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샘酒’ 김숙희 대표이사
청정 제주 자연의 맛을 은은하게 첨가한 ‘오메기술’과 ‘고소리술’
5월의 제주는 별천지다. 귤꽃 향으로 가득차서 마치 허브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귤밭으로 초록 바다를 이룬 제주 땅. 제주 사람들이야 귀한 줄 모르고 맡는 귤꽃 향이겠지만 어쩌다 찾는 뭍사람들에게 귤꽃 향은 황홀감에 빠지기에 충분하다.
아마 시인 조동화는 이런 풍광을 보고 <나 하나 꽃 피어>를 짓지 않았을까.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이 시를 떠 올리면 또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막이 올리면서 나오는 합창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가 생각난다. 5월 제주의 인상(印象)이 그렇다.
이런 좋은 계절에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양조장 ‘제주샘酒’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제주샘영농조합법인’의 김숙희(金淑嬉, 54) 대표이사와는 그 동안 각종 주류대회에서 몇 번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구면이다.
양조장을 시작한지 불과 10여년 만에 국내 술 품평회에서 5년 연속 대상 3회, 최우수상 2회를 수상했다. 해외 품평회에서도 2015년 샌프란시스코 주류품평회에서 은상, 2014년과 2015년 벨기에 몽드셀렉션에서 연속 2회 금상을 수상했고, 영국 IWSC 국제주류품평회에서 동상을 수상 하는 등 ‘제주샘주’는 명실상부 국 내·외적으로 각광 받는 주조가가 되었다.
하여 ‘제주샘주’의 김 대표는 이제 국내 전통주 업계에서 명사 반열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길지 않은 세월에 주류품평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여 몇 번이고 ‘제주샘주’를 찾고 싶었지만 기회가 닫지 않았는데 이번에야 틈을 내서 제주샘주를 찾게 되었다.
어렸을 적 어깨너머로 배운 가양주 빚기가 천직돼
제주공항에서 30분 남짓 거리에 위치한 양조장은 첫 인상이 참 좋았다. 양조장이라기보다는 쉼터 같은 느낌이 강했다. 정갈하고 잘 정돈된 양조장을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전시관’이다. 이 전시관 안에는 제주샘주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과 사진, 그리고 술을 빚는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어 양조장을 처음 찾는 이들에게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공간이다.
-양조장이 참 아름답습니다. 직접 지으셨나요?
“아니에요, 어느 분이 양조장을 지어서 운영 하셨는데 경영이 어려워 문 닫기 일보 직전에 제가 인수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어요”
-그럼 원래부터 술을 하셨나요.
“사회에 나와서 처음에는 전국버스공제조합 제주지부에서 일했습니다. 원래 제 꿈은 신문기자가 돼서 특파원으로 해외에 나가 일하는 것이었는데요, 직업 군인이셨던 아버님이 뭍에 나가서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셔서 제주대학에서 교육학과를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무직 월급쟁이가 되었습니다. 제 적성과는 거리가 멀어서 중도에 직장을 그만 두었죠.”
김 대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물회, 뚝배기 같은 식사를 전문으로 하는 향토음식점을 했다고 한다.
음식점과 술은 불가분이어서 술 없이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차제에 지인 한 분이 향토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전통주도 함께 취급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해 주었다. 이 조언이 김 대표가 우리 술에 입문하게 된 동기란다.
-제주샘주가 오메기술(약주)과 고소리술(증류식 소주)을 내고 있는데요,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어렸을 적, 어머님이 큰 일이 있을 때 집에서 좁쌀로 오메기 술을 빚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소주 고리를 이용해서 고소리 술도 제성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신기하게 여겼는데 이제 술 빚는 일이 천직이 되어버렸습니다.”
주식(主食) 재료를 이용해서 술을 빚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주식 재료를 이용해서 각 지역마다 술을 빚어왔다. 쌀이 많이 난 지역은 쌀 막걸리를 옥수수나 감자가 많이 나는 지역에서 이 같은 식재료로 술을 빚어 먹었다.
때문에 벼농사 보다는 밭농사가 많았던 제주에서는 좁쌀을 이용한 가양주가 성했던 것이다.
‘찾아가는 양조장’ 선정으로 큰 덕 봐
김숙희 대표가 전통주에 입문 한 2005년만 해도 전통주가 활발하지 않던 시기다. 그런데 덜컥 전통주를 빚겠다고 나서자 이렇다 할 조언자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했다. 술을 빚는 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술맛이 좋아야 술을 팔수 있는데 빚어 놓으면 산 맛이 강하거나 시큼털털하여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술이 되곤 했다.
이런 시향착오를 거듭하자 속된 말로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고 했다. 있는 재산을 술 빚는데 투자하여 거의 바닥을 칠 무렵 제대로 된 술맛을 찾았다.
때맞춤 2014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돼 활로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뭍사람들 가운데 토속적인 술을 찾는 사람들이 제주에 여행 왔을 때 ‘제주샘주’를 찾아와 술 빚는 체험도 하고 사가기도 했다.
김 대표는 체험의 장을 술 빚기 외에 먹다 남은 쉰밥으로 술을 빚어 먹을 수 있는 ‘쉰다리 체험’, 오메기술을 빚는 오메기 떡(차조로 만든 떡)을 만드는 ‘오메기떡 체험’,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칵테일 레시피에 따라 칵테일을 직접 체험하는 ‘칵테일 만들기 체험’, 그리고 양조장내 전통주 생산라인을 견학하는 ‘양조장 견학’으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결과는 대 성공, 제주를 찾는 많은 여행객들이 직접 찾아와 체험도 하고 전통주도 구매한다.
김 대표는 “제 경우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것이 큰 덕을 본 것 같습니다.”
“물맛 좋죠, 원자재 좋죠, 그러니까 술맛도 좋죠”
‘제주샘주’가 애주가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한 마디로 원자재가 좋기 때문이라고 잘라서 말한다.
“우리 양조장에 처음 오신 분들이 급수탑을 보고서 놀랍니다. 우리는 지하 100n에서 끌어 올린 지하수를 사용하는데요, 물맛이 끝내줍니다. 이런 물과 제주에서 생산된 곡식(좁쌀과 쌀)만 사용하니까 좋은 술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제주의 자연이 그대로 술에 녹아들어 제주 술은 자연을 먹는다고 보면 된다.
제주샘주가 빚는 술은 크게 약주술과 증류식 소주로 양분된다.
◇ 오메기술:375㎖. 좁쌀 10%와 서귀포에서 생산된 쌀 90%에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조릿대를 첨가하여 발효과정을 거친 알코올 13%와 15%의 약주다. 병입일로부터 18개월 유통이 가능한 술이다.
◇ 고소리술:375㎖/ 400㎖/ 750㎖. 제주도 방언으로 소줏고리를 고소리라 하는데 오메기술을 증류시킨 29%, 40%의 증류식 소주다. 유통기간을 따로 정하지 않아도 된다.
◇ 세우리:700㎖. 한라산에서 자란 산양산삼과 하수오, 구기자를 넣어 만든 알코올 도수 45%의 고급 증류주다. 구기자의 붉은 색, 하수오의 담백함과 산양산삼의 진한 향이 어우러져 황금 빛깔로 띤 술이 얼핏 양주와 흡사하다. 고도주임에도 목넘김이 부드럽다.
◇ 니모메:375㎖. 니모메는 감귤을 직접 세척해 쌀과 함께 10도 이하에서 30일간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 도수 11% 전통주로, 술을 마실 때 어우러져 나오는 감귤의 향미가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 11월 15일부터 출시하고 있는데 술이 약한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제주샘주에서는 앞으로 녹차를 침출시킨 소주와 귤을 넣어 침출시킨 소주로 일반 증류주 소주를 개발하고 있는데 올 가을 쯤 출시가 가능하다고 한다.
온 정성을 다하여 모든 이에게 이로운 술이 되자
이 문구는 제주샘주의 사훈이다.
현재 제주샘주를 책임지고 생산하는 이는 김 대표의 장남 고기성(28)부장이다. 물론 김 대표의 부군인 고수봉 씨(총괄본부장/ 이사)도 한 몫 단단히 해내고 있지만 모든 공을 김 대표에게 돌리고 있어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다.
김 대표는 제대한 아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술을 배울래, 복학(제주대 화학과)할래”그랬더니 아들이 술을 배우겠다고 해서 열심히 후계자로 양성하고 있단다.
이런 열성이 앞으로 어떤 술이 개발될지 관심사가 되고 있다.
김숙희 대표는 현재 ‘제주술생산자협동조합’ 이사장도 맡고 있다. 이 조합은 지난 2014년 결성돼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제주에서 술을 만드는 대표끼리 상생과 협력을 도모하는 모임이다. 김숙희 대표는 모임을 갖게 된 것은 정부의 관심이 적어 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정부에 알리고 업자끼리 좋은 정보를 공유해서 서로 발전해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