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의 광장, 청주 이야기

청주(淸酒)는 맑은 술이다. 옛 사람들은 탁주를 ‘현인’이라 부르고, 청주를 ‘성인’이라 불렀다. 탁주도 좋아했지만 청주를 더 윗길로 보았다. 실제 술을 빚으면, 맑은 술이 위로 떠오르고 지게미가 섞인 탁한 술은 밑으로 가라앉는다. 윗술을 조심스럽게 떠내거나, 거름망인 용수를 박으면 손쉽게 청주를 떠낼 수 있다. 청주는 맑고 도수도 높기 때문에 탁주보다는 고급술이었다. 가마솥에 밥을 했을 때에 어른 밥을 먼저 떠내듯이, 맑은 윗술을 떠내 조상에게 올리는 제주로 사용하였다. 양조장에서는 윗술을 ‘전주(全酒)’ 또는 ‘전내기’라 하여 귀한 손님에게 내놓기도 하고, 비싼 값에 팔기도 했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청주는 탁주의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하지만 주세법에서는 그 이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주세법에서 탁주는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하지 아니하고 혼탁하게 제성한 것”이고, 청주는 “곡류 중 쌀·국(麴) 및 물을 원료로 하여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제성한 것 또는 그 발효·제성과정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물료를 첨가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령이 정한 것을 제외하고 보면, 좀 낯선 단어는 국(麴)이다. 국은 누룩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사용되는 국은 일본식 누룩을 지칭한다. 즉, 우리 주세법에서는 일본식 누룩을 사용하면 청주이고, 주원료의 2% 이상의 한국 누룩(밀누룩)을 사용하면 약주로 규정된다. 주세법에 의하면 청주와 약주는 다른 술인 셈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청주와 약주를 크게 구분 짓지 않고 사용해왔다. 우리의 청주 속에는 솔잎이나 진달래꽃 따위가 쉽게 들어간다. 몸에 좋은 재료를 넣어 맑게 빚으면 청주로 여겨왔다. 하지만 일본 청주는 다르다. 무조건 쌀만 사용해서 빚어야 한다.

본디 청주라는 단어는 한자어이니,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모두 청주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청주가 유럽에 먼저 진출하였고, 세계화의 물결을 먼저 타게 되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허용했던 한국은 일본 청주의 세계화 과정과 상관없이, 일본의 청주 개념을 일제시대에 받아들여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한국 주세법에서는 일본 청주를 청주라 부르고, 조선 청주는 약주라고 부른다.

약주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뜻 그대로 약재가 들어간 술이다. 술의 높임말로 약주라는 표현을 쓴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면 흔히 “약주 드시고 오셨습니까?”라고 여쭤본다. 이때 “아빠, 술 마셨어요?”라고 하면 철부지의 말이지, 체통 있는 집안의 대화는 아니다. 약주의 또 다른 개념으로 청주의 대명사로도 쓰였다.

이런 연유로 우리 술에서는 청주와 약주의 경계가 흐릿하다. 이 글에서는 전통적인 인식 그대로 약주와 청주를 한 가지로 여겨,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겠다.

우리 술에서 약재가 들어가지 않는 술을 찾기가 쉽지 않다. 솔잎이라도 조금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지 약간씩 약재가 들어간다. 이는 술 빚는 기술이 집안에서 계승되다보니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집안에서 빚는 술은 기능성이 가장 중요했다. 술은 지나치면 몸에 좋지 않으니 집안에서는 되도록 몸에 좋은 술을 담으려고 했다. 그래서 술에 인삼을 넣거나 구기자를 넣고, 솔잎을 넣거나 국화를 넣었다. 그러다보니 약재 향이 강해지고 맛도 진해졌다. 술을 상품으로 여겼다면 첫 느낌을 중히 여겨 맛보다는 향을, 효과가 더디 나타나는 기능성보다는 눈에 띄는 색깔을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우선 발효주 중에서 약재를 넣지 않은 우리술을 꼽아보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경주교동법주’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해남 진양주’가 있다. 둘 다 통밀을 빻아서 만든 밀누룩과 찹쌀로 지은 고두밥을 섞어서 빚는다. 술 색깔은 보름달빛처럼 노르스름한데, 이는 밀누룩의 노릇한 색깔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쌀고두밥과 쌀누룩으로 빚은 일본 청주가 우리 청주보다 투명한 것은 밀누룩을 쓰지 않고 흰 쌀누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과를 정밀하게 하면 우리 술도 투명해지는데, 그러면 맛과 영양소를 잃게 된다.

발효주인 우리 청주의 특징은 맛있고 진하다는 것이다. 이때 맛있다는 것은 맛없다의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무미(無味)하다의 상대적인 개념인 유미(有味)하다는 뜻이다. 즉, 물은 무미하고, 시중에서 대량 판매되는 소주도 무미한 편이다. 흑맥주에 견주어 라거(lager)형의 맥주도 무미한 편이다. 우리 청주는 달고 쓴맛이 주도하면서, 때로 신맛이나 매운맛이 절묘하게 들어가 있다. 솜씨 좋은 술은 누룩내도 강하지 않아 젊은이들에게도 호소력이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우리 청주(약주)를 꼽아보면, 서울의 삼해주, 충청도의 면천 두견주, 한산 소곡주, 청양 구기주, 공주의 계룡 백일주, 금산 인삼주, 충주 청명주, 경상도의 경주교동법주, 문경 호산춘, 대구 비슬산의 하향주, 함양 솔송주, 전라도 모악산의 송화백일주, 담양 대잎술, 낙안 사삼주, 해남 진양주, 제주도의 좁쌀 오메기술, 강원도의 감자술과 엿술이 있다.

청주의 알코올 도수는 19도에서 12도 정도를 유지한다. 발효된 곡물과 누룩향이 그대로 스며있어서 향과 맛을 즐기기에 좋은 술이다. 더욱이 우리 청주는 다양한 약재가 들어가 있어서 몸에 이로운 약효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약재가 들어간 술은 맛이 강하기 때문에 많이 마시기가 어려운데, 우리 술 안에는 과음을 막는 제어장치가 들었다고 보면 된다.

발효주 청주는 우리 술의 근본이 되는 술이다. 항아리에 빚은 술에서 맑은 윗부분의 청주를 떠낸 뒤에 남은 술을 막 걸러 막걸리를 만들고, 청주나 막걸리를 끓여 증류식 소주를 만들었다. 지금의 양조장들은 최상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 탁주와 청주와 소주를 달리 빚고 있지만, 우리 술이 진화하고 변신하는 과정 속에서 청주는 중요한 광장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지방마다 특산물을 부재료로 사용하여 다양한 청주(약주)가 빚어지고 있다. 다양한 청주를 맛보게 될 때 우리 술의 진경도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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