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선이 3대 명주 중 첫 번째로 꼽은 최고의 명주 ‘甘紅露’

오직 한 가지 감홍로만 빚는다.

감홍로 이민형 대표와 이기숙 명인

 

최남선이 3대 명주 중 첫 번째로 꼽은 최고의 명주 ‘甘紅露’

 

 

2002년 신구가 대게를 잡은 배를 타고 지친 표정으로 돌아온다.

환호 하는 선원들에게 신구가 일갈한다. “니들이 게맛을 알어?”

롯데이아의 그랩버거 CF의 한 대목이다. 전체적으로 노인과 바다를 패러디한 광고였다. 아직까지도 “니들이 게맛을 알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대목이다.

하기야 게맛은 게를 먹어본 사람만이 알겠지만….

 

“니들이 감홍로를 알어?”

 이 대표는 현재 전통주와 관련된 행정기관이 너무 많아 전통주 업자들의 애로가 많다고 했다.감홍로(甘紅露)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말을 말아야 한다. 세상에는 온갖 술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모두를 마셔 본다는 것은 100%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진정 주당들은 좋은 술이 있다면 불원천리 마다않고 달려간다. 술에서 풍겨나는 향을 맡고 빛깔을 감상하며 목으로 넘기는 그 순간을 위해서다.

게를 먹어봐야 게 맛을 알듯 감홍로를 먹어봐야 감홍로를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감홍로는 전국의 많은 술도가에서 먹어본 술과는 완연하게 달랐다.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술이라기보다는 좋은 한약을 마신다는 기분일까.

우리나라 3대 명주로 꼽히고 있는 감홍로는 현재 파주시 파주읍 윗가마을길에 있는 양조장에서 빚는 술이다. 칼 바람 부는 겨울언저리에 (주)감홍로를 찾은 것은 이민형(64, 李敏馨) 대표가 감홍로 자랑을 꽤나 했기 때문이다.

 

파주시 파주읍 윗가마을길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루루랄랄하며 감홍로를 찾아 길을 떠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비가 목적지를 알렸지만 양조장은 보이지 않았다. 양조장을 찾는다니까 내비게이션이 미리 취했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몇 번이나 이 대표와 통화를 하고서야 양조장을 찾았다. 아뿔싸, 집 한 채 차이에 그렇게 헤매다니….

이 대표가 길가로 나와서 겨우 조우했다. 그 흔한 간판도 문패도 없는 건물이다. 그저 창고 같다. 그런데 여기서 감홍로가 나오다니 또 한 번 놀랐다. 해지기 전 건물부터 한 컷할 요량으로 카메라를 꺼내니 이 대표는 건물은 찍어서 뭐하냐는 투로 들어가잔다.

 

감홍로는 어떤 술인가?

이기숙 명인의 부친 고 이경찬 선생이 30여 년 전에 담근 감홍로감홍로 주는유득공(1749-1807)의저서인<경도잡지(京都雜志)>와최남선(1890-1957)의 <조선상식문답>에 기록된 우리나라의 3대 명주 중 첫 번째로 꼽히는 최고의 명주라고 소개하고 있다.

조선 선조 때 서유구(174-1845)가 지은 <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 현종 때 홍석모(洪錫模)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도 수록되어 있을 정도다.

또 이규경의 <물산변증설>에서 “중국에 오향로주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평양부의 감홍로가 있다.”고 했으며 유득공의 애련정이란 시에서 ‘곳곳마다 감홍로니 이 마을이 곧 취한 마을일세’라고 하여 평양사람들이 즐겨 마셨음을 알리고 있다.

어디 옛 사람들만이 감홍로를 평가하겠는가. 인터넷상에도 감홍로에 대한 칭찬이 넘쳐난다.

이 대표에게 물었다.

-왜 감홍로가 옛 사람이나 현대인들에게 인기가 높은가?

“감홍로(甘紅露)의 감(甘)은 단맛을, 홍(紅)은 붉은 색을, 로 증류된 소주에 용안육, 계피, 진피, 생강, 정향, 감초, 지초 등 7가지 약재를 넣고 침출한다.(露)는 증류된 술이 항아리 속에서 이슬처럼 맺힌다는 뜻인데요. 독특한 향이 어우러져 미각, 시각, 후각을 만족시키는 술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의 3대 명주 중 첫 번째로 꼽히는 감홍로는 어떻게 빚는 술일까? 이민형 대표와 이기숙 명인(이 대표의 부인)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렇다.

우선 멥쌀과 메조를 7대3 비율로 섞은 다음 누룩을 넣고 보름가량 발효시킨다. 이를 1차로 증류하고 두 달가량 숙성시켰다멥쌀과 메조를 7대3 비율로 섞은 다음 누룩을 넣고 보름가량 발효시킨다.가 재차 증류한다. 두 차례나 증류하는 이유는 잡맛을 없애고 향과 색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함이다. 두 번의 증류과정을 거치면 42도 정도의 환소(還燒)주가 완성된다. 여기에 7가지 약재(용안육, 계피, 진피, 생강, 정향, 감초, 지초)를 자루에 담아 침출 한 후 1년 이상 숙성 시키면 40도의 더 깨끗하고 빛깔 좋은 감홍로를 얻을 수 있다.

술을 빚는 과정도 그렇고 값비싼 약재를 넣어야 제대로 된 감홍로를 얻을 수 있으니 여염집에선 빚기 어려웠을 것 같다. 고관대작 집안에서나 가능했을 테니까 먹고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약리작용으로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증류주 중에 관서(평양)지방의 감홍로는 최초의 소주라 전해지고 있는 술이다.

감홍로는 40도로 도수가 꽤 높은 술임에도 약재의 향이 어우러져 향이 독특하고 마시기에도 부드럽다. 마신 후에 입안에서 부드럽게 향이 퍼진다. 술을 마신 후 따듯한 기운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표는 “술을 많이 마셔도 숙취(위에 부담이 가거나 두통)가 없으며, 막힌 혈이 통해 혈액순환을 돕고 조금씩 마시면 몸을 따듯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고 했다.

 

왜 ‘질그릇에 감홍로’일까

사진은 고 이경찬 선생이기숙 명인이 그의 부친이 30여년 전 담금 감홍로를 안고 있다이 대표의 명함에는 “속담에 ‘질그릇에 감홍로’라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 3대 명주 맛, 향, 색이 어우러진 천년의 비주”라고 쓰여 있다.

왜 하필이면 ‘질그릇에 감홍로’일까.

이 대표는 이에 대해 “대부분의 술은 마신 후 장이 차지나 감홍로는 장을 따듯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선조들은 구급약으로 상비하였다가 사용하였다는 기록도 있다.”면서 “속담에 ‘질병에도 감홍로’라는 말이 있으며 그 뜻은 겉모양은 보잘 것 없으나 속은 아름다운 것도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감홍로는 국내 고대 소설(판소리) <별주부전>에 ‘자라가 토끼보고 용궁에 가자고 하는 장면에서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다고 꼬드기는 장면’, <춘향전>에 ‘춘향이가 이도령과 이별하는 장면에 향단이보고 이별주로 감홍로를 가져오라고 하는 장면’, 황진이가 서화담을 보고 감홍로 같다고 표현하는 장면에도 등장 할 정도로 고전 문학에도 자주 등장 하는 술이다.

소주(증류식)는 고려시대에 개성(개경), 평양, 안동, 진도, 제주도에 몽고군에 의해 유입되어 발달 된 술이다.

이기숙 명인의 부친인 고(故) 포암(浦巖) 이경찬 선생의 집안에서 대대로 감홍로를 빚어 온 것도 이 같은 영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故 이경찬 선생(1915~1993)은 1938년 평양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부친이 경영하던 평양 평천양조장을 상속받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평촌양조장을 버리고 남하해 ‘거북선’이라는 상표로 영업을 했지만 1955년 양곡관리법에 의해 곡주 생산금지 조치로 인해 양조업을 잠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경찬 선생은 집안 경조사 시 조금씩 만들어 전통으로 맥을 이어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6년 무형문화재 86호 문배주 기능 초대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제조면허를 다시 받았고 이경찬 선생은 아들 이기춘에게 그 기능을 전수했다.

국가에서 주류제조면허를 받을 수 없던 중 1994년 농림부에서 차남이 명인을 지정 받아 이를 재현하려 하였으나 아깝게도 2000년 사망했다.

이경찬 씨는 3남2여를 두었는데 막내인 이기숙 씨가 아버지 대를 이어 감홍로를 빚게 된 동기다.

감홍로의 기능을 갖고 있는 이기숙 씨는 주위의 권유로 부군 이민형과 함께 2005년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여 이를 재현하게 되었다. 현재 국내에서 감홍로를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이기숙 명인이다.

이기숙 명인은 조상 대대로 술 빚는 방법을 전수받아 개인이 원형에 근거한 방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을 인정받아 2012년 10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전통식품 명인 제 43호로 선정되었다.

 

“위스키나 코냑처럼 즐기는 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민형 대표는 경기도 강화 하정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경기상고를 나와 경원대에서 경영학과 마케팅을 전공했다.

경영학 박사를 받고나서 대학에서 인터넷, 전략적 제휴 같은 과목을 맡아 강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처갓집에서 내려오는 술 감홍로를 외부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를 본격적으로 재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회사를 차리고 운영했지만 운영은 녹녹치 않았다.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이어 오는 술의 맥을 잇기 위해서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현재 전통주와 관련된 행정기관이 너무 많아 전통주 업자들의 애로가 많다고 했다.

영세 전통주제조자들에게 대기업 시설기준을 강요하기 일쑤고 이를 못 지키는 전통주 제조자들을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그리고 전통주를 폄하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하면 우리나라의 전통주는 발전하기 힘들다고 하소연 한다.

전통주는 꼭 쌀로만 빚는 것이 아닌데도 쌀 소비정책으로 전통주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주장이다. 국내에서 재배한 메조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헤매지만 쉽사리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대표는 양조장 대표이긴 하지만 술을 빚는 일은 이기숙 명인이 도맡아 한다. 그러나 누구 못지않게 전통주 사랑에 빠져 있다.

이 대표는 “명주가 희석식 소주나 막걸리처럼 또는 맥주처럼 즐기는 술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위스키나 코냑처럼 즐기는 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공부가주나 마오타이 주처럼 즐기는 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술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는 방향입니다. 또 하나는 특별한 날에 특별하게 마시는 방향입니다.” 전통주에 대한 이 대표의 철학이다.

현재 감홍로는 350㎖ 한 병에 약 4만원, 700㎖ 한 병에 8만 원 선에 판매하고 있다. 700㎖감홍로 청자세트는 9만 원대다. 결코 싼 술이 아니다.

그러나 취재를 하는 사이에도 전국에서 택배주문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제값을 주고 제대로 된 우리 술을 마실 때가 된 것 같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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