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자여! 없는 자에게 베풀 순 없을까

차동영의 唐詩 시리즈 ⑧ 詩聖 杜甫

언제나 천만칸 집을 지을꼬(7)

두보 시 33수

있는 자여! 없는 자에게 베풀 순 없을까

九 首

蜀相(제갈공명의 사당을 찾아서)

丞相祠堂何處尋, 錦官城外柏森森。

映階碧草自春色, 隔葉黃鸝空好音。

三顧頻煩天下計, 兩朝開濟老臣心。

出師未捷身先死, 長使英雄淚滿襟。

승상의 사당 어디서 찾을꼬?

금관성 밖 잣나무 우거진 숲이네.

계단에 비친 저 푸른 풀 절로 봄빛 띠고,

잎 사이 꾀꼬리 공허하게 고운 소리 내는구나.

삼고초려로 천하의 계책을 논하고,

양대에 걸친 섬김은 노신의 우국충정이니라.

출사하여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먼저 죽으니,

길이 영웅들의 옷깃에 눈물을 적시게 하는구나.

◇배경

상원 원년(760) 봄 두보 나이 49세 때 성도에 있는 공명사당을 찾아서,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만나서 경국제세(經國濟世)의 지략을 맘껏 펼치며 건국의 공훈을 세웠으나, 한편으로는 통일의 대업을 완성하지 못한 제갈량에 대한 깊은 감회를 읊은 작품이다.

◇어휘

▴蜀相(촉상) 삼국시대 촉나라 재상 제갈공명.

▴錦官城(금관성) 지금의 성도를 말함. 금성이라고도 함.

▴森森(삼삼) 수목이 무성한 모양.

▴三顧頻煩(삼고빈번) 유비가 공명의 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 도움을 청한 일.

▴兩朝(양조) 선주 유비와 후주 유선.

▴開濟(개제) 어려움을 타개(打開)하여 구제(救濟)함.

▴未捷(미첩) 아직 이기지 못함.

▴满襟(만금) 옷섶에 가득함.

◇해설

제갈량의 큰 뜻이 좌절된 것을 한탄하는 애틋한 마음이 녹아있는 대표적인 명시이다. “제갈량의 사당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스스로 묻고서 찾아가 보니, 금관성이라 불리는 성도의 성곽 밖 측백나무가 울창하게 뻗어 있는 곳에 있다.

계단에 돋아난 푸른 풀은 보는 이 없어도 절로 봄빛을 띠고 있고, 나뭇잎 사이 노란 꾀꼬리는 들어주는 이 없이도 그저 즐거운 소리로 노래한다. 삼고초려 한 유비와 함께 천하를 평정할 계획을 자주 논하였고, 유비와 유선 양대(兩代)를 섬기며 촉한을 세우고 백성을 구제한 노신(老臣)의 마음이 어린 듯하다.

출사하여 이기지도 못하고 제갈량 먼저 죽으니, 후세의 충신과 지사들 안타까움에 눈물로 소매를 적시게 한다.

여기에서 천하계(天下計)라고 한 것은 시대를 바로잡으려는 웅대한 지략을 드러낸 것이고, ‘노신심(老臣心)’이라고 한 것은 나라에 보답하려는 고심을 나타낸 것이다. 이 두 구절이 침중하고 비장하여, 결말에서는 영웅이라면 누구나 공감이 가듯 가슴을 아프게 하고 코끝을 시큰하게 하는 구절이다.

제갈량은 뛰어난 영웅이었지만 비극적인 인물이었다. 역시 천신만고의 삶을 살았던 두보는 그래서 제갈량을 남달리 흠모했다고 한다. 제갈량에 대한 시를 13편이나 남겼다.

◇명구

出師未捷身先死, 長使英雄淚滿襟。

十 首

貧交行(빈교행:가난할 때의 사귐)

翻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

君不見?

管鮑貧時交, 此道今人棄如土。

손바닥 뒤집으면 구름 되고 다시 엎으면 비가 되니, 어지럽고 경박한 세상 굳이 말해 무엇하랴?

그대여 보지 못했나? 관중과 포숙 가난할 때의 사귐을 이 도를 요즘 사람들 흙 털어 버리듯 하네

◇배경

당 현종 천보(天寶) 11년(751), 두보가 장안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시절에 지은 것이다. 관직에 나가고자 하는 두보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조정 사람들의 냉담한 태도에 노여움과 절망을 느껴 이 시로서 세상 민심을 표출하였다.

◇어휘

▴翻覆(번복) 뒤집을 번. 엎을 복. 이리저리 뒤집다.

▴紛紛(분분) 어지럽게 섞인 모양.

▴何須(하수) 굳이 ~할 필요가 있겠는가? 굳이 ~할 필요 없다.

▴管鮑(관포) 춘추 제나라 시대 정치가 관중과 포숙아.

▴此道(차도) 관중과 포숙아의 참된 우정.

▴棄如土(기여토) 흙을 털어 버리듯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해설

이 시 <빈교행>은 의리 부재의 현실을 통탄해 읊은 시이다. 첫 구절 ‘손바닥을 뒤집으면 구름이 되고 다시 엎으면 비가 된다(飜手作雲覆手雨:번수작운복수우)’에서 세상인심의 변화가 마치 손바닥을 한번 뒤집을 때마다 비도 되고 구름도 되듯 변화무상하며 덧없음을 표현했다. 예나 지금이나 손바닥 뒤집듯 쉬이 변하는 인심을 통감하기는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

옛 시절의 선비들은 학문적 바탕이 유학이었기에 관계에 진출하여 자신의 이상을 펼쳐보는 게 꿈이라면 두보 역시 마찬가지로 그의 포부를 벼슬길에 나아감으로써 실현해 보고자 하였으나 결국 그러한 기회를 잡지 못하였다. 집을 떠난 타향에서 안정되지 못한 삶을 살면서 사람들의 변덕스럽고 경박한 인심을 원망하고 한탄하는 심사를 엿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관중과 포숙을 비교할 때 관중에게 점수를 더 주는 경향이 있지만 두보는 포숙의 인간성과 도량, 그리고 사람을 볼 줄 아는 혜안을 들어 포숙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훌륭한 리더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리라. 사람이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으니까….

변덕 심한 세태를 논하자면 현재에도 마찬가지다. 살아오면서 자신의 이익이나 출세를 위해 친구나 친한 사람을 이용하거나 혹은 등을 돌리는 모습을 누구나 경험하였을 것이다. 다각화된 세상의 구도변화로 인해 각박해진 세상살이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을 경험하거나 바라볼 때마다 씁쓸한 기분으로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의 물질만능주의가 강력하게 지배하는 현실에서도 어떤 이해타산을 떠나 자신을 변함없이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친구가 진정한 지기(知己)가 아닐까?

◈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는 제(齊)나라 사람으로, 두 사람이 젊었을 때 남양(南陽)에서 장사를 했는데, 관중은 속여서 이익의 분배를 포숙아보다 항상 많이 했다. 포숙아는 “관중에게는 모친이 있고, 가난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를 나쁘게 여기지 않았다.

나중에 포숙아는 제의 공자 소백(小白)을 섬기고, 관중은 소백의 형인 규(糾)를 섬겼다. 나중에 소백이 즉위하여 환공(桓公)이 되자 규는 죽음을 당하고 관중은 옥에 갇혔다. 포숙아는 관중을 등용해 쓰자고 환공에게 건의하여 아주 어렵게 받아들여졌다. 관중은 재상이 되어 정치에 힘썼으며, 환공은 그의 덕택으로 천하의 패자(覇者) 자리에 올랐다.

관중은 “나는 지난 날 가난하게 살 때 포숙아와 장사를 했는데, 이익가운데 내 몫을 많게 해도 포숙아는 나를 탐하는 자라 말하지 않았고, 세 번이나 벼슬길에 올랐다가 주군에게 추방된 일이 있어도 나를 불초하다 하지 않았다. 또 세 번이나 전쟁터에 나갔다가 번번이 패주했지만 포숙아는 나를 비겁하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나에게 노모가 계심을 알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아이다”고 말했다.

◇명구

翻手作雲覆手雨

사진 :제갈공명을 모신 사당이다. 정식명칭은 한소열묘(漢昭烈廟)다.

차동영의 학력및 경력:▴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중어중문학과▴서강대학교 대학원 중국어과▴삼성 배우기 최고가상품 개발▴DMZ종주상품 및 태권도방한관광상품 개발▴CITM(중국국제여유대전)한국관 최우수관 선정 및 수상

*편집자주:본지는 저자의 양해를 받아 ‘언제나 천만칸 집을 지을꼬?’ 중에서 술과 직접 관련이 있는 대표시를 연제한다. 삽화및 관련 사진은 밥북사가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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