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산업과 정책이야기(19)

러시아의 음주문화와 알코올정책(下)

조성기 박사(경제학, 아우루연구소 소장)

◇ 러시아 내 음주문제가 다양한 이유

(삶과술=김원하 기자)추위가 길고 깊은 러시아는 자연 자체가 강한 독주 보드카를 권한다. 그렇지만 광대한 러시아에는 서로 다른 출신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문화가 다른 인종집단이 아주 많다. 재미있는 것은 지역이 다르거나 인종이 다를 경우 술을 마시는 방식, 주량, 음주시점, 음주의 결과나 사회 문제 등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 북방에 사는 사람들은 알코올을 마시는 방식과 대사능력이 다른 곳의 사람들과 다르다. 북방에 사는 원주민들은 일반적인 러시아인들에 비해 알코올 중독이 3배 내지는 6배까지 높게 발생한다. 북방 원주민들은 목축업이나 수렵에 주로 종사하고 있는데 눈병과 귓병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25% 정도는 면역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북방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은 결핵 걸릴 확률이 중앙러시아 사람들보다 7배나 높고, 유아 사망률이 4배 이상이고, 악성 종양도 2배 이상이라고 한다. 음주로 인한 상해나 중독증상도 1970년대 이후로 65.6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대단히 놀라운 증가율이다.

이러한 증거들은 당연히 그들의 건강상태가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러시아 학계는 북부 러시아인들의 40-50%가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로 인종학적, 문화적 근거가 알코올 중독에서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전통사회로부터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데서 비롯된 스트레스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일터에서의 개개인의 처지, 생활의 속도,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등의 영양상태, 러시아의 문화와 생활수준 등의 변화가 소수민족들의 정신건강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격리된 지역에 살고 있는 민족들이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질환이 작다는 것은 러시아 내 각각 다른 인종들 마다 다른 문화적 차이가 문제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시아에서 관찰되는 이러한 결과들은 미국의 네바다 주와 유타 주를 대상으로 비교 분석한 결과와 유사하다.

술과 도박, 폭력에 시달리는 네바다 거주자들과 몰몬교의 근엄한 생활태도에 익숙한 유타 거주자들의 문화적 차이가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질환에 차별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과 유사한 결과다.

북방의 소수민족인 네넷족의 경우 전체 종족의 90.5%가 알코올성 정신병인 환각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종족 거의 모두 그렇다는 것이다. 이와 비교해 볼 때 러시아인들의 평균치는 44.6% 정도이다.

북방계 원주민들은 알코올 의존증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고, 취약하며, 판에 박힌 알코올 중독증 증상을 보이고 있다. 특별한 현상으로 그들에게 섬망 증상이 없다는 것이 보고된 적이 있다. 러시아에서는 북방원주민들을 대상으로 1980년경에 뇌의 기능과 성격의 형성에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질환의 특성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한 바 있다.

그 결과 유럽 인종과 북방 원주민들 간에 차이가 인정되었고, 결국 차별적인 백신투여 계획이 수립되었다.

◇ 러시아 의사들의 알코올문제 처방

러시아의 의학자들은 대부분 알코올을 약물로 취급하고 있다. 그렇지만 볼셰비키혁명 이전의 러시아 병원에서는 치료목적으로 사용한 와인의 량이 건강한 국민 1인당 소비량 보다 많았다고 한다. 의사는 어린이 환자에게도 와인을 권했다고 전한다.

러시아의 1800년대 문헌을 보면 45-55%의 어린이들이 와인을 의사로부터 배웠다고 조사되고 있다. 요즈음 서구의 알코올 예방전문가들이 들으면 참으로 어이없어할 일이다. 러시아의 의학자인 콤(A. Komb)이 1904년에 쓴 ‘어린이 질병 매뉴얼’에 보면 ‘알코올은 유익한 것이며, 6살이 넘은 어린이들을 치료하는데 매우 이롭다’고 분명히 쓰여 있다.

당시 러시아의 학계에서는 알코올을 치료제로 사용되는 것을 인정했는데, 그러한 전통은 놀랍게도 아직도 남아있다. 근대 러시아의 모든 의학과 약학서적에는 알코올을 환자를 치료할 때 사용하는 법이 자세히 적혀있다고 한다. 알코올치료 처방전은 식용부진, 소화불량, 쇼크와 실신, 허혈증, 빈혈증, 부종, 외과적 통증 등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요즈음에도 보드카를 구강치료 임상 시 마취제로 사용한 사례들이 보인다. 러시아 남서부지역에 있는 ‘조지아’의 의사들은 많은 질병치료에 ‘드라이 와인’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인들은 알코올의 긍정적인 효과가 품질이나 안정성이 보장되는 표준적인 의약품이 낳는 효과를 능가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술이 식욕을 높이고, 혈관을 확장시키거나 따스하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키거나 진정시키는 기능에 탁월하다는 입장이다. 술에 대한 신뢰가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러시아의 많은 학자들은 노인들의 수명연장에도 알코올이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주장의 저변에는 남성의 경우 1일 80-100그램 이하로 여성의 경우 40-60그램 이하로 술을 마실 경우라는 단서가 있다.

그런데 이 적정음주량이나 몸에 이로운 음주량도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러시아인들이 알코올 소비량 세계최고로 조사되는 일은 이 같은 음주인식이 작용한 것이었다.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러시아사람들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진정제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조사결과 러시아의 술값이 일반 봉급생활자에게 부담이 되는 수준 이상이라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일반적인 의견이다.

1990년대의 통계를 보면 외과의사의 8%, 구강학 의사는 7%, 응급의사는 6%가 알코올 중독자로 나와 있다. 36%의 마취사, 27.4%의 외과의사, 14.3%의 X레이 기사는 1주일에 1회 이상 자주 음주를 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학계에서는 국민들의 음주습관이 면면히 내려온 문화현상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알코올을 종교나 풍습과 관련된 전통적 의약품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또한 문화적 차이, 생활방식, 민족 간의 사회 심리적 특성 차이 등이 알코올 문제의 발생에 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코올을 의약품으로 사용하는 정도가 적극적이라는 현상 또한 지극히 러시아다운 일이 아닌가 한다.

◇ 술을 사랑한 러시아인들이 받는 대가

술을 남용하게 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것에는 사회적 개인적 생화학적 이유가 있다. 그 견해는 러시아에서나 다른 국가에서나 대동소이하다. 술을 소비하는 행동에는 역사적 조건도 영향을 미치며 알코올에 대한 공중의 태도와도 관계가 있다.

러시아에서도 감정의 불안정, 미성숙 등과 같은 사람의 특성이나 간질환 등의 신체적 문제가 알코올 중독으로 발전된다. 그런 일반적 사항에 대해 러시아인들도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많이 마신다고 해서 그런 내용을 부정하지 않는다.

러시아학계에서 제시하는 음주와 알코올문제의 표준형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인들은 대체로 15세 이전에 술을 마시게 된다. 19살쯤 되면 대체로 알코올 의존의 전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성 중 하나로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게 된다. 25세 쯤 되면 자주 만취 상태를 나타내는 알코올 남용자들이 상당수 발생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술꾼들은 90% 정도가 자신이 술을 많이 마시게 된 이유를 친구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남 탓으로 돌리고 싶은 술꾼들의 속사정이 드러난다. 정이 많은 러시아인들의 특성이 우리 민족과도 유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대체로 육체노동을 하거나 학력이 낮다. 상대적으로 일이 단순하면서 급여는 어느 정도 되는 계층에서 술을 과도하게 마시는 것이다.

술이 러시아 국민을 유혹하는 사유는 사실 다른 나라와 다르지 않다. 술에 취한다는 것이 주는 장점들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술에 강한 러시아인에게도 술 문제가 예외일 수 없다. 러시아의 술은 개인, 가족, 사회가 모두 취하게 하여 술을 마셔 이룬 만족도만큼 대가를 치르게 한다. 러시아인들이 생활에서나 작업현장에서 취하게 되면 의료적, 사회적, 도덕적, 경제적 문제가 발생되게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인들도 예외 없이 만취하게 되면 행위능력이 줄어들고, 자제력이 상실되며, 폭력적으로 변한다. 또한 각종사고에 시달리게 되고, 법을 어기게 되며, 알코올중독 상태가 된다. 알코올 남용을 장기간 하게 되면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고, 정신적 능력이 쇠락하게 되고, 영양 상태와 소화능력에 문제가 생긴다. 타민족과 다르지 않았다고 러시아 학계에서 보고하고 있다.

알코올 의존 증상의 증가, 알코올성 정신질환의 발생, 45-55세 사이의 사망자수 증가, 자살의 증가 또한 러시아인들이 보드카를 사랑한 대가라고 밝혔다.

한 러시아의 알코올 전문가는 그의 글에서 “친구, 가족, 자존감, 직업, 행복, 자유 등이 보드카를 마신 대가로 사라지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술로 인한 문제는 음주 자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여러 가지 갈등을 겪게 되고, 자녀들을 잘못 보살피게 되며, 정신질환이 발생하고, 태아알코올 증후군도 겪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 부터 음주를 경험하게 되는 러시아인들은 일탈적인 생활에 익숙하게 되므로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러시아 사회 역시 술로 인한 고통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폭력, 범죄, 작업장 사고, 교통사고, 병치레, 저생산성, 과다한 건강비용 지출, 중독자 치료비 지출 등이 과다하다는 것이다. 그런 사회가 갈 곳은 불 보듯 뻔하다. 사실 술 권하는 사회인 러시아의 알코올 문제는 종교적 규범으로 인해 음주를 삼가고 있는 중동권의 사람들에 비교해 보면 천지 차이가 된다. 건전한 음주문화의 형성이란 매우 중요한 것임을 잘 입증해 주는 사례가 러시아다.

러시아의 시사 잡지인 가족(Family) 1990년 호를 보면, 러시아 부모 중 30%가 체벌이 가장 효과가 높은 교육방법이라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10%는 엉덩이를 찰싹 때리는 것을 선택하고 있고, 20%는 채찍질을 가한다고 한다. 또한 이 잡지에서는 러시아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술에 만취한 부모의 가학적 채찍질이 종종 가해지고 있다고 적고 있다.

매년 2000명의 어린이가 어린이 병원에서 외과치료를 받았고 그 중 20명이 부모의 잘못으로 불구가 되었다고 한다. 발표된 통계가 이러한 수준이니 실제는 더 많은 어린이 폭행이 술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 술이 가족구조와 기능에 미치는 폐해는 상당히 크다. 15세까지의 아이 중 25%가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다. 6500만 가족 가운데 1000만 가족은 부모 중 한사람만 있다고 보면 된다. 1500만 어린이들이 아버지가 없다. 100만 명의 어린이들은 부모가 살아있지 않는 소년소녀가장이다.

30만 명의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이나 고아원에 살고 있고 70만 명은 입양되어 있다. 67%는 부인이 이혼을 주장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남편의 음주벽이다. 알코올이 가족해체의 주범이라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러시아의 경우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알코올 남용은 실로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통계만으로는 러시아 음주문제의 실상을 우리가 잘 알 수가 없다. 최근 발생한 사건으로 만성음주자인 아버지를 딸이 살해한 사건은 러시아의 음주문제가 아주 심각한 것을 시사한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 시대의 러시아는 알코올 문제를 숨기고 있었다. 1930년부터 1985년까지의 통계에는 알코올 문제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1928년의 통계를 보면 인구 10000명당 학교는 1.5개, 클럽은 0.58개, 도서관은 0.38개, 극장은 0.13개, 교회는 1.64개, 술집은 4.5개로 되어있는 자료가 있다. 이것이 사회주의 체제 하 러시아의 알코올 문제를 그대로 나타내주는 것이 아닌가.

술로 인한 사회문제가 커져 시도한 1990년대의 반 알코올 캠페인이 실패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러시아에서는 술을 어디서나 살 수 있었다. 소련연방의 지도자은 브레즈네프나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할 것 없이 모두 알코올리즘을 막으려고 애섰다. 1985년에 고르바초프는 술을 더 강력하게 통제하였다. 반알코올 캠페인도 하고, 공공장소의 음주에 벌금도 부과 했다. 판매도 제약을 가했다. 그렇지만 보드카 왕국이 쉽게 반 알코올 정책을 수용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듯 했지만 실패했다.

2006년에 새로운 주세체계를 도입하고 중앙집권적 주류 데이터 시스템을 도입하여 판매된 술을 병단위로 점검 할 수 있도록 했다. 2010년에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보드카 병당 최저가격의 두 배 가량 인상했다. 알코올리즘에 대항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었다.

2011년까지는 맥주는 러시아에서 술로 분류되지 않았다. 독특한 주류분류방식이었다. 맥주 소비량이 급격히 늘고 알코올 문제가 커지자 정부는 태도를 바꾼 것이다. 맥주를 밤에 파는 것, 학교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맥주를 마시는 일들을 줄이자면 맥주는 술이 되어야 했다. 맥주병의 크기도 330미리 이상의 병은 제작이 불가하도록 했던 것이다. 2012년 1월 1일 전격적으로 소프트 드링크제이었던 맥주가 술이 되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11시에서 아침 8시까지 모든 종류의 술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놀라운 정책이 전격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2015-15년의 금융위기 시기에 판매량을 늘리고자 최소 가격 수준을 낮추도록 하는 안이 제기 되었다. 2016년 12월 이르쿠츠크에서 메탄올을 마시고 49사람이나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격인상의 후유증인 것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다시 알코올이 들어간 술 이외의 액체들의 제조에도 제약을 가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도 러시아는 매년 술과 관련된 사망자가 연간 50만 명이 된다. 북극의 낭만과 심미적 문화가 사라져 가는 러시아에서 보드카는 여전히 자신 만의 문화를 창조해 내고 있다. 자본주의의 확대, 경제의 어려움, 자율의 증가 등 체제변화 속에서 러시아의 음주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을 것인가는 우리들의 주목대상이 된다.

하지만 러시아의 청년들이 맥주를 선호하기 시작한 것은 시베리아의 야크추크에서도 분명히 찾아 볼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술을 러시아의 자치국인 사하공화국 청년에게 물었을 때, 주저 없이 ‘맥주’라는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과연 러시아의 음주문화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청장년층의 음주 선로도 변화가 얼마나 사회에 충격을 줄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일 것이다.

게다가 다른 나라와 달리 알코올 중독 예방이나 적극적인 치료 자료를 찾기 어려운 현상도 러시아가 가진 술 문제의 특성이다. 그렇지만 러시아 정부의 술 문제 줄이기 노력도 과거와는 크게 다르게 적극적이다. 더욱이 정체성 변화로 대변 되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러시아인의 음주문화는 과연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예의 주시해 볼 일이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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