농협창고가 항상 비어 있다. 그 만큼 비싸게 주어야만 쌀을 구입할 수 있는데, (주)좋은술의 천비향은 경기도 평택의 지역특산주로서 다소 비싸더라도 좋은 술맛을 위해 평택 쌀만을 고집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에어락’으로 외부 공기 차단하는 비법이 숨어 있다

잡균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에어락.시장에서 일반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막걸리 라벨에는 원료표시에서 백미(외국산), 입국, 말토올리고당, 곡자(밀), 혼합제제효모, 락토밀(우유), 덱스트린, 탄산, 아스파담, 구연산 같은 첨가물이 들어있다는 표시를 한다.

그런데 천비향 어느 술병에도 그와 같은 첨가제가 없다. 쌀과 누룩, 정제수뿐이다. 술그리다:알코올 10% ▴평택산 햅쌀 42.68%▴정제수 54.88%▴전통누룩 2.44%(1개월)

◇술예쁘다:알코올 13% ▴평택산 햅쌀 45.14%(홍국함량 5%의 홍국쌀 1.25% 포함)▴정제수 51.73%▴전통누룩 3.13%(2개월)

◇천비향 오양주(탁주):알코올 14%▴평택산 햅쌀 46.73%▴정제수 51.40%▴전통누룩

1.87%(2개월)

◇천비향 오양주(약주):알코올 16%▴평택산 햅쌀 55.35%▴정제수 42.44%▴전통누룩

2.21%(6개월) (*괄호안 개월 수는 병입일로부터 유통기간)

첨가제를 넣는 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천비향은 이런 첨가제를 넣지 않고도 맛있는 술맛을 내는 것에 대해 이 대표는 “평택이 좋은 쌀로 유명한 곳인데 재료가 좋으니 술맛도 더 좋은 것 같아요. 또 정제효소나 아스파탐 같은 인공재료나 감미료를 쓰지 않고 전통방식 그래도 술을 빚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믿어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기자가 보기엔 꼭 그렇지만은 아닌 듯싶다.

우선 타사가 하지 않는 오양주로 술을 빚고 오랜 기간 숙성을 해서일 것 같다. 그리고 천비향 양조장만이 사용하고 있는(?) 발효나 숙성 통에 ‘에어 락’을 적용하고 있는 것도 한 몫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외부공기가 숙성 통으로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여 잡균이 번식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인데 굉장히 위생적으로 보였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술맛을 결정짓는 비법이 아닌가 여겨졌다.

좋은술에서는 전통주조 방법으로 빚은 천비향으로 증류한 40도와 53도 화주(火酒)도 개발 중에 있다고 했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아직은 출시 일정을 잡지 않고 있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면서 기자에게도 맛 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술지게미로 빵도 만들고 냉면도 만들어요”

평택에 지은 ‘좋은술’의 제조장은 haccp(해썹)기준에 맞춰 지어져서 깨끗했다. 논을 메워서 양조장을 지어서일까 논들과 이웃해 있다. 지척에는 안성천 지류가 흐르고 있는데 평택시가 여기에 자전거도로를 건설한다고 한다. 또 이웃한 공터에는 공원도 조성되고 있고, 10여분 거리에 미군부대가 있어 이들이 가끔 전통주체험 및 시음을 위해 부부끼리 방문하기도 한다.

이 대표는 희망을 걸었다. “지금은 너무 어려워요, 그렇지만 주변 환경이 좋아지니까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이 대표는 한 가지 바람을 말했다. “우리의 전통주가 보다 활성화되기 위해선 우선 전통주를 하는 사람들이 합심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에도 우리 술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외국인이 우리에게 너희 나라 술은 어떤 것이 있느냐고 물어 왔을 때 무엇이라고 답을 내놓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이 대표만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대표는 술을 빚고 나서 나오는 술지게미를 늘 아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술지게미를 가지고 다양한 먹을거리를 생각해 냈다. 우선 술지게미를 햇볕에 바짝 말려서 가루를 만든다. 이 가루로 빵도 만들고 과자, 냉면 부침개 같은 것을 만들어 보니 인기가 대단했다. 아직 영양학적인 연구는 안 나왔지만 빵만은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평택 쌀 빵집에서 술지게미를 재료로 해서 만든 빵이 인기가 있어 곧 냉면도 본격적으로 만들 계획이란다.

 

‘좋은술’ 취재를 마치고 나오면서 문득 박목월의 <나그네>가 떠올랐다.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비록 ‘좋은술’은 밀밭과는 거리가 먼 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양조장 주변 논에서 잘 바란 벼들이 언젠가는 좋은술로 태어날 것 같기 때문이다.

눈 덮인 들녘이 금세 누런 벼가 고개를 숙인 양 보이는 것은 웬일인가? 술이 고파서인가.

운전 때문에 맛보지 못한 천비향(술그리다)을 집에 도착하자마자 따랐다.

우선 눈과 코가 즐거워했다. 천천히 음미하자 오감이 발동했다. 이런 술을 자주 마실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마시기엔 너무 아깝다. 친한 벗이라도 불러내야 할 것 같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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