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醉中眞談>
“三禁 빼면 무슨 맛으로 술 마시냐고요”
요즘 주 52시간제 때문에 술자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국민 건강에는 좋은 뉴스가 될지 모르지만 주류업계는 막대한 타격을 입는 모양이다. 소주 맥주는 평균 20%정도 판매가 감소되었고, 전통주업계는 이 보다 더 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교통질서가 그 나라의 교통문화를 잴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한다면 주류판매가 경기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주류판매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 주 52시간제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술이 덜 판매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술이 덜 판매된다고 해서 국민들의 건강이 좋아질 것이란 등식이 성립 된다는 것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최근 어쩌다 술자리를 갖게 되어도 신바람난 이야기는 안 나온다. 한 친구가 말문을 열었다. “다들 알지 술자리에선 정치, 종교,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것 말이야” 뜬금없이 저 친구가 왜 저런 말을 할까 싶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친구가 다시 말문을 연다. “야! 그나저나 다음엔 누가 대통령이 될까?”
역설적으로 그 친구가 정치 이야기를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싶다.
술집에서 잠시만 옆 테이블에서 나누고 있는 대화에 귀 기우려보자. 그들의 대화는 어떤 내용들인가. 거의가 술자리에서 하지 말라는 삼금(三禁)이다. 그 가운데 첫 손꼽히는 것은 당연 정치 이야기다.
지금 현진건(玄鎭健)이 일제강점기에 살던 <술 권하는 사회>도 아니련만 정치야기에 몰두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원래 술자리에선 삼락(三樂)을 즐기라고 했다. 술과 안주 맛을 즐기고, 대화를 즐기며, 운치(분위기)를 즐기라고 한 것은 이런 유의 대화로는 핏대 세우며 싸울 일도 없고, 소주병 들고 상대방 머리 내리칠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 이야기를 하다보면 대통령이 일을 잘 하느니 못하느니 하다보면 언성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종교 이야기도 매한가지다. 예수를 믿던 부처를 믿던 아님 자기 자신을 믿던 자신의 주장을 펴다보면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신념이 있어야 종교를 믿는 것과 무관치 않다.
또 술 한 잔 제대로 사지 않는 친구가 만날 때마다 돈 자랑이나 늘어놔 보라 그 꼴을 어찌 볼 수 있는가. 내 아이는 대학에 떨어져서 재수를 하고 있는데 자기 자식은 공부를 잘해서 수석으로 입학했다는 자식 자랑 소리도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는 세 가지 즉, 정치·종교·돈 자랑(자식 자랑 포함)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보담 더 화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잘 난체 하는 것. 항상 상대방 보다 위에 있으려고 한다.
“너희들은 잘 모를 거야” 들어보면 어디서 양산한 카더라 통신이요, 유비통신 이요, 가짜뉴스다. 또 조간신문에 난 기사를 마치 자기만이 아는 정보인양 떠들어 대는 꼴도 보기 싫다.
술자리에서 가장 맛있는 안주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상사를 잘근잘근 씹는 맛이요, 정치가들을 개차반 취급하는 것도 일품요리에 들어간다. 대부분은 가짜 뉴스겠지만 어느 배우가 바람났다거나 하는 쓰잘떼기 없는 이야기에도 귀를 쫑긋 세운다.
허풍이겠지만 소싯적 바람피운 이야기도 삼겹살 못지않게 맛있다. 듣다 보면 모두가 잡놈들이다. 그 많은 여성편력이 진짜라면 그 때 그 여자들은 어쩌란 말이냐.
요즈음 술자리가 삭막하다. 경기가 팍팍 돌아가야 웃음소리도 넘쳐나고 신바람 나는 이야기도 나올 법 한데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방송국패널들 못지않은 분석과 비평이 쏟아져 나온다.
잘은 모르지만 가장 잘하는 정치는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스위스인가 하는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장관 이름도 국회의원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할 일만 하면 되었지 정치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지역 국회의원의 신상은 물론이요 어느 장관이 어떻고 저떻고 소상히 파악(?)하고 있지 않은가. 대화에 끼려면 어느 정도의 정보는 알고 있어야 하는데 여기엔 소질이 없다.
정치인들이 술자리에서 주당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으려면 자기가 속해 있는 지역구의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이 바라는 것을 잘 수렴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깃일 것이다.
다음 선거에 금배지를 달려면 말이다.
그나저나 삼금(三禁) 빼고 주담하라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이거 부담스럽네….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