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일 칼럼
<나 홀로 여행>의 관건
노숙(텐트)이냐 찜질방이냐 아니면 펜션이냐
여행에 관한 많은 명언들이 있지만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가 한 말을 나는 최고의 명언으로 친다. 시집 <파리의 우울>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보들레르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그렇게 여행에 집착합니까? 시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여기가 아니면 다 좋으니까.”
여행은 누구에게나 로망이듯 나 역시 여행 떠나고 싶어지면 조바심이 나서 견디질 못한다. 그러나 일상의 관성을 깨고 집을 나서기란 쉽지가 않다. 게다가 같이 갈 친구를 두리 번 찾는다면 여행의 기회는 멀어진다. 이럴 땐 그냥 짐을 꾸려서 혼자 나서는 것. 일찍이 하이데거는 <문지방을 넘는 용기>를 설파했지 않은가. <나 홀로 여행>은 바로 혼자서 문지방을 넘는 용기로부터 시작된다.
낚시를 좋아하는 나는 낚시도구 간단히 챙겨들고 바닷가 포구나 섬을 주로 찾아간다. <나 홀로 여행>에선 무엇보다 숙박비를 절약하는 게 관건. 그래서 나는 70이 다 된 지금도 소형 텐트와 침낭을 넣은 큰 배낭을 지고 떠난다. 허나 막상 현지에 도착하면 여건이 맞지 않고 또 을씨년스런 마음이 들어 민박집이나 펜션을 기웃거리게 된다. 이 때 용기를 내야 한다.
<나 홀로 여행>에선 <숙박비>와 <맛있는 음식>은 제로섬게임과 같은 것. 나는 텐트를 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맨 먼저 찾는 곳은 마을 정자. 정자는 마을 어디나 있고 약간 후미지고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저녁때가 되면 텅 빈다. 이 때 텐트를 치고 다음 날 여명이 트기가 무섭게 텐트를 걷으면 만사 오케이. 여름철엔 침낭 하나면 족할 때도 있다.
나는 울릉도 도동항에 있는 정자에서 5일간 노숙을 한 적이 있다. 숙박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울릉도 도동항은 맛있는 음식도 참 많다. 트럼프 왔을 때 청와대 만찬에서 대접했다는 독도 새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마을 정자 한 구석에 노숙용 보금자리를 편 나는 짐을 내버려둔 채 울릉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낚시도 하고 두루두루 명승지 구경도 했다. 저녁 때 정자로 돌아오면 내 큰 배낭은 그 자리에 고스란히 놓여있다.
주인 없는 개방된 자리이다 보니 오히려 가장 안전한 자리인 셈. 털 끝 하나 손 탄 흔적이 없는 보금자리(?)의 모습은 가슴 뭉클할 정도이다. 오, 내 나라 내 동포여! 이런 탄성이 절로 튀어나온다.
<나 홀로 여행>은 몸 가볍게 돌아다니는 것이 관건인데 그 까짓 배낭 통째로 없어져도 그만! 하는 배짱이 필요하다. 여행의 가벼움과 자유는 자동적으로 따라 온다. 단, 지갑과 핸드폰은 수시로 꼭 꼭 챙길 것.
내가 즐겨하는 <나 홀로 여행>코스 네 곳을 소개해볼까 한다.

◇ 텐트 코스:제주도 남쪽 해안 대평리 주상절리 바닷가
이곳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낚시터이다. 올레길에서 텐트 치고 지내기란 쑥스럽긴 하다. 모두들 큰 맘 먹고 비행기 타고 오는 관광지이다 보니 멋진 펜션이 즐비하다. 해안가에 혼자서 꾸역꾸역 텐트치자니 좀 궁상스럽긴 하다. 그러나 일단 과감히 텐트 치고 나면 경비가 엄청 세이브 된다. 공항에서 소형차를 렌트할 여력도 생긴다.
해안가의 <카사블랑카> 같은 카페에서 파스타나 구운 피자를 시키고 커피나 와인 한잔 마신 후 한가롭게 낮잠도 잘 수 있다. 저녁이면 전망 좋은 해물식당에서 혼 술을 즐긴다. 숙박비로 20-30여 만 원을 쓴다면 <제주도 나 홀로 낚시 여행>은 나로선 실현 난감.
◇ 찜질방 코스:제주 북쪽 해안. 공항에서 제주시 탑동 방파제까지의 긴 해안도로
제주를 떠나기 전 날엔 나는 일찌감치 공항 근처에서 렌터카를 반납한 후 지척거리에 있는 용두 해수 찜질방 사우나로 간다. 찜질방 카운터에 짐을 맡긴 후 바로 앞의 해안 올레길을 따라 제주시 탑동의 긴 방파제까지 걸어간다. 가는 길에 있는 용두암 옆 해녀 좌판은 풍광이 일품이다.
뿔소라와 함께 먹는 한라산 소주 맛이란. 반쯤 남은 소주병을 가방에 챙겨 넣은 후 서너 시간을 여기저기 기웃기웃 배회하다가 마지막으로 제주시 탑동 동문시장으로 가서 무늬 오징어 회를 뜬다. 이제 어딜 가냐고? 해가 질 무렵 제주항의 거대한 방파제 위로 가서 앉아 보라. 일몰의 수평선과 광활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막걸리 잔을 기울여보시도록. 쉴 새 없이 전조등을 켜고 육지에서 날아와 내려앉는 비행기를 바라보면서. 감격의 눈물이 절로 흐른다.

◇ 찜질방 코스:부산 영도 일대. 자갈치 시장에서 태종대 까지
날씨가 따뜻해지면 나는 부산엘 자주 간다. 부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남포동 자갈치시장엘 가서 소머리국밥이나 두투(상어 위)를 사먹고 시내버스를 타고 태종대 선착장으로 간다. 저녁이 돼 유람선이 끊어지면 배대는 곳은 동네 낚시꾼들의 밤낚시 명소. 철제 난간에 기대서서 부산 앞바다에 떠 있는 화물선들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감상하며 고등어와 전갱이 낚시를 즐긴다.
밤이 깊어지면 남포동 자갈치시장으로 되돌아와서 야외 주차장 옆 옥외 포장마차에서 <꼼장어 연탄불 구이>를 사먹는다. 여기서 절대 속지 마시기를. 자갈치에선 이곳만 진짜 직화구이. 취기가 오르면 흥얼흥얼 어선이 촘촘히 정박한 부두를 거닐다가 걸어서 30분 또는 버스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송도 해수 찜질방 사우나로 간다. 시설 좋고 경치 좋고 안락하기가 호텔 못지않다.
◇ 찜질방 코스:여수 돌산 대교 아래 하모구이 거리
여수항의 밤바다 풍경은 한국인에겐 필수 코스가 아닐까 싶다. 이순신광장 포장마차 거리에서 사먹는 해물 삼합 요리와 여수 중앙시장 주변 식당에서 사먹는 장어국밥과 게장 백반. 그리고 운 좋으면 샛서방에게만 준다는 그 <샛서방 고기>(금풍생이)를 포장마차에서 맛볼 수 있다. 작은 돔같이 생긴 이 고기에 대해선 주인마다 해석이 다른 게 흥미롭다.
너무 맛있어 몰래 꼬불쳤다가 애인에게만 준다는 설과 잔가시가 유독 많아 오랫동안 퍼질러 앉아 먹는다고 해서 구워 준다는 설. 하하. 다음은 필자의 강력추천 코스! 해질 무렵(썰물) 여수항 여객선터미널서부터 돌산대교 아래 <하모거리>까지 걸어가 볼 것을 권한다.
30분 거리. 돌산대교 아래 바닷물이 그토록 세차게 흐른다는 걸 목격하고 자연의 경이와 공포에 사로잡힌다. 돌산대교 아래 오래된 작은 포구가 있으니 이곳이 유명한 <하모거리>. 이곳이야말로 진짜 낭만 코스이다. 땅거미 질 때 이곳에서 하모 회/샤브샤브를 사먹지 않았다면 내 노라 하는 미식가도 1% 부족이다! 작년에 여수 여객선터미널 옆 어시장건물에 해수찜질방이 새로 오픈했다. 호텔급 사우나. 아침 해가 떠오르는 여수항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윤원일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고려대 사회학교(석사)
▴작 품
▵소설집:<모래남자>, <거꾸로 가는 시간>
▵장편소설: <헤밍웨이와 나>, <시인 노해길의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