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식 시인
만월, 집들이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여자가 느닷없이 집들이 이야기를 꺼낸다
나 꽃집 셋방살이 끝났데이 인자 진짜로 내 집이고 내가 주인인 기라 그동안 열세 살 연초록 나이 때부터 문깐방에 꽃집 체리 놓고 사십여 년 꼬박꼬박 달세 무니라꼬 요통, 하복통으로 고생께나 했다아이가 아마 지금까증 백만 생이도 더 되는 장미꽃, 다발로 갇다 바쳤을 끼다 우짜다 쬐매 늦거나 한 달만 걸러 뛰보래이 좌불안석이 따로 없는 기라 나 이젠 당귀 잉모초도 그만 묵을 끼다 달력 위에 기리 넣던 주기 계산도 생리대도 다 소용 없것제 그래, 빚이면서 빛이었던 내 몸속 달뜬 소용돌이 잠재우고 인자 자유인 기라 그랑께 오늘 이 술은 달품 팔 일 없이 참말로 내가 호령하는 대청마루로 입주한 내 몸의 집들이 아이가 마, 잔이 넘치도록 꾹꾹 눌러 따라 보거래이
꽃의 집이었던, 여자는 향낭을 털어 내고도 다시 만월로 뜨고 있었다
—시집 『휴』(천년의 시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