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만 취하면 폭력 휘두르는 남편…술 탓일까?
폭력 수위에 가려져 음주문제 간과하기 쉬워
음주와 가정폭력 상관관계 有…예방대책 필요
최근 유승현 전 김포시의회 의장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말다툼을 하다 아내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가정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음주가 가정폭력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인 만큼 가정폭력 예방을 위해선 음주문제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이무형 원장은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중추신경계의 통제 기능을 억제시켜 평소 잘 조절되던 여러 욕구가 다양하게 분출돼 감성적,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높아진다”며 “욕구가 부정적으로 나타나게 될 경우 말다툼이나 몸싸움, 심하면 살인과 같은 비극적인 범죄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데 이 때 바로 곁에 있는 가족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얼마 전에는 60대 남성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아들과 결혼문제를 놓고 다투다 흉기로 아들을 찌른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월에는 만취한 50대 남성이 부인과 두 자녀 앞에서 가구를 집어던지는 등 난동을 부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흉기를 휘둘러 테이저건을 맞고 제압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최근 발표된 국내 한 연구에 따르면 음주상태에서 발생한 단순폭력 범죄율이 61.5%인데 비해 가정폭력은 73.1%로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타났다. 이외에도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음주와 가정폭력이 상관관계가 높다는 사실이 입증된 바 있다.
이무형 원장은 “가정폭력은 폭행의 수위와 강도에 가려져 가해자의 술 문제를 간과하기 쉽다”며 “가족들이 가해자가 술만 안 마시면 괜찮은 사람이라며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을 술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오히려 문제를 키울 뿐 해결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과도한 음주를 지속할수록 이성적 사고와 판단,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 기능이 손상돼 나중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진다는 점이다. 이 원장은 “가해자가 알코올 중독 상태라면 전두엽 기능 자체가 정상인보다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술을 마실 경우 통제가 더 어려워 자·타해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가정폭력은 가족들이 신고를 꺼려 문제를 숨기고 가족 안에서 해결하려하거나 신고를 하더라도 집안 문제로 치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 작년 11월 정부는 ‘가정폭력 방지 대책’을 발표해 경찰이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해 현행범을 즉시 체포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올 3월엔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정폭력 가해자를 처벌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 원장은 “가정폭력은 상습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는데다 무조건적인 처벌 강화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만큼 예방법을 찾아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가정폭력 가해자의 문제 음주 여부를 진단, 선별하고 전문적인 알코올 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 적극적인 치료적 개입이 이뤄질 수 있는 법적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 원장은 “음주문제는 가정을 파괴하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폭력이나 살인과 같은 사회적 차원의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음주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한다”며 “평소 술에 취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가족이 있다면 숨기기보단 주변에 알려 도움을 받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