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마신 술로 3년 동안 취한다는 ‘千日酒’

溫故知新

박록담의 복원전통주 스토리텔링/77번째 이야기

한번 마신 술로 3년 동안 취한다는 ‘千日酒’

<박물지(博物志)>에 유현석이라는 이의 일화(逸話)가 유명하다. 박물지는 중국 진나라 때 장화(張華)라는 사람이 지은 책인데, 중산 땅에 살았던 유현석이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현석은 술꾼으로, 매우 독특한 술을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그가 하루는 ‘천일주(千日酒)’를 구하게 됐는데, 술집 주인이 마시는 법을 설명해준다는 것을 그만 깜빡했던 모양이었다. 유현석은 ‘천일주’를 가지고 집에 돌아와 취하도록 마시고는 이내 잠이 들고 말았는데, 현석이 며칠이 지나도 취한 채 깨어나지 않으므로, 식구들은 그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장사를 지내게 되었다.

한편, 현석에게 ‘천일주’를 팔았던 술집주인은 ‘이제쯤 술이 깨기 시작했겠지’ 생각하고 현석의 집에 이르러 주인을 찾으니, 안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종종걸음으로 달려 나오며, “바깥어른은 3년 전에 돌아가셔서 장사를 치렀는데, 아직 모르고 계셨습니까?”하더라는 것이다. 그때서야 술집주인은 당시 현석에게 ‘천일주’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을 깜빡 잊은 일을 사죄하면서, 황망이 무덤을 찾아가 땅을 파고 관을 열자, 유현석은 그때서야 눈을 뜨고 길게 하품을 하면서 “내가 왜 관 속에 누워있냐?”하고 중얼거렸다는 내용이다.

이 얘기는 “한번 마신 술로 3년 동안을 이내 취해 지냈으니, 유현석이야말로 원 없이 취한 격이 되었고, 그의 아내는 다시금 새 서방을 얻은 셈이 되었다.”는 얘기로 유명해졌다.

한편, 창산부원군(昌山府院君) 성희안(成希顔)이 살던 집이 남산 아래 있는데,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었다. 가정 신축 년에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가 세를 얻어 살았다. 임당(林塘) 정유길(鄭惟吉)이 방문하매, 규암이 시를 지어 사례하였더니, 일시의 문인들이 많이 차운하여 큰 책이 되었다. 규암의 시에,

옥 같은 사람이 달 아래 그윽한 거처 찾아와(玉人乘月訪幽居), 사립문을 밀치니 나무 그림자가 성글도다(柴戶推來樹影踈). 집에서 빚은 ‘천일주(千日酒)’ 독을 잠깐 열었고(山釀暫開千日酒), 쟁반의 안주는 우연히 팔초어를 얻었네(盤肴偶得八梢魚). 미친 시는 흐트러져 세속을 놀랠 것 없지만(狂詩不用傳驚俗), 맑은 이야기가 글 읽는 것보다 나은 줄 이제 알겠네(淸話方知勝讀書). 내일 그대를 산 밑 길에서 전송하고 나면(明日送君山下路), 작은 당 적적하여 텅 빈 곳에 사는 것 같으리(小堂寥落似逃虛).

‘천일주’를 놓고 벌인 시회(詩會)의 결과물이 한권의 문집이 되었을 정도였다 하니, 옛 선비들의 술자리에서의 풍류와 ‘천일주’의 향취가 어땠을 지 가히 짐작하기 어렵다.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천일주’가 우리나라의 선비들 사이에서도 감상(鑑賞)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1896년간으로 알려진 <酒食方(延世大閨壼要覽)>에 처음 등장한다. <酒食方(延世大閨壼要覽)>의 ‘천일주’는 여느 2양주법의 술 빚는 방법과 비교하면 아무런 차별성이나 특징이 없는, 그저 평범한 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酒食方(延世大閨壼要覽)>의 ‘천일주’는 주방문보다 말미에 언급하고 있는 내용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방문 말미에 “술맛이 좋고 아니 좋기는 쌀에 달렸느니, 술쌀 쓸기(쓿기)는 푸른빛이 나도록 쓸고, 담글 때도 여러 번 씻어 맑은 물이 나도록 씻어 담그느니라.”고 하여 주원료의 전처리과정, 곧 백세(百洗)를 특히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이 술을 하려면 구시월이나 동지섣달이나 정이월이나 하고, 늦은 봄이나 여름에는 못하느니라.”고 강조한 것으로 미루어, 날씨가 더워지면 술맛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에 빚는 만큼 “이 술 할 때에 두트레방석을 술 항 밑에 깔아두면 추운 데는 춥지 아니할 때는 술이 병집 없이 잘되느니라. 술을 해 넣고 간수하기를 차게 해도 못쓰고 좀 덥게 해도 못 쓰고 노인 위하듯 하여야 술이 잘되느니라.”고 하여 바닥으로부터 냉기가 술독에 닿지 않도록 관리하는 등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주방문 말미에 후수(後水)하여 후주(後酒)를 얻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오래두고 쓰려면 2~3사발씩 들어가는 병에 넣어서 시원한 광이나 아무 곳이든 시원한데 병목만 나오게 묻어두면 1년을 두어도 맛이 변하지 않고, 술빛이 점점 더 맑아지느니라. 두 번째 뜨는 술을 물을 첫물을 뜨지 않았을 때의 술독의 술 양 정도로 부어가지고 떠내고, 세 번째부터는 첫술 뜨지 않았을 때의 푼수(그릇 수)가 더 되게 물을 붓고 용수 빼내고 오래 두었다가 다시 용수를 박고 뜨느니라. 첫술 떠서 도청(淘淸)하여 둔 술은 한잔이라도 극히 귀하게 쓰고, 두 번째 뜬 술도 손님 대접하기 좋으니라. 맛이 좀 싱거운 듯 하면, 첫술을 조금 타서 손님대접 하느니라.”고 하였다.

이로써 <酒食方(延世大閨壼要覽)>의 ‘천일주’가 손님 접대 등의 목적으로 빚어지는 귀한 술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술빚기에 사용된 물의 양이 엄밀하게는 4~5되 정도로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끝으로 주방문 말미의 후수(後水)하는 방법에서 보듯 3차후수의 경우, 술맛을 보아가면서 할 일이다. 또한 밑술과 덧술에 사용되는 물은 반드시 끓여서 차게 식힌 물을 사용하도록 하고, 후수 역시도 끓여서 특별히 차게 식힌 후에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 천일주법 <酒食方(延世大閨壼要覽)>

◇ 술 재료 ▴밑술:멥쌀 3되, 가루누룩 1되, 물 (1~2되)

▴덧술:찹쌀 1말, 물 3되

◇밑술 빚는 법①멥쌀 3되를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작말한다. ②쌀가루를 시루에 안쳐서 흰무리를 찌고, 익었으면 시루에서 퍼내어 넓은 그릇에 담아 아주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차게 식힌 흰무리에 가루누룩 1되를 섞고, 물 (1~2되)를 치면서 여러 차례 짓이겨 묽은 고추장처럼 술밑을 빚는다. ④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곳에서 발효시키는데, 추울 때는 8~9일, 더울 때는 7~8일이면 술이 익는다. ⑤밑술을 다른 그릇에 쏟아놓고 보면, 테두리가 있을 것이므로, 그 테두리대로 물을 되어서(계량하여) 놓는다.

◇ 덧술 빚는 법 ①찹쌀 1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는다. ②고두밥이 익었으면 시루에서 퍼내고, 고루 펼쳐서 매우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고두밥에 밑술과 계량하여 둔 물 3되를 한데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짚불연기를 쏘여 소독하여 준비해 둔 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차지도 덥지도 않은 곳에 두고 발효시킨다. ⑤성냥불을 켜서 술독에 넣어보아 불이 꺼지지 않으면 다 익은 것이니, 술독을 시원한 곳으로 옮겨 놓는다. ⑥술덧의 가운데를 헤쳐서 용수를 박아두고, 첫술을 떠서 병에 담고 유지로 잘 봉하여 서늘한 곳에 둔다. ⑦7일 후에 다시 고인 맑은 술을 떠내고, 전과 같이 도청하기를 3~4일 하면 술빛이 맑고 맛이 좋다.

* 주방문에 “술맛이 좋고 아니 좋기는 쌀에 달렸느니 술쌀 쓸기는 푸른빛이 나도록 쓸고, 담글 때도 여러 번 씻어 맑은 물이 나도록 씻어 담그느니라. 이 술을 하려면 구시월이나 동지섣달이나 정이월이나 하고, 늦은 봄이나 여름에는 못하느니라. 이 술 할 때에 두트레방석을 술 항 밑에 깔아두면 추운 데는 춥지 아니할 때는 술이 병집 없이 잘되느니라. 술을 해 넣고 간수하기를 차게 해도 못쓰고 좀 덥게 해도 못 쓰고 노인 위하듯 하여야 술이 잘되느니라.”고 하여 쌀 씻는 방법과 술 빚는 시기를 강조하였다.

박록담의 복원전통주 스토리텔링/78번째 이야기

우리 술 빚는 법 ‘주방(酒方)’

<酒饌>에 매우 독특한 주방문을 수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주방문을 술 빚는 방법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주품명에 따른 주방문으로 이해해야 옳을지 고민을 했었다.

‘주방(酒方)’이라는 주품명 때문이었다. ‘주방’은 <주방(酒方)>이라는 문헌 명칭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문헌에서는 “술 빚는 방법”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酒饌>에는 ‘주방(酒方)’이라고 하여 주방문도 함께 수록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 매우 특별하다는 것이다. 그간 수백 가지의 주방문을 바탕으로 술을 빚어보고 그 맛이나 향기를 감상해 왔지만, ‘주방‘과 같은 주방문은 목격하지 못했다.

일테면 술을 빚는데 사용되는 쌀의 양과 누룩의 양이 각각 1되(一升)씩 이라는 점과 특히 쌀을 여러 차례 나누어 씻는데, 그때마다 쌀을 씻는 물을 버리지 않고 다시 끓여서 사용한다는 점에서 ‘주방’의 특징을 찾을 수 있겠다.

주지하다시피 “술빚을 쌀은 백세(百洗)한다.”고 하였고, 그 이유가 발효에 불필요한, 다시 말하면 발효를 억제하는 쌀의 영양성분과 이물질, 나쁜 냄새를 물로 씻어 제거하는 것이 그 목적인데, ‘주방(酒方)’에서는 그 물을 끓여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언뜻 떠오르는 주품명이 한 가지 있는데, ‘주방’을 수록하고 있는 <酒饌>을 비롯하여 <群學會騰>, <東醫寶鑑>, <양주방>, <홍씨주방문> 등에 수록되어 있는 단양주법(單釀酒法)의 ‘백화춘’이다. 하지만 ‘백화춘’은 쌀을 씻을 때 나온 뜨물은 버리고 침지과정의 쌀 을 담갔던 물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주방’의 주방문을 보면, “멥쌀 1되를 물 1사발에 깨끗이 씻어 건지고, 물은 큰 그릇에 담아 놓고, 한 번 씻은 쌀에 다시 물 1사발을 붓고 깨끗이 씻어 건진 후, 다시 건져내고 남은 물은 먼저 그릇에 담아 놓는다. 이와 같이 모두 10회 반복하는데, 쌀은 건져 작말하고 맨 마지막에 쌀 씻은 물은 따로 담아 둔다. 쌀 씻었던 물 9사발에 쌀가루를 넣고, 죽을 쑤어 차게 식기를 기다렸다가, 마지막에 받아 둔 쌀 씻은 물과 누룩가루 1되를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고 하였다.

이처럼 9차례 씻은 뜨물은 쌀가루와 합하여 죽을 쑤는데, 마지막에 씻은 뜨물은 날물인데도 끓인 죽과 함께 섞어 술을 빚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술을 빚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배치된다는 것이다.

‘주방’의 술맛은 여느 단양주와 별반 차이가 없다. 술 빛깔도 깨끗하지 못하고, 발효 중에는 거품과 같은 부유물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여느 단양주와 달리 매우 독특한 향기를 느낄 수 있는데, 그렇게 권장할만한 향기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 酒方 <酒饌>

◇술 재료:멥쌀 1되, 누룩가루 1되, 물 10사발

◇술 빚는 법 ①멥쌀 1되를 물 1사발에 깨끗이 씻어 건지고, 물은 큰 그릇에 담아 놓는다. ②한 번 씻은 쌀에 다시 물 1사발을 붓고 깨끗이 씻어 건진 후, 다시 건져내고 남은 물은 먼저 그릇에 담아 놓는다. ③이와 같이 모두 10회 반복하는데, 쌀은 건져 작말하고 맨 마지막에 쌀 씻은 물은 따로 담아 둔다. ④쌀 씻었던 물 9사발을 끓이다가, 따뜻해지면 쌀가루를 풀어 넣고, 주걱으로 저어주면서 팔팔 끓는 죽을 쑤어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⑤죽에 마지막에 받아 둔 쌀 씻은 물과 누룩가루 1되를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⑥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발효시킨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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