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 ⑧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 ⑧

 

전쟁이 10년이 넘어서 그리스군이 거대한 목마를 남기고 철수하자 트로이인들은 그 목마를 성 안에 들이려 한다. 카산드라는 그 목마를 들이면 트로이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며 목마를 들이지 말 것을 간청했지만 또다시 무시당했고 그날 밤 승리의 파티로 취해있던 트로이 인들은 목마 속에서 튀어나온 그리스군에 의해 성이 함락되고 나라가 망하고 만다. 카산드라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아테나 여신상에 매달렸는데 그리스군의 소(小) 아이아스가 그녀를 여신상 째로 끌고 나왔다. 또는 카산드라를 아테나 신전에서 강간하려 했다고도 한다. 이때 아테나 여신을 모독한 벌을 받아 아이아스는 귀환하지 못하고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사망한다. 배가 난파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아이아스는 암초로 헤엄쳐 가서 살아남았지만 ‘신들도 나를 어쩌지 못한다’ 운운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세계관에서는 위험천만한 발언을 했다가 벼락에 맞아 사망한다.

 

Helen and Cassandra, 1866/ Anthony Frederick Sandys

Cassandra(1898) by Evelyn De Morgan

 

카산드라는 총지휘관인 아가멤논의 전리품으로 잡혀간다. 카산드라는 자기를 잡아가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예언하지만 아가멤논도 이 예언을 믿지 않는다. 아가멤논은 자기 부인의 정부에게 살해된다. 카산드라도 함께 살해당한다. 예언은 맞지만 믿고 싶지 않은 예언을 카산드라의 예언 또는 ‘카산드라 콤플렉스(Casandra Complex)’라고 한다.

그러나 파리스는 이 모든 비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헬레네와 결혼하여 한동안 행복하게 지냈다. 그들은 트로이 전쟁 때 파리스가 필로크테테스(Philoktetes)가 쏜 헤라클레스의 화살이라 부리는 독화살을 맞아 죽을 때까지 19년 동안을 같이 살았다. 파리스가 죽은 뒤 헬레네는 시동생인 데이포보스와 다시 결혼했다. 한편 스파르타에 돌아와서 아내의 도주를 알게 된 메넬라오스는, 형인 미테네 왕 아가멤논을 필두로 헬레네에 대한 옛날 구혼자들에게 왕비 탈환을 위한 원조를 청했다. 그리고 메넬라오스와 오디세우스는 헬레네의 반환을 교섭하기 위해 트로이로 갔으나 거절당하자, 마침내 원정군을 조직하여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장기간에 걸쳐 포위가 계속되는 동안 헬레네는 안절부절 못했다. 파리스와 같이 도망해온 일을 후회하기도 했다.

한 번은 오디세우스가 정찰을 위해 트로이 성안으로 잠입해왔으나, 헬레네는 누구인지 곧 알아보고도 밀고하지 않았다. 오디세우스가 파라디온의 상(像)을 훔칠 때 그 일을 도왔다는 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군이 목마를 싸움터에 방치하고 부근에 숨어서 대기하고 있을 때, 그녀는 남편인 데이포보스와 함께 그 목마를 살피러 평원에 나가, 목마 속에 숨어 있는 그리스 용사들의 아내 목소리를 흉내 내어 그들을 불러내려 하기도 했다. 나중에 메넬라오스를 도와 현재의 남편을 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트로이가 함락된 뒤의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호메로우스의 <오디세이(Odyssey)>와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자들(The Trojan Women)>에 따르면, 헬레네의 진심을 알 수 없었던 메넬라오스는, 모든 것을 속인 헬레네는 죽어 마땅하다는 트로이의 왕비 헤카베의 설득을 받고, 스파르타에 돌아가거든 반드시 그녀를 죽이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헬레네(Helenē)>에 따르면 파리스와 같이 트로이로 도망간 헬레네는 헤라가 만든 헬레네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진짜 헬레네는 제우스의 명령을 받은 헤르케스가 이집트로 데려가, 트로이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그녀를 이집트 왕 프로테우스에게 맡겨두었다는 것이다.

한편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헬레네를 데리고 도망하던 파리스가 이집트의 항구에 들렀을 때, 파리스의 배를 젓는 선원들이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프로테우스(Proteus) 왕에게 말했다. 이에 화가 난 왕은 헬레네를 그곳에 잡아놓고 파리스만 쫓아버렸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메넬라오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장군들은 모두 헬레네가 트로이에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었으나, 트로이가 함락된 뒤에야 겨우 그녀가 이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메넬라오스는 이집트로 가서 아내인 헬레네를 다시 찾았다.

또 호메로우스에 따르면,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제우스에 대해 제대로 제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벌로 트로이에서 개선하는 도중 이집트로 표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메넬라오스가 파로스 섬에 표류했을 때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의 딸 에이도테아(Eidothea)가 나타나,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그를 붙잡아 스파르타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물으라고 말했다. 메넬라오스에게 이집트에 돌아가 곧바로 제물을 바치면 무사히 귀국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두 사람이 그리스로 돌아갔을 때, 마침 그곳에서는 아가멤논이 10년간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동안 그의 부인인 클리타임네스트라(Klytaimnestra)는 아이기스토스(Aegisthos)와 바람이 나 전쟁에서 돌아온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아이기스토스가 왕위에 오른다. 아이기스토스는 사촌형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정을 통하고 사촌형을 죽였으나 그 아들 오레스테스에게 살해당하였다.

에우리피데스의 <오레스테스(Orestes)>에 따르면, 오레스테스의 숙부인 메넬라오스가 오레스테스의 변호를 거부했기 때문에, 이에 절망한 오레스테스의 친구 필라데스는 모든 화근의 원인인 헬레네와 메넬라오스의 딸 헤르미오네를 체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막 살해되려는 순간, 헬레네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고, 카스토르와 폴리데우테스 형제와 마찬가지로 성(聖) 엘모의 불로 변해 선원들의 수호신이 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통설에 따르면, 헬레네는 스파르타에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돌아오지 않는 오디세우스를 찾아 여행을 떠난 텔레마코스가 스파르타의 성에 왔을 때에도 헬레네는 그를 환영했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헬레네는 남편이 메넬라오스보다 더 오래 살았으나, 남편이 죽은 뒤 두 아들(또는 노예가 낳은 아들)에게 쫓겨나 로도스 섬의 폴릭소에게 가서 숨었다. 그런데 남편인 틀레폴레모스(Tlepolemus)를 트로이 전쟁 때 잃은 폴릭소도 처음에는 헬레네를 따뜻이 맞이했으나, 마침내 시녀들에게 명하여 그녀를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로도스 섬에서는 헬레네가 헬레네 덴드리티스(헬레네의 나무)라는 이름으로 숭배되었다.

 

<일리아드>는 짧게 요약하자면 결국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여 ‘헥토르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리아드>만 살펴봐서는 ‘전쟁의 원인’과 ‘전쟁의 결말’을 상세하게 알기가 어렵다.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나머지 이야기들은 이른바 서사시권(敍事詩圈 epikoskyklos)이라는 더 큰 전체를 살펴야 한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결국 8편으로 이루어진 ‘트로이아 서시시권’의 일부인 셈인데, 호메로우스가 쓴 두 작품은 두 번째와 일곱 번째 이야기에 해당된다.

전쟁의 원인이 된 ‘파리스의 심판’과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을 다루는 <퀴프리아(Kypria)>가 첫 번째 이야기이고, <일리아드>에 이어지는 세 번째 이야기인 <아이티오피스(Aithiopis)>에서는 파리스가 쏜 화살에 맞아 아킬레우스가 죽는 장면을 노래하고,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그의 무구들을 놓고 다투는 ‘무구 재판’과 ‘트로이아 목마’에 의한 일리오스의 함락은 네 번째인 <소(小) 일리아드(ilias mikra)>와 다섯 번째인 <일리오스의 함락(Iliou Persis/Iliupersis)>에 담긴다. 전쟁을 노래하는 다섯 편의 이야기에 이어지는 나머지 세 편은 전쟁이 끝난 뒤의 ‘귀향’을 다루는데, 여섯 번째가 <귀향(Nostoi)>, 일곱 번째가 <오디세이(Odyssey)>, 여덟 번째가 아들 텔레고노스(Telegonos)에게 살해되는 오데세우스의 이야기를 담은 <텔레고노스 이야기(Telegoneia)>이다.

트로이 전쟁을 야기시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팜므파탈의 헬레네, 그녀의 유방은 그 빼어난 용모만큼이나 아름다웠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헬레네의 젖가슴에 넋을 잃은 그리스인들은 보물 같은 유방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그녀의 가슴을 본 뜬 ‘백금 술잔’을 만들었다. 그리고 비할 데 없이 정교하게 세공한 이 아름다운 술잔을 린도스(Lindos)에 있는 아테나 여신의 사원에 ‘축성의 잔’으로 바쳤다. 술잔인지 유방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앙증스런 술잔은 어찌나 아담하고 예뻤던지 보는 사람마다 원초적인 욕망을 느끼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에서 백금 술잔의 유례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초로 포도주 잔을 만들 때도 아름다운 헬레네의 유방을 표본으로 한 술잔을 만들었다고 한다. 헬레네의 젖가슴을 닮은 술잔에 술을 따라 마시면서 유방을 애무하는 듯한 은밀한 쾌감을 즐겼던 것이다.

 

결혼한 몸으로 이국의 남자 파리스와 눈이 맞아 달아나고, 분노한 남편 메넬라오스(Menelaus)로 하여금 전쟁을 일으키게 만들고, 10년간 그리스와 트로이의 무고한 병사들을 전장으로 몰아넣은 여자, 헬레네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트로이가 함락되었을 때, 헬레네는 전쟁의 위험에 휘말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외도에 도주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메넬라오스의 고통과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에 처한 헬레네의 젖가슴을 본 순간, 메넬라오스의 분노는 눈 녹듯 사라졌다. 그녀의 얼굴을 본 그리스 병사들은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얻기 위해서라면 다시 십 년 동안 전쟁을 해도 좋다!”고 수군거렸다.

<아라비안나이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남자가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밤낮없이 일해서 재산을 모으는 이유는 모두 아름다운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서라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가 획득하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지칭하는 20세기 말 신조어,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는 그러한 <아라비안나이트>의 진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쟁력 있는 2세 생산을 위한 생물학적 목적에서든, 삶의 결핍을 충족시키려는 심리학적인 목적에서든, 혹은 죽음을 향한 도정의 불안을 더불어 공유하고자 하는 존재론적인 목적에서든, 세상의 주인인 남자에게 여자는 때때로 세상을 주고도 가질 수 없는 대상이다.

역사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 여자를 위해 싸우고 여자 때문에 죽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무수히 들려준다. 그들에게 여자는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이고, 모든 것의 목표이자 모든 것의 원인이다.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라는 말은 1989년 미국의 경제지 <포춘>이 처음 유행시킨 말이다. 성공한 남성이 트로피처럼 미모의 아내를 취하는 걸 말한다.

 

(Helen and Paris/ Charles Meynier) (Helene) (Helene and Paris/ Jacques-Louis David)

 

플리니우스(Plinius)는 그의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서 헬레네의 유방을 본뜬 ‘백금 술잔’의 유례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최초의 와인 잔은 저 유명한 트로이 목마의 주인공, 헬레네의 유방을 본 따 만든 것으로 상당히 섹시하고 앙증맞았다. 그리스인들은 이 보물 같은 유방을 본떠 백금으로 술잔을 만들어 아테나 여신의 사원에 축성의 잔으로 바쳤다. 신전의 축원의 잔으로 바칠 정도의 아름다운 유방은 지상의 것이 아니라 천상의 것이리라. 한 모금 마시고 젖꼭지로 안주삼아 빨아 되었을 그 당시의 낭만성과 전율성…!

 

즉 디아나 사원(Templo de Diana)에 축성의 잔을 바치기 위해 아름다운 헬레네의 젖가슴을 표본으로 하여 백금으로 정교하게 세공하여 고귀한 술잔을 만들었다. 백금으로 만든 이 술잔은 그것을 만든 예술적 솜씨가 어찌나 뛰어난지 보는 이의 원초적인 욕망을 자극할 정도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술잔인지 유방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앙증스러운 이 술잔은 어찌나 아담하고 예뻤던지 보는 사람마다 원초적인 욕망을 느끼고 감탄했다. 플리니우스는 그의 <박물지>에서 백금 술잔의 유래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초로 포도주 잔을 만들 때도 아름다운 헬레나의 유방을 표본으로 해서 잔을 만들었다고 한다. 헬레나의 젖가슴을 닮은 술잔에 술을 따라 마시면서 은밀한 쾌감을 즐겼던 것이다.

 

디아나(Diana)는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Artemis)와 동일시되어 그의 속성을 계승했다. 디아나(Diana)는 ‘빛나는 것’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숲의 여신 또는 수목의 여신이었으나, 나중에 숲속에 사는 동물의 수호신, 사냥의 신, 나아가서는 가축의 신으로 보게 되었다. 따라서 임신과 출산을 돕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한편 그리스 신화에서 아르테미스가 달의 신 셀레네(Selene)나 헤카테(Hekate)와 동일시되는 것처럼, 디아나도 달의 신 루나(Luna)나 트리비아(Trívĭa)와 같은 여신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미소년 엔디미온(Endymion)과의 사랑이야기가 생기고, 아르테미스 신화에서의 이야기, 예를 들면 여신의 나체를 담 구멍으로 훔쳐본 아크다이온(Aktaion)의 처벌, 처녀의 순결을 깬 님프인 칼리스토(Callisto)의 추방 등과 함께 근세 미술가가 즐기는 주제가 되었다.

<The birth of Apollo and Diana/ Marcantonio Franceschini>

 

포도주 잔을 만들 때도 아름다운 헬레네의 유방을 표본으로 한 술잔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헬레네의 젖가슴을 닮은 술잔에 술을 따라 마시면서 유방을 애무하는 듯한 은밀한 쾌감을 즐겼던 것이다. 술잔인지 유방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앙증스러운 이 술잔은 어찌나 아담하고 예뻤던지 보는 사람마다 원초적인 욕망을 느끼고 감탄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초로 포도주 잔을 만들 때도 아름다운 헬레나의 유방을 표본으로 해서 잔을 만들었다고 한다.

 

상기 그림은 젖가슴 형태의 ‘흑회식 수밀도형 술잔(mastos)’의 형태이다. 기원전 520〜500년경 아테네에서 제작한 것으로서 이탈리아 에트루리아에서 출토된 ‘마스토스(mastos)’이다. 주연을 뜻하는 심포지엄에서는 선정적인 형태의 술잔이 사용되기도 했다. 이 술잔은 여성의 젖가슴(mastos) 형태이다.

술을 전부 마시기 전에는 잔을 내려놓을 수가 없는 이 술잔의 형태는 술을 빠르게 마시도록 고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젖가슴을 전문용어로는 ‘gynecomastia’로 부르며, 이 단어는 여성을 뜻하는 ‘gynaik’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Gyneco’와 유방을 의미하는 ‘mastos’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젖가슴을 본 뜬 술잔은 이렇게 헬레네의 미혹적이고 유혹적인 유방으로부터 기원한다.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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