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본다

김원하의 취중진담

친구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본다

참 풋풋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했던가. 주름진 얼굴에 듬성한 허연 머리카락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내 모습도 저런가. 친구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보는 것 같다. 매일같이 쳐다보는 거울에서는 보이지 않던 얼굴이다.

찬바람 모질게 불어 대는 겨울 한 자락에 술판 벌여 놓고, 옛이야기 나누건만 모든 것이 허허롭다. 달려온 세월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이건만 풋풋함과는 거리가 멀다. 건강을 위한다고 술잔 멀리 한 친구도 있고, 두주불사였던 친구도 소주 몇 잔에 손 사례를 치기도 한다.

그래도 옛 멋을 찾아 호프 한 잔 더 하자는 친구 따라 가보지만 500㏄ 한잔이면 됐다는 친구들이 많아진다. 맥주 대신에 커피를 마시는 친구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지공도사(地空道士)가 된지도 손을 꼽아야 할 만큼 여러 해 지나다 보니 정치, 경제 이야기엔 관심도 없다. 속된 말로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 별로 나을 것도 없다는 것이 도사들의 공통된 생각인 것 같다.

그래서인가 술잔 부딪치며 “건강을 위하여”라는 건배사가 찡하게 들린다.

병원 없는 사회를 꿈꾸는 ‘국민 의사’ 이시형(李時炯) 박사가 70줄에 접어들었을 때 그의 친구들과 “70대를 노인이라고 부르긴 너무 이르지 않나”하면서 “우리는 풋노인이라고 부르자”고 했다는 글을 어느 수필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풋고추니 풋밤처럼 풋자가 들어간 말은 참으로 풋풋해 보인다. 풋노인 또한 가는 세월을 잡아보려는 이기심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물론 풋자가 들어간다고 다 좋은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풋내기처럼 좋지 않을 때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풋술을 마실 때처럼 혈기 왕성할 때의 모습이 사라진 친구들의 얼굴에서 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풋노인이 지나면 진짜 노인이 되는 것인가!

노인이 된다고 콧노래를 부를 일은 아니지만 겁낼 것도 없다.

가수 서유석 씨가 2015년 2월에 작사 작곡한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의 신곡을 발표하면서 시니어사회에 새로운 유행어를 만든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서유석 씨가 중장년층의 고된 현실을 담은 신곡을 25년 만에 내놨는데 쉽고 정감 어린 멜로디가 마음을 울리는 포크송으로 중장년층의 팍팍한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노래다.

배연일 교수(경안신학대학원대학교)는 ‘고령자도 새로운 성장 동력 될 수 있다’는 칼럼에서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다.”면서 외국은 노인 인구가 7%(고령화 사회)에서 14%(고령 사회)에 이르는데 수십 년이 걸리는데 비해 우리는 17년 만에 진입했다고 했다. 앞으로 7~8년 후면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도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노인천국(?)이 된다. 서유석 씨처럼 새 출발을 서둘러야 되지 않을까.

한국에서 15년간 기자생활을 한 영국의 마이클브린이 쓴 ‘한국인을 말한다’에서 노약자 보호석이 있는 5개국 중 하나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 4대 강국을 우습게 아는 배짱 있는 나라, 그래서 강한 나라 사람들에게는 ‘놈’자를 붙이지만 아프리카 사람, 인도네시아 사람 등에게는 놈자를 붙이지 않는 기가 센 나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객관적 지표들이 현저히 나빠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인들은 ‘궁즉통 극즉반(窮則通 極則反)’을 활용할 줄 아는 국민으로 머지않아 반전의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고 했다. 이런 나라에서 사는 국민으로서 어찌 한탄만 하겠는가.

풋술을 즐기던 젊은 시절 60대는 할배인 줄 알았는데 풋노인이 되고 보니 60대는 매우 젊고 팔팔한 나이였던 것을 깨달았다면 된다.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막걸리 한 잔 즐기면 되는 것을.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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