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영업을 꿈꾸던 자, 술을 만들다
배혜정누룩도가 심형석 생산관리1팀장
대학에서 식품공학과를 전공한 심형석(沈炯錫?32) 팀장은 졸업 후 식품 쪽 영업을 하려 했다. 사람 만나는 일이 즐거워 적성에도 잘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취직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취업정보 사이트에서 재밌는 구인광고를 봤다. 한 주류연구소에서 연구원을 뽑는 광고였는데, 자격조건이 ‘술에 열정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격한 노동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었다. 더불어 연구원이면 보통 석사(碩士) 이상이어야 하는데 이곳은 학사 이상이면 됐다. 묘하게 끌려 지원했다. 그곳이 배상면주류연구소(지금의 우곡양조종합연구소)다.
심형석 팀장은 배상면주류연구소에서 2003년 6월부터 2년 간 근무했다. 술 만드는 게 신기해서 지원했고, 그런 만큼 재밌는 근무를 예상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야 했고, 쉴 틈 없이 많은 양의 연구과제를 소화해 내야 했다.
“그런데, 정말 자유롭게 연구했어요. 우선 회사의 지원이 좋았죠. 소주, 맥주, 탁주에 침출주까지 직접 담그고, 먹고, 평가하고, 토론한 덕분에 무척 많은 걸 배웠어요.”
심 팀장은 2005년 6월 지금의 배혜정누룩도가 화성 공장으로 ‘갑자기’ 파견근무를 왔다. 말이 파견이지 당시 공장 직원 한 명과 1:1 맞교환 ‘트레이드’ 형식이었다. 나중엔 안 일이지만 배혜정 사장이 배상면 회장에게 생산 쪽 일을 맡길 수 있는 인재 한 명을 부탁했고, 배 회장은 바로 심 팀장을 적임자로 생각한 것이다.
“하루는 배 회장님이 연구소에 들어오시더니 제게 갈 곳이 있다며 짐을 싸라는 거예요. 어디 가까운 곳에 가는 걸로 생각하고 짐 몇 가지를 챙겨 나왔는데, 그게 다냐고 물으셔요. 그래서 ‘그렇습니다’라고 했더니 회장님이 저를 차에 태우고 온 곳이 바로 화성공장이었죠. 그리곤 앞으로 이곳에서 생산팀장 직을 맡으라고 하셔요. 순간 섭섭하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게 기회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다행히 생산직 팀원들과는 안면이 있던 터라 서먹한 감정은 없었다. 기술적으로 모르는 부분은 기존에 몸담았던 연구소 직원들이 한 명씩 방문 지원해줘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됐다. 문제는 교통이었다. 서울 집에서 출퇴근하기에는 시간적인 손실이 엄청났다. 이 문제는 아예 공장에서 기숙하기로 마음먹으면서 풀렸다.
연구원일 때는 말 그대로 연구만 하면 됐지만, ‘팀장’직으로 몸을 옮긴 이상 신경 쓸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조직 인력관리.
“저는 ‘부린다’는 표현을 무척 싫어해요. 직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스스로 수긍할 때 일을 시키죠. 처음 생산팀장을 맡았을 때 직원 수가 15~16명 정도였는데 그중 제 나이가 밑에서 세 번째쯤 됐어요. 그러니 직원들에게 버르장머리 없이 막 할 수도 없었지만요.(웃음)”
그가 이 공장에 왔을 때만 해도 배혜정누룩도가의 술은 ‘부자(富者)’ 시리즈인 16°, 13°, 10°와 ‘새색시’밖에 없었다. 그 외 우곡소주, 생(生)술, 쌀막걸리 등은 그가 온 이후 만든 것들이다. 그중 생술은 꽤 기억에 남는다. 2006년 초부터 만들기 시작한 이 술은 3개월여의 개발기간을 포함해 하나의 제품으로 완성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숱한 밤을 새우는 순간에는 배상면 회장과 배혜정 사장도 함께 했다. 심 팀장은 그 기간 중 부산의 한 탁주업체를 방문해 모자란 기술을 직접 배우고 오기도 했다.
“이 회사에 입사해 배상면 회장님과 배혜정 사장님을 만나게 됐고, 같이 일을 하면서 꿈이 생겼어요. 내 이름을 내건 작은 양조장을 하나 만들고 싶은 꿈 말이죠. 술을 빚는 사람들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내가 만든 술을 남들이 먹어줄 때가 가장 기쁘거든요.”
그의 계획은 꽤 그럴싸하다. 가족 경영의 양조장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 3대에 걸쳐, 혹은 10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양조장이 부러웠다고 했다. 그가 만든 양조장 옆엔 따로 술 가게도 열어, 양조장에서 만든 술을 팔게끔 하고 싶다고도 했다. 될 수 있으면 아버지의 고향인 경기도 김포 쪽에 터를 잡을 생각까지 한 것을 보면 그 꿈이 무럭무럭 익어가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 역시 대를 이어 양조장을 이어갈 생각이다.
“그런 꿈을 현실로 이루려면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우선 이론적인 부분을 더 보충해야 하죠.”
심 팀장은 그 같은 인식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공은 미생물학. 국내에 이미 알려져 있지만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발포주’를 끝없이 알고 싶은 열정이 그 같은 선택을 하게 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편의를 봐줘 큰 어려움 없이 지난해 8월 졸업할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그의 꿈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사진설명>
심형석 팀장은 가족 경영의 양조장을 만드는 게 꿈이다. 일단 양조장이 만들어지면 대를 이어 계속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그 옆에는 작은 술 가게도 열어, 양조장에서 만든 술을 손님들이 맛볼 수도 있게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