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台祐의 취중진담
*지금까지 취중진담의 본란은 김원하 발행인이 혼자서 써왔습니다.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기 위해 몇분이 취중진담에 동참 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그 첫 번째로 남태우 교수님의 취중진담을 싣습니다.
醉中眞談의 출처론
라틴어귀에 ‘인 비노 베리타스(in vino veritas)’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와인 속에 진실이 있다’는 뜻으로 우리말로 하면 ‘취중진담(醉中眞談)’에 해당된다. 이 말의 출처를 라틴 속담이라거나 등등 다양한 의견들이 분분하다.
고대 그리스의 서정 시인이며 알코올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던 그리스어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알카이오스(Alcaeus, BC. 630~580)가 기원전 600년대에 남긴 명언이라는 설이 가장 우위에 있으며, 역사학자 헤로도토스(Herodotus, Histories, book 1, section 133)는 페르시아 인들이 취중에 결정한 것을 그들은 술 취하지 않은 맨 정신으로 재고하면서 규칙을 만들었다는 그럴듯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1세기에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Cornelius Tacitus, AD 55~120)는 게르만족은 술을 마시면 효과적으로 거짓말을 아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믿기에 회의를 할 때 항상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하였다. 이 관용구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와인에는 진실이 있지만, 물에는 건강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관용구들이 문화와 언어를 넘어 존재한다.
플라톤이 <심포지움>(217e)에서 왜 “아이들과 함께 든 포도주는 진실”이라고 말했는지를 곰곰이 새겨볼만하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듯이 결코 알코올도 거짓을 말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는 ‘취중진담’에 해당된다.
구약성서의 <잠언(箴言, Liber Proverbiorum)>이 이 명언의 출처라는 설도 있지만, 이는 존재하지 않는 구전에 불과하다. 어떤 이는 1세기경 플리니우스(Plinius)의 <박물지
(Histoires naturelles)>에서 언급되었다거나, 한 세기가 훨씬 지난 뒤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자 에라스무스(Erasmus)는 <Adagia, I.vii.17>에서도 ‘in vino veritas’라고 하였다는 등 그 출처 이야기가 다양하다. 에라스무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무도 당신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더라도, 다음 셋은 예외다. 어린아이, 술 취한 사람, 그리고 미친 사람”이라고 하였다.
‘인 비노 베리타스’는 후세에 다음과 같이 확장 전개되고 있다. 라틴어로 된 술의 명언으로는 세네카는 ‘마시자, 언젠간 죽을 것이기 때문에(Bibamus, moriendum est)’, ‘나는 마신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Bibo Ergo Sum)’가 있다. 독일의 시인이자 동양어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뤼케르트(Friedrich Rückert, 1788~1866)는 “와인에는 진실이 있다. 즉, 오늘날 진실을 말하고 싶다면 취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알코올의 도움 없이 진실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경우를 꼬집었다.
칸트 철학을 계승한 독일 관념론의 대성자인 헤겔(Friedrich Hegel, 1770-1831)도 “와인에는 진실이 있다…사람은 어디에서나 진실과 건배한다.”고 했다. 또한 종교학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와인은 강하다. 왕은 더 강하고 여자는 더욱 더 강하다. 그러나 가장 강한 것은 진실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또 “와인, 여자 그리고 노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평생 바보로 남는다.”라고도 와인을 예찬하였다.
영국 속담에 “술은 진심을 나타내고, 거울은 모습을 나타낸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에우리피데스의 알코올 인식과 같다. 셰익스피어는 ‘좋은 술 한 잔이면 명예 같은 건 버려도 괜찮다’고 극단적으로 말한 애주가였다.
이처럼 출처가 다양함은 알코올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했고, 사회 속에서 알코올 기능의 중요함을 의미한다. 취함은 거짓에서 벗어나 진실 되게 살고픈 영혼의 고뇌에서 시작된다. 취하지 않고 진실을 말한 자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취한다는 것은 취함을 즐기자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취함에 의탁하여 가슴깊이 간직한 내면과 영혼 속에 숨겨둔 정신을 말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인 비노 베리타스’ 자체도 타락시키고 있으니 디오게네스가 새삼스럽게 그리워지기도 한다.
알코올은 이성에서 만들어지고, 감성을 붇돋는 음료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불타는 물(It’s burning waters)’이라는 것이다. ‘물은 이성’을 대변하고, ‘불은 감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성과 감성을 과학적 잣대로 재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명정상태에서는 로고스가 술술 거짓 없이 술술 풀려난다.
남태우 교수:중앙대학교(교수)▸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헌정보학과 박사▸2011.07~2013.07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2009.07 한국도서관협회 부회장▸2007.06~2009.06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2004.01~2006.12 한국정보관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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