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 데스크칼럼
‘흉보면서 닮는다’는 말만은 하지 마라
어느 케이블 TV에 출연해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C여사는 절대로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는 시키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지내온 삶을 풀어 낼 때 시집살이를 비롯하여, 남편살이까지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할 때 옆 좌석에 앉은 남편(前 유명 아나운서)은 빵점 남편으로 취급되기 십상이었다. C 여사가 시청자들로부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지고지순(至高至純) 한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C여사가 며느리와 함께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 며느리가 C 여사에게 당한 시집살이를 토해 내는 순간 출연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장면을 보면서 어쩌면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며느리 역시 현대판 시집살이를 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이야기다. 같은 반에 소아마비를 않은 후유증으로 다리를 저는 급우가 있었다. 한 친구가 그를 놀릴 양으로 그 역시 다리를 저는 모습을 자주 했었다. 어느 순간 그 학생은 소아마비를 앓지도 않고 다리를 절며 다녔다.
아들은 아버지 등 뒤를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멋있어 보여 따라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 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있음을 발견되게 된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모습이 진짜 싫어서 어른이 되더라도 절대로 술을 먹지 않겠다던 다짐을 하던 아들이 어느 순간 술주정을 하는 자신을 보고는 어쨌을까?
호치케스는 물론 클립도 흔하지 않던 시절, 서류나 원고지를 정리할 때는 주로 핀을 사용했다. 핀 하나는 값으로 따질 수도 없는 물건이다. 필자가 초짜 기자 시절 당시 그 신문사 사장은 가끔 편집국에 들렀다가 책상 밑에 떨어진 핀을 주어서 책상위에 올려놓곤 했었다.
참으로 쩨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 필자는 길을 가다가도 클립이 떨어져 있으면 무슨 보물이라도 발견 한듯 클립을 줍는다. 그러면서 그 때의 사장님 얼굴을 떠올린다.
흉보면서 닮는다는 말이 남 말이 아니라는 것이 실감 하는 순간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울화가 치민다. 촛불 수십만 개를 켜고 등장한 정부이니만큼 과거 정부와는 딴판으로 밝고 환한 일들이 가득찰 것이란 기대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기본 말고도 신성시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정갈한 장독대에서 자식을 위해 또는 가정을 위해 어머니가 치성을 들릴 때 정안수 떠 놓고 켰던 것이 촛불이다.
따라서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정부라고 자처하는 정부는 그에 걸맞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현 정부를 탄생시킨 국민의 뜻이다.
정부는 국민을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해줄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국민들은 갈수록 어렵다고 야단들이다. 장사가 되지 않아 문을 닫는 식당들이 속출한다. 젊은이들은 번듯한 직장은 고사하고 아르바이트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져 나와도 두고 보면 경기가 곧 좋아질 것이란 말만 쏟아내는 당국자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하기야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또박또박 월급이 나오니 경제적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 정치판 핵심 키워드는 당연 ‘환경부 블랙리스트’다. 처음에는 모르쇠로 일괄하던 청와대가 지난 20일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논란과 관련해 “과거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이번 환경부 사례는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민들이 보기엔 그게 그게 아니냐는 의구심만 키운 입장문 같다.
이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만 해도 “文정부 유전자엔 사찰 DNA 없다”고 즉각 반박했던 것이 “할 말 없다”에서 “과거 정부와는 다르다”는 말로 격상(?)하고 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터지면서 한 때 유행하던 말 가운데 ‘조족지혈(鳥足之血)이란 말이 생각난다. 한 마디로 새 발의 피는 피가 아니냐는 것이다.
논어 제 15장 위령공편에 ‘子曰 君子 求諸己요 小人 求諸人이니라.’는 말이 있다. 소인(小人)은 탓을 남에게 던지고, 대인(大人)은 탓을 자기 안에서 찾는다는 말이다.
1990년대 김수환 추기경이 승용차 뒷유리에 ‘내 탓이오’ 스티커를 붙이면서 “자기를 먼저 돌아볼 때”라고 하신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공직자 자동차에 ‘모든 것이 내 탓이오’란 스티커를 붙이자는 캠페인을 벌인다면 어떨까. 한 번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교통정보신문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