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잔치와 포도주

윤원일 칼럼

혼인잔치와 포도주

세상이 언제부터 좌파와 우파로 갈라져서 갈등하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에덴동산 부터였을 것 같다. 하나님이 정한 기존 질서와 권위에 도전한 뱀과 그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으로부터가 아닐는지. 갈릴레이의 예수는 좌파인가 우파인가? 예수로부터 우파적인 신앙과 좌파적인 신앙이 동시에 갈라져 발전해 왔으니 인간 존재 자체가 좌파와 우파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 게 아닌지.

내가 사는 동네인 도봉구 방학동의 언덕 넘어 북한산 산골짜기에 있는 40년 전통의 아름다운 전원 교회에서 좌파 우파 간의 갈등이 노골화되기 시작한 건 MB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부터이다. DJ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억눌렸던 우파적 신념이 분출한 것이다. 어느 날 장로회의에서 한 원로 장로가 신참 장로인 내게 나의 좌파적인 언행을 꾸짖듯이 말하면서 엉뚱하게도 사도신경의 한 구절을 예로 들었다. 그의 말투에서 교회 내에서의 나의 언행을 평소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꾹꾹 참아왔던 억눌린 심정이 느껴졌다.

“성경에도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라고 돼 있잖소.”

신참 장로지만 소설가이기도 한 내가 신경 쓰였는지 에둘러 말을 꺼낸 것이다. 그러나 장로 보단 소설가로서의 정체감이 더 강했던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하나님 쪽에서 보면 그 우편은 좌편이 아닌가요?”

십 여 명의 장로들이 모두 웃었고 나 자신도 순간 재치 있는 답변을 한 것에 스스로 감격해서 즐겁게 웃었다. 이로 인해 그 원로 장로의 나에 대한 반감과 적개심은 자신의 우파적 신앙심만큼 커져 갔다. 어느 날 내가 젊은 부목사와 함께 동네 호프집에 가서 치맥을 사먹은 게 알려지면서, 물론 그 젊은 목사는 맥주는 안마시고 닭튀김만 먹었다고 변명해서 위기를 모면했지만, 나는 <술 장로>, <좌파 장로>로서 이름을 떨친다.

그러던 중 우리 교회에서 제일 부자인 신도가 강남 르네상스 호텔 그랜드볼룸을 빌려 아들의 결혼식을 올린다. 교회 목사님이 주례를 섰고 맨 앞자리 헤드테이블엔 교회 장로들을 위한 특별석이 마련되었다. 한 눈에 봐도 매우 고급스러운 포도주가 식탁에 올라와 있었다. 한데 식이 끝날 무렵 뜻밖에도 대한민국 바리톤 김동규가 등장하더니 바로 앞에서 두 곡씩이나 그 멋진 축가를 부르는 게 아닌가. 사회자는 김동규가 신랑의 아버지와 고향 친구라고 소개했다. 김동규의 육성 노래를 처음으로 바로 옆에서 들은 나는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감동을 받은 나머지 이후 식사 시간이 되어 웨이터가 따라준 포도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옆자리의 장로들이 눈치(?)보느라 마시지 못하는 포도주까지 건네받아 서너 잔을 마셔버렸다. 좋은 포도주인데도 입도 대지 않고 밥만 열심히 먹는 장로들이 내겐 꼭 바리세파 교인들 같았다. <좌파 장로>는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혼인 잔치에 와서 포도주 한 잔을 기분 좋게 못 마시다니. 바보 같구먼.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이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것인 줄도 모르는감.”

예식이 끝나고 교회 성도들은 혼주가 대절한 광광버스를 타고 귀가하였는데 나는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포도주를 석 잔이나 마신 탓에 비몽사몽 잠이 들었다. 잠결에 맨 뒷좌석에 앉은 나는 그 원로 장로가 술 취하지 말란 성경 구절을 언급하면서 교인의 신실한 신앙생활과 특히 장로로서 성도에게 본보기가 되는 금욕적인 생활 습관을 가져야하다고 장황하게 설파하는 것을 들었다. 급기야는 헤드테이블에서 다른 장로들의 포도주 잔까지 가져다가 마셔버린 행동을 비난하는 말도 했다. 잠자는 척 듣고만 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약이 오르기도 해서 불쑥 한마디 하려 하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내가 제발 참으라면서 내 손을 꽉 붙잡고 놓지 않는다.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교회의 목사들도 와인 몇 잔은 대놓고 마신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 원로 장로 역시 혼인 잔치에 가면 포도주 한 잔 정도는 부담 없이 마시고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포도주를 몹시 좋아하는 신앙심 깊은 내 친구는 포도주는 술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술에 대한 정의는 <알코올이 포함된 음료>인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예수가 갈릴리 해변에서 어부들이 잡아온 물고기를 구워 포도주와 함께 마시며 어부들에게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해주는 걸 좋아했다>란 말을 <… 어부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싶다. 포도주와 술은 같은 말이기도 하고 또 완전히 다른 말이기도 한 것이니까. 기독교인과 술에 관한 우스갯소리 한마디이다.

필자 윤원일은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고려대 사회학교(석사)

▴작 품 ▵소설집: <모래남자>, <거꾸로 가는 시간> ▵장편소설:<헤밍웨이와 나>, <시인 노해길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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