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녕하 칼럼
술(酒)은 농경문화의 꽃
권 녕 하(시인, 문화평론가,《한강문학》발행인 겸 편집인)
한족(漢族)은 우리나라를 속국(屬國) 정도로 취급해왔다. 우리말 용례로 습진평(시진핑)이, 우리말 발음으로 트럼프를 만났을 때 “한국은 과거 중국의 속국이었다”라고 했다 한다. 청 말 원세개의 종주국 횡포와 일본군 3개 사단의 진입, 친일파 매국노 이완용이 한 때 친러파였고, 갑신정변에 이어 10년 후 갑오개혁(경장)이 실시되고 둥실둥실 세상이 온통 어지럽던 구한말, 그래도 선각자들은 목숨을 걸고 민족정기를 살려내고자 노심초사 했다. 이 때 민중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자각이 싹트는데, 이게 거저 된 것이 아니다. 아래로부터는 동학운동과 위로부터의 개화운동을 경험한 조선민중! 갑오경장 이후 조선은 근대적 사회로의 역사적 큰 걸음을 내딛는다.
독립협회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민중의식을 높이려는 노력이 펼쳐진다. 독립협회의 독립정신은〈독립신문〉을 통해, 언어의 독립을 통해, 민족정기의 불씨를 일군다. 고종은 1894년 11월, 칙령을 통해 공문서에 “국문을 본으로 삼고 한문 번역을 붙이며 또는 국한문을 혼용”할 것을 포고한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래, 서세동점의 풍랑을 겪는 한민족에게 언어의 통합, 사회적 약속은 매우 중요하다. 글과 언어는 약속이고 정신이기에.
공통의 언어를 사용한 최초의 시기는 한강(漢江) 유역에서 태동하여 첫 국가체제를 갖춘 고조선이겠다. 고조선은 한(韓), 맥(貊), 예(濊)의 연합국가 성격인데 종족 연합의 뿌리는 언어의 공통성이었겠다. 그 ‘공통의 언어’를 서양인들이 ‘우랄알타이어’라고 한다는데, 본래의 생성지역은 ‘한강문화권역’이라야 맞다. 단립벼 재배에 성공한 한강 유역의 신석기인들은 약 8천 년 전, 고온다습해진 기후변화와 인구 팽창으로 북위 40도 지역(북경 라인)까지 농경문화가 북상한다. 그 당시 농경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준 하이테크산업이었고, 그래서 고조선은 세계사적 문명국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증좌가 고인돌이다. 구석기에서 신석기, 청동기로 이어지는 근역강산 전역에 고인돌이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엄청나게! 제일 많다는 것은 그 당시 금수강산이 세계적인 인구밀집 지역이었음을 드러내는 확실한 증거이다. 인구가 많아지면서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문명의 싹이 트고, 밝족의 제천사상 즉 천손족(天孫族) 사상의 성립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에 속한다.
최근 단립벼 재배의 최초 시배지가 ‘한강문화권역’임이 탄소측정 등 실증적로 밝혀지면서, 고조선이 한족에게 농경술을 전파한 증거가 동북공정 과정에서 산동, 황하 등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자(신용하, 2018, 《한국민족의 기원과 형성》, 서울대 출판부), 역사 조작을 통하여 패권주의의 도구로 이용하던 ‘동북공정이 누굴 위한 공정’인지, 참 우습게 됐다.
여기에서, 술(酒)은! 농경문화의 꽃이다. 한강문화권역의 선진 농경기법은 청동기, 철기시대의 문명 발달과 문화를 융성하게 한 전제조건이다. 그 증거가 또 남아있다. 한족이 제 손으로 기록한 역사서《삼국지三國志》속에 명백하게 살아 숨 쉰다.
“5월이 되어 씨를 다 뿌리고 나면 귀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이때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시고 놀아 밤낮을 쉬지 않는다. 춤을 출 때에는 여러 십여 명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서로 뒤를 따르면서 땅을 밟고 높이 뛴다. 이 춤추는 모습은 꼭 탁무(鐸舞)와 같다. 시월에 농사일이 끝나면 또 한 번 이렇게 논다.(중략) 고을마다 한 사람을 뽑아 세워서 천신天神 제사 지내는 것을 주장하게 되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고 부른다.”
*《삼국지三國志》의 내용 중,〈동이전東夷傳〉기록 일부발췌,《삼국지三國志》는 진(晉)의 진수(陣壽)가 수집 기록한 삼국시대의 역사책이다. 소설 삼국지와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