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아니, 장미 너에게 편지를 쓴다

『빈 술병』

라일락 아니, 장미 너에게 편지를 쓴다

육정균 이사장(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 시인/ 부동산학박사)

 

5월은 일찍이 수필가 이양하(李敭河)가 신록예찬(新綠禮讚)에서 생명과 젊음을 푸르른 신록으로 노래했듯이, 녹음과 낭만과 사랑의 계절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했다는 아름다운 보석, 에메랄드 또한, 투명한 초록빛을 띠는 귀보석이다. 청량하고 부드러운 그린 색깔에 우아함이 깃들어져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에메랄드는 더불어 5월의 탄생석이기도 한데, 자연스럽게 빛나는 초록빛은 사랑과 생명, 그리고 부활(復活)을 상징한다.

5월이 확실하게 왔음을 알린 것은 코를 찌르는 향기, 라일락(Lilac)이다. 달콤한 첫사랑의 추억, 유소년학교 시절 매년 5월 초면 옆집 담에는 탐스러운 라일락이 한가득 피곤했다. 그 시절의 기억 가운데 아직도 그 라일락 향기가 유난히 강렬하게 맴도는 것은 일방적인 짝사랑 탓일 게다.

매일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행여나 마주칠까 기대하며 천천히 걷곤 했는데, 정작 기다리는 사람은 나타나질 않고 담벼락의 라일락 향기만 흠뻑 맡고 돌아오기 일쑤였을 게다.

어쩌면 그때만 라일락 향기에 몽롱해졌던 것이 아니라, 나이가 흠뻑 든 중년, 아니 노년으로 접어든 즈음에도 짝사랑엔 여전히 어떻게든 말이라도 걸어 볼 걸 하는 아쉬움과 후회로 뒷머리만 긁고 혼자 웃고 마는가 보다.

매년 봄 강한 라일락 향기가 톡 쏘는 첫사랑처럼 코끝을 간질일 때 우린 여전히 첫사랑을 떠올리곤 할 것이다. 삭막한 세상에서 나쁠 것은 없다. ​예전보다 빨리 핀 라일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그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 아파트 정원을 지날 때마다 얼굴을 디밀며 라일락꽃 속에 코를 집어넣고, 행복한 5월, 축복받은 5월의 이름을 먼저 불러 본다.

5월은 장미의 계절이기도 하다. 5월이면 장미가 있는 집의 담장마다 예쁜 자태의 장미꽃이 담장 너머로 얼굴을 내민다. 붉은 장미는 열렬한 사랑을, 흰색 장미는 순결하고 청순한 사랑을, 노랑 장미는 우정과 영원한 사랑을 간직한 꽃말을 갖고 있다. 봄비로 오락가락하는 도심의 희뿌연 날씨에서도 환한 미소로 앞 다퉈 인사하는 5월의 메이퀸이 장미이다.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가족들이 모여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날들이 많은 가정의 달에 의미 있게 선물할 수 있는 사랑의 꽃 역시 장미이다. 매 순간 하느님의 은혜로 사는 시간, 길고 긴 터널의 끝에 서서 불평과 불만이 아닌 범사의 감사를 기도하는 시간마다,

아름다운 5월이 시작되고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지나간다. 그럴수록 아름다운 사람들과 쌓아가는 5월의 순간들과 장미꽃 만발한 추억의 정원(庭園)이 너무나 그리운 추억으로 각인(刻印)될 것이다.

그러나 5월의 신록도 청춘과 같이 힘찬 ‘자유’로 느껴야 할 것이다. 물론 자기만의 ‘자유’가 아닌 타인을 보호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자유’여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한 ‘자유’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저 향기로울 뿐인 라일락꽃이나 강렬한 미소의 장미가 뽐내는 낭만적 ‘자유’일 뿐일까? 근대 시민 사회에서 말하는 ‘자유’란 다름 아닌 개인의 ‘자유’를 지칭했다. 이때 ‘개인’이란 ‘개체’로서의 인간을 말한다.

칸트는 사람이 무엇이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자연적 경향성에서 벗어나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법칙의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롭고, 동물성 이상의 것, 곧 인격성을 가지고 있다고 파악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자유’도 “~으로부터 벗어남”이라는 소극적 의미 외에 “스스로에서 비롯되고, 적극적으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함”이라는 의미와 함께 “자신이 세운 법칙에 자신을 종속시킨 자율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더불어, ‘자유’는 누리되 방종으로 흘러서도 안 될 것이다. 누군가 “나한테 너의 목숨을 주던지, 아니면 너의 ‘자유’를 달라?”라는 요구를 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자유’를 준다고 대답하거나, 또는 그렇게 대답하기 쉬울 것이다. 만약 내가 목숨이 아닌 ‘자유’를 넘기게 된다면, 나의 ‘자유’를 가져간 ‘그’가 “그럼 이제 죽어.” 결국, 선택이 아닌 명령을 할 것이다.

‘자유’는 하나의 인격체가 가질 수 있는 목숨과 같은 최고의 가치이다.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수 없이, 무의식적으로 느끼거나 ‘자유’를 표현한다. 삶의 수많은 영역에 스며들어 있는 만큼, 매우 혼동하기 쉬운 단어이기도 하지만, ‘자유’는 방종과 다르다. 많은 이들이 ‘자유’를 흔히 적극적 ‘자유’라고 표현되는 방종에 가까운 ‘자유’로 착각한다.

그러한 왜곡된 ‘자유’, 헌법에 명시된 여러 ‘자유’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요즘 흔한 풍경이다. ‘자유’가 방종과 다르고 ‘자유’엔 한계가 분명 존재함을 잊은 처사이다.

우리가 매년 봄 5월마다 진한 라일락 향기에 모두가 흐뭇하게 취하고, 햇빛처럼 강렬한 장미의 사랑을 어느 하늘 아래서건 누구나 골고루 평등하게 취하고 살 수 있는 ‘자유’가 충분히 수반된 평등사회, 일방의 권력과 유지, 그들만의 리그건설이 아닌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진정 넘치는 5월을 맞으려면 우리의 소중한 ‘자유’를 지키는 노력 또한 세상에서 가장 우선되는 가치임이 틀림없다.

그러한 ‘자유’의 한계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첫째는 “법 아래에서의 ‘자유’이며, 둘째는, “자연 상태에서의 ‘자유’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며, 셋째는, “자율에 의한 ‘자유’”일 것이다.

이성(理性)을 잃고, 본능에만 의지한 행위는 ‘자유’가 아닌 방종이 될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즐거움을 주면 ‘자유’,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남의 ‘자유’를 침해하면 ‘방종’과 독단일 것이다.

그러나 ‘자유’를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 불합리와 불법적인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자율적인 의지와 단호한 행동일 것이다. 5월의 짙푸른 신록 아래 라일락 아니, 장미 아니, ‘자유’ 너에게! 열정 가득한 미소로 와인 한잔이 깃든 영원한 첫사랑을 용기 있게 고백하고 싶다. “언제까지나 영원한 내 첫사랑이라고.”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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