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 朱蒙
권녕하(시인, 문화평론가 <한강문학> 발행인)
주몽은 고구려의 시조(始祖)다. 주몽이 활을 얼마나 잘 쏘았는지, 주몽이 부여에 있었을 때 ‘활 잘 쏘는 사람’ 하면 ‘주몽’으로 통했다. 부여에서는 본래 활 잘 쏘는 사람을 ‘활량’(善射)이라 했는데, 언제부턴가 ‘활량’이란 말보다 ‘주몽’이란 말이 더 잘 통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활을 얼마나 잘 쏘았으면 ‘주몽’이란 말이, 한 시대의 유행어가 되어버렸을까. 그럴 정도로 주몽의 인물이 비범했나보다. 결국은 부여에서 나와 새로운 나라 고구려를 세운다.
주몽이 태어난 부여의 건국설화는, 기원전 3년 4월에 해모수(解慕潄)는 천제(天帝)의 아들로서 부여왕의 고도(古都)에 내려왔다. 그는 까마귀 털로 만든 모자를 쓰고 웅심산(熊心山, Koma Tal) 아래로 내려와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이 때 성의 북쪽에 있는 청하(靑河) 강변에 하백(河伯)의 딸 삼형제가 있었는데, 큰딸이 유화(柳花)요, 둘째딸이 훤화(萱花)요, 막내는 위화(葦花)였다.
해모수는 하백의 세 딸 중에서 유화와 사통(私通)하여 주몽을 서자로 얻는다. 그렇게 태어난 주몽은 활 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키도 훤칠하게 큰데다가 용모까지 수려하여 왕의 일곱 태자들로부터 시기를 받고 자라난다. 마침내 일곱 태자들이 주몽을 살해할 음모를 꾸미자 주몽은 어머니 유화(柳花)와 부인 예씨(禮氏)에게 은밀히 작별을 고한 다음 말을 타고 도망친다. 걸승골성(城)이란 곳에 이르러 새 나라를 세울 터전으로 삼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였다.《삼국사기》〈권제13, 고구려본기 제1〉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 조(條)에 보면,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곧 동명성왕이고 성은 고(高)씨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주몽이 활을 잘 쐈고, 활을 잘 쏴서 이름이 주몽이고, 활 잘 쏘는 사람을 부여에서는 주몽이라고도 하고 활량이라고도 한다’고 한족(漢族)들이 남긴 기록을 김부식이 옮겨 적었다.
그러면, 활량이라고 하지 왜 이름이 주몽이 됐을까. 아기의 이름은 부모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상례이다. 아기 즉 주몽의 부모(해모수와 유화)는 왜? 아기에게 ‘붉다는 뜻의 주(朱)자와 덮어썼다는 뜻의 몽(蒙)자’로 이름을 지어줬을까. 혹여 아기로 태어난 주몽의 피부색깔이 매우 특이하게 붉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추론은 활을 잘 쏜 것은 성장하면서 부터이지 태어나자마자 강보에서 벌떡 일어나 활을 잘 쏠리는 없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학을 전공한 학자들은 ‘주몽’이라는 발음에서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고(연구해서 찾아냈다고) 견강부회(牽强附會) 하고, 논문으로 인쇄해서 학위까지 받고 그랬다.
우리 민족의 고대사는, 우리 민족 스스로 기록한 사서들은 거의 전부 다 이름만 남고, 유실, 훼손되고 없다. 다만, 한족(漢族)들이 한자(漢字)로 우리 민족을 기록한 단편적인 기사가 조금 전해 올 뿐인데, 우리 민족과 한족들과의 관계를 그들이 아리송하게 비틀어 놨다.
한족들에게 우리 민족은 한 때 선진국(1만 3천 년 전), 또는 이웃나라(고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때로는 적대관계(고구려, 백제, 신라)로 변하곤 했다. 따라서 그들은 풍문으로 듣거나 전투 중 수집한 정보였거나 자국에 불리하거나 하면, 여지없이 깎아내리거나 폄훼하거나 했다. 그들이 주변국들을 몽땅 오랑캐(夷) 라고, 얕보고 깔아뭉갤 심산으로, 미개 민족 취급하며 쓴 ‘이(夷)’ 자를, 우리 조상들 특히 모화사상(慕華思想)에 푹 쩔은, 한자(漢字) 몇 자 좀 안다고 거들먹거리던 학자들이, 딱하게도 활 잘 쏘는 ‘동이족’이라고 했다며, ‘욕 처먹고도 고맙다’고 자찬하고 있다. 김부식도 오십보백보 그들의 기록을 무비판적으로 옮기거나 무단복사하거나 한 것에 불과하다.
그 당시에도 주몽(朱蒙)이란 글자에서 보았듯이, 고대의 우리말을 음과 뜻을 한자의 발음과 뜻을 차용하여, 최대한 엇비슷하게 기록한 것이었듯이, 동명성왕(東明聖王) 또한 우리말을 한자로 최대한 가깝게 기록한 것인데, 언어학자들은 동(東)을 쇠(鐵), 신(新) 등으로 명(明)을 하얀(백), 붉은(赤), 불타는(赫), 해(太陽) 등으로 풀이한다. 그런데 뜻은 한자로 그렇게 옮겼다 치자. 말은 우리말로 해야 하는데, 그래야 말도 되고 남들과 대화도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말로, ‘동명성왕’을 우리 고대의 토박이말로 읽으니까 “시뻘건”(권녕하 주장)이 된다. 기가 막히게도! 주몽과 말과 뜻이 꽤나 닮았다.
오늘날, 개똥같은 경우를 당하며 이 세상을 살 때마다, 주몽(朱蒙)! 하고 입술을 움직여보자. 그러면 영락없이 술에 취한 얼굴이 떠오르거나, 붉은 옷을 덮어 쓰듯 몸에 걸친 사람이 연상되곤 한다. 오늘도 내일도 저녁이면 저녁마다, 말이란 게 본래 이렇게 번지는 것이다. 어째 술이 술술 넘어갈 것 같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