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는 와인, “와인은 술이 아니고 사랑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와인시장 개척해온 한관규 원장
30년 와인에 대한 열정으로 후학들 양성하고 이끌어
88올림픽이 개최되기 전 소주를 국민주(國民酒)로 알고 지내던 시절, 와인은 부자들이나 특별한 사람들이 마시는 술이거니 여겼다. 그 것도 호텔 같은 고급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썰어가며 마셔야 되는 것으로 알았던 와인이 이제 대중화 바람을 타고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와인이 어떤 술인지 잘 모르던 30여 년 전 와인 불모지를 개척해온 이가 본지에 와인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는 한관규 원장(61, 와인마케팅경영연구원)이다. 현재 한관규 원장은 국내 프랑스 와인분야의 대부다. 와인마케팅경영연구원에서 만난 한 원장에게 현답((賢答)을 기대하며 우문(愚問)을 던졌다.
-와인은 무엇입니까?
“와인은 사랑입니다”
헐!~. 와인이 술이 아니라니… 그리고 사랑이라니….
“와인은 서양에서 시작된 음료입니다. 그들이 주식인 빵과 함께 마시는 음료가 와인인데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와인을 마시면 더욱 즐겁고 행복하여 사랑스러워 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와인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사랑을 마신다는 것이네…!
한 원장은 “와인관련 업무를 하면서 work(일)한다고 하지 않고 mission(사명)을 수행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 만큼 와인을 사랑하고 와인 분야가 천직이라는 사명감으로 항상 임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 원장이 와인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그의 직장과 무관치 않다. 중앙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서강대에서 MBA 석사를 한 배경으로 1989년 주한 프랑스대사관 경제상무관실에 들어가게 된다. 담당했던 업무가 와인이었다고 했다. 프랑스는 와인 생산, 판매에서 세계에서 첫손을 꼽는 나라다. 때문에 한 원장은 업무적으로 프랑스 와인 생산자가 한국에 오면 와인 수입업자와 연결시키고, 와인 세미나와 시음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때문에 프랑스 와인 생산지에 출장도 자주 가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와인을 마셔보는 특혜(?)도 누렸다. 자연스럽게 와인에 빠져들다 보니 와인에 대한 전문지식이 더욱 필요했다. 그래서 프랑스 보르도 와인 학교 전문가 과정도 졸업하게 되었고, “보르도 와인” 책과 “와인학 원론”도 집필했다.
한 원장은 해가 갈수록 와인 사랑이 깊어갔다.
“와인 참 좋은 음료인데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이해하고, 마시도록 할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사직하고 지금의 와인마케팅경연구원을 설립한 동기라고 한다. 시작한지 9여 년 동안 연구원에 진행하는 와인과정에 참가하여 공부한 와인 애호가만 대략 400여명에 달한다고 했다. 개중에는 와인이 좋아서 공부를 한 사람도 있지만 와인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도 상당수에 이른다.
-어떤 와인이 좋은 와인입니까?
“좋은 와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가격과 품질이 정비례하지만, 비싸다고 꼭 좋은 와인은 아닙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와인이 가장 좋은 와인 아니겠어요?
-그 많은 와인 가운데 자기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기란 어려운 일 아닌가요?
“많은 와인을 마셔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그렇다고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았다고 해서 줄곧 그 와인만 마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마시다 보면 자연스레 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와인을 마시면 건강에 좋고, 오래된 와인이 무조건 좋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맞는 말인가요?
“둘 다 틀린 말입니다. 와인은 약이 아닙니다. 와인 역시 건강한 사람이 마셔야죠, 와인은 평균 13~14%의 알코올이 있는데 환자가 와인을 마시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리고 와인도 종류에 따라 수명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년 정도의 수명을 지닌 와인의 경우 가장 맛이 좋을 때는 수명의 절반 정도인 5년 정도에 도달했을 때입니다. 따라서 이 수명이 다할 때는 맛이 떨어져 마실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오래된 와인이 좋다는 속설은 일부 와인의 이야기이며, 100년이 된 와인이 있다면 마시는 목적이 아니라 수집가의 수장 품으로 가치가 있다는 볼 수 있습니다.”
한 원장은 맛있게 마시는 방법을 알고 마시면 와인의 풍미를 더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선물로 받았건 마트에서 구입했건 와인을 바로 마시지 않는 한 잘 보관해야 한다. 와인 애호가들은 대게 와인셀러가 있어 보관의 어려움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온도의 변화가 없는 서늘한 곳(물론 햇빛이나 전등불빛도 차단)에 보관한다. 화이트 와인은 8~11℃ 정도로 차갑게 해서 마시고, 레드 와인의 경우 13~15℃가 적당하다. 와인을 따랐을 때 와인 잔에 거품이 생기는 것은 와인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으로 거품이 사라진 후 마시면 더욱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음식과 함께 와인을 마실 때는 국이나 찌개처럼 국물이 있는 안주는 피하는 게 좋다. 색상과 향이 강하면 강한 와인을, 연하면 화이트 와인이 제격이다. 그래서 고기 요리에는 레드와인을, 생선이나 샐러드에는 화이트 와인이 궁합이 잘 맞는다. 특히 와인을 마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어디서 무엇과 함께 먹으며 마시느냐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와인은 술이 아니라 음식이기 때문이다.
최근 혼밥, 혼술이 유행하고 여성의 음주인구가 증가하면서 와인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2017년 대비 지난 해 와인 수입액이 16.2%나 증가한 것만 보아도 국내 와인인구의 증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 원장은 상당히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와인은 고도주가 아니어서 취해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거의 없고, 함께 마시는 사람들과 즐거움이 커지기 때문”이라는 것. 국내 와인 시장의 미래는 청신호다. 과거에는 와인 가격이 비싸서 애호가나 경제력이 튼튼한 40-50대가 주로 와인을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마셨는데 최근에는 20-30대로 연령층이 내려왔고, 여성 애호가들도 급증하고 집에서도 마시는 추세다.
한 원장이 운영하는 ‘와인마케팅경영연구원’에서는 보르도 및 부르고뉴 와인과정을 통해 창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애호가들에게 심도 있는 강의로 인기를 구사하고 있다. 또한 외국의 와인 수출업체를 한국 업체에 연결, 테마있는 와인 시음회 개최 또는 프랑스 유명 와이너리 방문단 모집도 중요한 업무지만 와인의 핵심인 ‘전통(Traditional)과 정통(Professional)’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아직 국내에는 와인에 대한 철학이나 예술성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가가 없어 한 원장이 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와인은 사랑뿐 아니라 철학이 있고, 아름다운 예술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