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에 따른 맛과 향기를 구현하되 일순에 익히는 ‘십일 주(十日酒)’

溫故知新

박록담의 복원전통주 스토리텔링/60번째

용도에 따른 맛과 향기를 구현하되 일순에 익히는 ‘십일 주(十日酒)’

 

해가 바뀌는 시각에 앉아 ‘십일 주(十日酒)’를 빚어 놓고 집에 돌아와 손발을 씻다 보니, 다시 술을 빚으면서 느끼고 겪었던 모든 감각들이 살아 꿈틀거린다. 그 생동감을 잊지 않기 위해 ‘십일 주(十日酒)’에 대한 특징과 술 빚는 법에 대한 해설을 작성하고 있다.

사라지고 잊혀진 우리 전통주를 복원하면서 깨달았던 경험이 지금처럼 살아있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은데, 이때는 그 기억들을 글로 옮겨 쓰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십일 주(十日酒)’는 <需雲雜方>과 <술 만드는 법>에 수록된 주품으로 속성주(速成酒)에 속한다, 속성 주는 ‘준 순주(浚巡酒)’라고도 하는데, 10일 이내에 발효를 끝내서 채주나 음용이 가능한 술에 해당된다.

2000년도까지만 해도 우리 술의 속성 주에는 ‘일야주(一夜酒)’를 비롯하여 ‘일일주(一日酒)’, ‘삼일주(三日酒)’, ‘칠일주(七日酒)’, ‘구일주(九日酒)’가 있으며, ‘계명주(鷄鳴酒)’와 ‘벼락술’도 속성 주에 포함된다고 해왔다.

그리고 이들 속성주의 특징은 한결 같이 홀수 날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수선호사상(基數選好思想)이 양주(釀酒) 분야로 까지 파고든 것으로 이해해 왔었다. 그러다가 <需雲雜方>과 <술 만드는 법>에 수록된 ‘십일 주(十日酒)’와 <酒饌>의 ‘육일주(六日酒)’, 그리고 최근에 발굴된 <山家要錄>에 수록된 ‘사두주(四斗酒)’와 ‘육두주(六斗酒)’, <홍씨 주방문>의 ‘사월주’를 목격하면서 혼돈이 생겼다.

필자의 생각이 잘못된 것으로, 주품명과 기수선호사상은 별개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필자가 고문헌을 바탕으로 조사한 바로는 ‘일일주’ 32회를 비롯하여 ‘삼일주’ 45회, ‘칠일주’ 27회, ‘삼해주’ 50회 등 홀수 단위의 주품명은 등장하는 횟수도 많고 수 없이 다양한 반면, 짝수 단위의 주품명은 총 6종으로, ‘육일주’ 1회, ‘육두주’ 2회, ‘십일 주’ 2회, ‘사월주’ 1회, ‘사미주’ 1회, ‘육병주’ 2회에 그친다는 점에서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어떻든 ‘십일 주(十日酒)’는 “10일(一旬) 만에 술을 익힌다.”는 뜻에서 유래한 주품으로, <需雲雜方>과 <술 만드는 법>의 주방문이 주원료의 배합비율 등에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문헌의 주방문 가운데 ‘십일 주(十日酒)’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 밑술의 쌀 양보다 덧술의 쌀 양이 20%에 그친 경우가 있는 반면, 밑술과 덧술의 쌀 양이 동량인 경우도 있어, 주방문의 공통점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술 빚는 물도 쌀 양과 동량에 가깝거나 오히려 쌀 양보다 적게 사용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또한 <需雲雜方>에서는 밑술과 덧술에서 두 차례에 걸쳐 누룩을 사용되는 것과는 달리 <술 만드는 법>에서는 밑술에서만 누룩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가지 주품 명에서 이렇듯 현저하게 다른 주방문을 목격하기란 유일하다고 할 정도로 드문데,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두 문헌의 ‘십일 주(十日酒)’ 주방문에서 찾을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덧술의 발효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십일 주(十日酒)’는 이양주(二釀酒)인 까닭에 10일이라는 기간은 결코 길다고 할 수 없으므로, 덧술의 발효기간을 최대한 짧게 끝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발효를 빨리 끝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덧술의 쌀을 밑술보다 적게 사용하는 방법과 물의 양을 많이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누룩을 두 차례 사용하는 방법, 덧술에 사용되는 쌀의 호화 도를 높게 가져가는 방법이 있는데, <需雲雜方>의 ‘십일 주(十日酒)’가 이 조건들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반면, <술 만드는 법>의 ‘십일 주(十日酒)’는 <需雲雜方>과는 상반된 개념의 주방문이다. 또한 <需雲雜方>의 ‘십일 주(十日酒)’는 발효기간이 각각 5일인데 반하여 <술 만드는 법>은 각각 3일과 7일이라는 사실도 두 주방문의 차이를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어떻든 두 문헌의 ‘십일 주(十日酒)’에서 엿볼 수 있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십일 주(十日酒)’의 주질은 밑술에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특히 단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멥쌀술의 맛은 거칠 수밖에 없으므로, 멥쌀술의 단점인 거친 맛을 줄이는 한편, 감칠맛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밑술과는 달리, 덧술에서는 찹쌀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십일 주(十日酒)’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은, 술을 빚는 사람은 자신의 목적, 용도에 따른 맛과 향기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需雲雜方>과 <술 만드는 법>의 ‘십일 주(十日酒)’ 주방문에서 새롭게 배우게 된 우리 술 빚는 법이다.

◈ 十日酒 <需雲雜方>

◇주 원료 ▴밑술:멥쌀 1말, 좋은 누룩 2되, 병하수(시루 밑 물 적당량)

▴덧술:찹쌀(멥쌀) 2되, 누룩 1되, 정화수 2동이

▴밑술 ①멥쌀 1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 건져서) 작말한다(가루로 빻는다). ②쌀가루를 체에 한번 내린 후, 시루에 안쳐서 설기떡을 찐다. ③설기떡이 익었으면 (넓은 그릇에) 퍼내고 병하수(시루밑물)를 적당량 섞어 덩어리가 없게 풀고, 죽처럼 만들어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④떡에 좋은 누룩 2되를 섞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⑤술독에 술밑을 담가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봉하여 서늘한 곳에 두고 5일간 발효시킨다.

▴덧술 ①찹쌀(멥쌀) 2되를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치고 무른 고두밥을 짓는다. ②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차게 식은 고두밥에 누룩 1되를 섞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정화수 2동이를 길어다 1동이가 되도록 오래 팔팔 끓여서 차게 식힌 후 밑술을 걸러 탁주를 만들어 놓는다. ⑤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친 후, 거른 밑술을 붓고 고루 저어준 뒤, 예의 방법대로 봉하여 따뜻한 곳에 5일간 발효시켰다가 채주한다.

▴주방문에 “5일 후 술독이 덥지 않도록 한다. 술독이 너무 더워지면 술독을 찬물에 담가 두고, 여러 차례 물을 갈아주어 뜨거운 기가 없게 식혀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十日酒>白米一斗百洗作末熟蒸以甑下水適中和均待冷好麴二升和合納甕封置涼處待五日井花水二盆煎至一盆出前酒以此水添漉爲甁白米粘米中二升百洗作爛飯待冷麴一升和納甕次注漉酒封口又置溫處待五日用之若極熱時則酒甕沈水數數改水愼勿令觸熱.

◈십일 주 <술 만드는 법>

◇주 원료▴밑술:멥쌀 1되, 누룩가루 2되, 물 10식기

▴덧술:찹쌀 1말

▴밑술 ①멥쌀 1되를 백세 하여(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빼서) 작말한다(가루로 빻는다). ②쌀가루에 물 10식기를 넉넉히 붓고, (멍울 없이 풀어서) 팔팔 끓여 죽을 쑤고, 소라에 퍼서 놓는다(죽이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죽에 누룩가루 2되를 섞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3일간 발효시킨다.

▴덧술 ①찹쌀 1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서 물기를 뺀 뒤) 시루에 안치고, 쪄서 고두밥을 짓는다. ②고두밥에서 한김 나면 (찬물을 흠씬 뿌려서 무르게 찌고), 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낸다(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고두밥은 군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여 밑술과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친 다음, 예의 방법대로 하여 7일간 발효시킨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이루어진 양주법 ‘내주’

‘내주 방문’은 <金承旨宅廚方文>의 기록에서 처음 목격된다. <金承旨宅廚方文>의 주방문 외에 다른 어떤 문헌에서도 ‘내주’ 라는 주품명과 주방문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내주’가 ‘김승지댁’의 가양주라는 사실을 반영하는 증거이다.

우리나라 전통주는 역사 이래 집에서 빚는 술인 ‘가양주(家釀酒)’에 기반을 두고 전승 발전하여 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金承旨宅廚方文>에는 총 23종의 가양주 주방문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살펴 볼 수 있는데, 다른 전통주 관련 문헌에는 없는 주품이 더러 목격된다. 예를 들면, ‘내주방문’을 비롯하여 ‘사철소주 주방문’, ‘백환주법’, ‘녹자주방문’, ‘삼월주법’, ‘치황주법’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같은 문헌에서 어떤 주품들은 ‘법(法)’이라 하고, 또 어떤 주품에 대하여는 ‘방문(方文)’으로 표기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다른 문헌에 비하여 다소 생경한 주품의 수록 비율이 다소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金承旨宅廚方文>의 ‘내주 방문’을 보면, 이 주품이 한겨울에 밑술을 빚기 시작하여 꽃이 피기 시작하는 3월에 덧술을 하고, 5월 단오 무렵인 초여름에 마시는, 장기 발효주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방문에서도 언급하였듯, ‘내주방문’의 술빚기에 따른 발효시간을 계산하여 보면, 얼추 4개월 이상의 장기간 발효시키는 술이라는 점에서 다른 어떤 술보다 온도관리가 매우 까다로울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金承旨宅廚方文>의 ‘내주방문’과 같이 120일에 달하는 장기발효주는 다른 문헌의 주방문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경우로서, ‘내주’가 일반화되지 못한 채, 김승지댁의 가양주로 전승되는 것으로 그친 이유가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먼저, 무엇보다 ‘내주’를 빚는데 따른 어려움은 밑술을 죽 형태로 하여 빚고, 최소 40일 이상의 발효기간을 거친 후에 덧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밑술의 주원료가 찹쌀이라는 점에서 40여일의 발효를 유지하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주방문에는 밑술에 사용되는 양조용수의 양이 언급되어 있지 않아 확신할 수 없지만, 밑술 발효기간 40여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밑술의 찹쌀 죽을 가능한 된죽 상태로 만들어야 할 것이고, 누룩의 양은 최소 단위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할 수 있다.

결국, 밑술에 사용되는 양조용수의 양은 된죽을 쑤기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의 1말~2말 범위로 산정하였다. 이렇게 되면 밑술의 발효가 더뎌지는 장점은 있으나, 저온 발효에 따른 오염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게 되는데, 그 방안으로 밀가루 1되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어, ‘내주’ 주방문이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밑술의 성패가 덧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만큼, 밑술의 온도관리에 유의해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음력 정월 초순이면 매우 추울 때이므로 주재료인 찹쌀 죽은 매우 차디차게 식힐 수 있을 것이고, 오염원의 활동도 걱정스러울 정도는 아니므로, 술독을 땅에 묻거나 가능한 찬 곳에 두도록 하여, 발효가 더디 진행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3월이 되면 날씨가 풀려 따뜻해지기 시작할 때이므로, 밑술은 차가운 상태에서 덧술 작업이 이뤄져야 좋다.

다만, 덧술의 고두밥 또한 가능한 된 고두밥이 되도록 쪄서 차디차게 식혀서 사용한다. 덧술을 안친 술독 역시 밑술에서와 같은 장소에 두어서 발효가 서서히 진행되도록 관리한다면, 5월이 되어서도 산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주’의 맛은 매우 ‘칼칼하다’고 싶을 정도로 깔끔한 맛과 시원한 청량미를 간직하고, 특히 그 빛깔이 매우 맑고 깨끗하다. 가끔 밀가루 양이 많아 맛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으므로, 날씨가 추울 때면 그 양을 조금 줄여서 넣는 것도 좋을 듯하다.

◈ 내주방문 <金承旨宅 廚方文>

◇주 원료▴밑술:찹쌀 1말, 가루누룩 2되, 밀가루 1되, 물 (1~2말)

▴덧술:멥쌀 3말

▴밑술 ①음력 정월 초순경에 찹쌀 1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후) 가루로 빻는다. ②물 (2말)을 솥에 끓인다(뜨거워지면 쌀가루에 1말을 퍼서 넣고 개어 아이 죽을 쑨다). ③솥의 나머지 물이 팔팔 끓으면 (아이 죽을 넣고) 팔팔 끓여 죽을 쑨 후,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④죽에 가루누룩 2되와 밀가루 1되를 섞고, 고루 버무려 밑술을 만든다. ⑤술독에 밑술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서늘한 곳에서) 3월까지 발효시킨다.

▴덧술 ①3월이 되어 복숭아꽃이 필 때, 멥쌀 3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쳐 고두밥을 짓는다). ②(고두밥이 익었으면 시루에서 퍼내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고두밥에) 밑술을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새 술독에 술덧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서늘한 곳에서 발효시켜) 5월 5일(단오절)에 채주하여 마신다.

▴밑술에 사용되는 물의 양이 언급되어 있지 않고, 덧술의 멥쌀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한 언급도 없어, 상법(常法)대로 하여 주방문을 작성하였다. 추울 때 빚는 술로, 발효온도를 낮게 하기 때문에 발효기간이 길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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