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冥想)과 명상(瞑想)

권녕하 칼럼

 

권녕하 (시인, 문화평론가, <한강문학> 발행인)

 

 

명상(冥想)과 명상(瞑想)

 

 

원고(原稿) 청탁을 하면, 예의상 그러는 것인지, 진짜 바빠서 그런 것인지, 거절하는 것도 아니고 사양하는 것도 아닌, 슬쩍 비껴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바로! 해주는 말이, “한 쪽 눈 감고 왼 손으로 쉽게 써 달라”고 한다. “그 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으면, “한 쪽 눈 감고 둬도, 바둑 고수는 잘만 두더라”고 답해 준다.

바둑 고수가 머리칼 쥐어뜯거나 발을 떨거나 웅얼웅얼 거리는 것은 봤어도, 한 쪽 눈 감고 두는 걸 본 적은 없다. 다만 그렇게 둬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농담조로 해 본 말이다. 그래서 글도 ‘그렇다!’고 생각하여 말한 현문우답(賢問愚答)일 뿐이지만, 이 생각을 고치거나 바꿀 생각은 아예 없다. 글을 쓰면서 발을 떨면 어떻고, 손짓을 하면 어떻고, 한 쪽 눈을 감고 쓴들 또 어떠하리. 글만 쓸 수 있으면 됐지.

 

세상을 돌리고 돌아가게 만들며 세상을 세상답게 유지시켜주는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눈을 감을수록 더 잘 보이는 경우 중 대표적인 것은 태양이다. 인간들이 지구 행성에 얹혀살면서도 지구를 고마워 하기는 커녕, 지구를 붙들어주고 있는 태양을 보고 손가락질해댄다. 바로 하늘 보고 삿대질 하는 사람들인데, 요즘 들어 이런 사람들이 더욱 많이 생겨나고 있음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는데, 혼잣말로 했기에 이 말을 들은 사람이 없다. 엄혹한 종교재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갈릴레오가 재판정에서 자신의 신념을 어기고 거짓말을 한 다음 빠져나온 것인데, 이를 두고 갈릴레오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만해선사가 〈님의 침묵〉을 발표했을 때 일제치하의 개똥같은 세월을 견뎌내던 한민족은 ‘님’을 ‘조국’으로 받아들였다. 후대에 와서 한층 굳혔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잘 통했다. 그런데 모윤숙이〈렌의 애가〉에서 읊은 ‘시몬’은 조국은커녕 친일파로 변절한 어느 작가에 대한 개인적 사랑일 것으로 여겼다. 정작 본인은 함구로 일관했다는데 억울할 지도 모른다.

최근, 남북 대치상황이 골만 깊어지고 통일이 늦어지는 이유로 ‘문화·예술·인문·철학적’ 담론 부재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필자 주변에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자칭 ‘아나키스트’가 된 사람들의 시대적 고뇌 나아가 이념보다 민족을 앞세운 백범선생 등의 결기를 넘지 못하는 한 “어림도 없다!”고 일갈했다. 개똥같은 세월과 갈라진 국토와 분열된 민족은, 누가 만들었고 누가 반대했으며 남침이다 북침이다 선명성과 옳고 그름을 붙들고 늘어지기보다는, 이제 누가 해결할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그 방법론은 무엇인지, 북한에는 주체사상이라도 있는데, 이념대결의 현장에서 남한에도 과연 그와 견줄만한 국가와 민족을 이끌고 갈 철학은 과연 존재나 하는지, 있는지 없는지 만들어낼 순서라도 정해놓고, 담론을 하던 철학을 하던 역사를 재편하던 정치를 하던 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그저 서로 조직적으로 여론몰이나 잘한다고 서로 잘했다고 추켜세운들 후대에 한 푼어치 가치나 있겠는가. 풍각쟁이 바람잡이에 불과할 뿐이지.

두 눈을 다 멀쩡히 뜨고서도, 내 것의 장점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 보수가 될 수 없다. 또한 네 것의 장점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 진보가 될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공자(孔子)도 아니면서 공자인척 하며 살기란 이 세상이 고해의 바다일 뿐이다. 글 읽는 사람, 글 쓰는 사람이 세상을 모른 척 하고 살기란 스스로의 존재 가치, 즉 “왜 살고 있느냐?” 하는 물음에 답할 길이 없다. 그래서∼

 

“눈을 감을수록/ 더 잘 보이는 그대여/ 두 손으로 가려도/ 훤히 보이는 그대여/ 그대를 향한 열망/ 세상 끝가지 이끌리듯 뒤 밟아/ 이제, 죽을 수는 있어도 잊을 수는 없어라/ 내 몸 다시 홀씨 되어/ 검푸른 창공으로 뛰어든다 해도/ 그대, 잊을 수는 없어라.”

– 권녕하 작〈시간의 감옥〉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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