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녕하 칼럼
권녕하 시인·문학평론가·<한강문학> 발행인
빨리 배반해줘서 고마워
4월 하순, ‘지식인으로 나는 죽어 마땅하다’는 문구를 모 일간지에서 읽었다. 이 문구는, 매천(梅泉)이 지식인으로 살기 힘들다며, 자진할 때 남긴 유서의 핵심 문구였는데, 그래서 그 절망적 시대 상황을 침통하게 받아들였었는데, 오늘 또 봤다.
시인으로 알려진 여류의 ‘미투’ 폭로 방송이 세상을 뒤숭숭하게 뒤흔들 때, 종로 2가 YMCA 옆 음식점 주차장에서 퇴근길에 목격한 빨간 미니버스. 그 버스는 차 전체를 시뻘겋게 도색한 옆구리에 ‘I 데려와 U’라는 문구가 도발적 디자인으로 페인팅 되어 있었다. 이 문구는 현, 서울시장 박원순이 서울시를 세계적 명품도시로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의욕으로, 전 세계에 공개한 ‘I SEOUL U’를 비아냥거리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울러 시장 아들의 문제를 부각시켜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을 싸잡아 폄훼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있었다. ‘I SEOUL U’가 정치인 박원순 개인의 것이란 말인가? 이런! 치졸한 문구가 어찌하다 필자의 눈에 띄고 말았다.
바로 그 다음날, 충청도에서 터진 미투가 전국을 강타했다. 여론 몰이 정도를 넘어, 도덕적 심판의 범주를 단숨에 뛰어넘는 태풍 급의 강풍이었다. 그리고 그 버스를, 그 자리에서 뿐만 아니라 서울시내 어디에서도, 다시는 보지 못했다.
드루킹! 최근 불거진, 포털사이트를 이용한 댓글 조작사건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정치판에서만 불거진 것이 맞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 음원차트 등등 그 흔해빠진 조작 수법이 왜, 갑자기, 새삼스럽게, 난리가 났을까! 배반자를 징계하고자 한 것일까! 범법자를 처벌하고자 한 것일까! 일석삼조를 노린 쓰리쿠션일까! 댓글 조작 등은 이미 국정원 댓글 사건부터 익히 인지됐던 사항이지 아니한가.
권력은, 2인자를 키우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2인자 역할을 부여받았을 경우, 권력이 살아있는 동안의 유일한 생존법은 맹종과 굴종뿐임을 터득해야 한다. 더욱이 벌려놓은 판때기 위에서 춤추며 놀 때는, 짜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피에로 역할에, 능동적으로 충실해야만 살아남는다.
권력은, 권력을 사상과 철학으로 포장한다. 예부터 ‘하늘의 뜻’ 운운하며 만들어왔다. 그렇다고, 그 일을, 혼자 잘하겠다고 덤벼들면, 그 역시 살려두지 않는다.
권력은, 사상과 철학으로 포장한 직후부터 ‘교조화’ 과정을 밟는다. 그런데 이 일 조차도, 너무 앞서 나가면, 서두른 사람을 타깃으로 삼아 필연적으로 제거한다. 따라서 권력이 원하는 일은, 시키는 일도 번번이 다시 물어보고, 재가(裁可)를 받은 다음 돌다리를 건너듯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쯤은 미련한 척, 둔 한 척 해야 장수하는데 지장이 없다. 까닭은 단 하나! 나보다 더 잘난 인간을 권력은, 미래의 ‘위협적 존재’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 같은 권력구조가 생산되고 자리를 잡고나면, 그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그 권력의 정점을 떠받치고 있는 일군(一群)의 무리들이, 그 권력의 토치카를 구축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그 권력으로부터 이득을 취하며, 결속력을 다져나가며 충성을 요구한다. 그 과정은 마치 사교집단의 조직 관리와 운영 행태가 흡사하다. 그래서 이런 현상을 ‘교조화’로 읽는다.
송시열(宋時烈)이 조선조 후기 정권을 틀어쥐고 좌지우지(左之右之) 한 것은 성리학을 유교(儒敎)로, 교조화 작업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유교를 만들어 놓고, 자신의 패거리가 만족치 못하면, 왕권(王權)에 까지 통제를 가했다. 왕은 그들 세력이 떠받치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했다. 그들은 권력과 부를 세습하면서, 족벌 가문의 위세를 유교로 ‘캄푸라치’ 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국가통치제도로 정착시켜, 국가를 통치하며 민중을 착취, 억압하는 수단으로 썼다. 꼭 현대의 헌법과도 같은 위세로, 법치주의 국가처럼, 유교를 썼다. 문자권력을 독과점한 당대 족벌들은, 경쟁자를 제거한 기록을 사화(士禍)로 남겼다. 스스로는 추종자의 손끝을 빌어, 사서(史書)로 둔갑시킨 다음, 충신으로 치장했다. 그 결과는 ‘조선의 멸망’으로 인증 샷을 찍는다.
21세기 지구촌에서, 글로벌 사상으로써, 성공적으로 정착한 민주주의 또는 자유주의가 교조화 된다면? 역시나! 또 그렇게 될까? 무슨, 그럴 리가 없을까?
약(藥)은 병이나 상처를 치료하는 성분이 있어서 약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효능을 가늠했을 때 선(善)한 존재다. 그러나 약이 정말 선하기만 할까? 약처럼 민주주의, 자유주의도 선하기만 할까? 약도 과용, 오남용 시 독(毒)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아니한가. 민주주의 자유주의도 언젠간 독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아님 기우에 불과할까?
선(善)이 악(惡)을 통해서도 올 수 있다는 말. 궤변이지만, 그 말에 기가 막혀, 그 논리처럼, 차라리 ‘빨리 배반해줘서 고맙다’고 되레 치하해야 하는 세상이 현실이란 말인가!
오늘밤, 불 끄고, 은밀하게, 건강한 정신을 갖춘 DNA를 파종하려면, 오늘 퇴근하면서 당장! 이것부터 확인해야겠다. 술이 과연 약인가 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