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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매너

김준철의 와인교실(27)

 

진정한 매너

 

 

김준철 원장 (김준철와인스쿨)

 

 

 

까다로운 테이블 매너

 

김준철와인스쿨(원장)

오늘날 테이블 매너는 산업혁명 이후에 생긴 신흥 부유층이 귀족사회를 본보기로 삼아 테이블 세팅을 비롯하여 올바른 매너와 행동양식을 익히는 데 열중한 데서 나온 것으로, 현대의 테이블 매너는 1800년대 후반 영국의 빅토리아 왕조 때 완성된 것으로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다.

매너를 지키자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자는 것이니까, 아무리 엄한 예법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실례가 된다. 매너는 때와 장소에 따라서 그 기준이 바뀌는 것이라서 기본적인 상식선에서 상대에게 실례가 안 되는 범위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와인 매너일 것이다. 유럽 사람과 비즈니스를 하다가 와인 매너를 잘못해서 비즈니스가 깨졌다는 설도 심심찮게 돌아다닌다. 과연 그럴까? 국제간의 만남은 서로의 풍습이 다른 사람이 만나기 때문에 오히려 어느 정도의 풍속 차이는 감안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느 입장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외국 바이어를 만났을 때와 우리에게 물건을 팔려는 외국 사람을 만났을 때의 태도는 아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든 그쪽 풍습과 습관을 잘 알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고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다.

 

에티켓과 매너

에티켓은 특정 상황에서 해야 할 방식을 정한 규칙을 말한다. 그러므로 에티켓이란 좋은 매너가 나올 수 있도록 지키는 것이다. 에티켓(Etiquette)은 고대 프랑스어의 동사 estiquer(붙이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나무 말뚝에 붙인 표지’의 뜻에서 표찰(標札)의 뜻이 되고, 상대방의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 편지 형식이라는 말에서 궁중의 각종 예법을 가리키는 말로 변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루이 14세 때 유럽 최고의 베르사유 궁전이 완성되었지만, 당시는 화장실이 없어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궁 안에 사는 사람들 모두 정원에 볼일을 봤던 시기다. 가장 골탕 먹는 사람들이 정원사인지라, 정원에 ‘XX 금지’라는 팻말(에티켓)을 세웠다. 그러나 화장실이 없으니까 결과는 별 볼 일이 없었다. 이래서 정원사는 왕에게 청원을 하기에 이르렀고, 왕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지라, 부하를 모아 놓고 “모두들 에티켓대로 하라!”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에티켓이 예의범절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에티켓은 주로 금기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너는 라틴어 ‘마누아리우스(Manuarius)’에서 나온 말로 손을 뜻하는 ‘마누스(Manus)’와 방식을 뜻하는 ‘아리우스(Arius)’의 합성어로 손을 다루는 방식에서 출발한 단어이다. 매너는 무언가를 하는 방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한 개인의 행동하는 방식이 그의 매너로 묘사된다. “그는 신사다운 매너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니까 매너는 개인의 행동 뿐 아니라 우러나오는 자세도 묘사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에티켓은 제반 규칙이고, 매너는 행동이다. 좋은 매너는 어떤 상황에서 에티켓을 따르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

물론 이 에티켓이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지키는 것이 좋지만, 잘 모를 때는 물어 보는 것이 좋다. 만약, 와인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외국인과 식사를 할 때, 내가 와인을 잘 모른다면 처음부터 고백하는 것이 낫다. 난 와인을 잘 모르는데 설명을 해달라고하면 외국인은 신이 나서 설명을 해 줄 것이다. 괜히 잔을 눕혀서 색깔을 보고, 어설픈 매너로 잔을 흔들고 아는 척 하다가, 저쪽에서 와인에 대해서 잘 아는 줄 알고 이것저것 물어보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와인은 격식으로 마시는 술이 아니라 지식으로 마시는 술이다. 그 만큼 알아야 한다.

와인같이 낯선 술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어느 위치에 있든 와인을 모르면 난감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각 기업체에서는 와인 매너를 교육하지만, 오히려 단편적이고 일률적인 매너는 모르는 것이 더 낫다. 와인은 매너로 마시는 술이 아니다. 최고의 매너는 그 자리에 나온 와인에 대해서 잠깐 동안 설명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도 어디나 와인스쿨이 있으며, 장시간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와인을 배우는 것이다.

 

진정한 매너

고급 레스토랑은 중세 왕족이나 귀족의 식사를 본뜬 것으로 식사 경험이라는 귀족문화를 부르주아 식으로 재해석하여, 말끔하게 차려입은 웨이터가 언제나 대기하고 있어 고객의 필요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19세기 이후, 일반인들이 레스토랑에 갈 때 이들은 중세 궁정에서 부르주아들이 느꼈던 것과 정확히 같은 종류의 수치심을 느낀다. 복잡한 테이블매너와 어려운 음식 이름 사이에서 멈칫멈칫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분위기에서 부르주아의 레스토랑은 수치심을 생산하고 선전하는 새로운 궁전이 된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있었던 얘기다. 영국총독이 주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고집 센 촌장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던 끝에, 드디어 촌장을 초대하여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초대받은 촌장은 부하들과 함께 약속된 시간에 연회장에 도착했다.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고 들어온 촌장은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요리보다는 우선 목이 말랐다. 그래서 자리에 앉자마자 앞에 있는 물 잔을 들어 쭉 들이켰다. 그러나 그것은 물 잔이 아니고 손을 씻는 ‘핑거볼’이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총독도 핑거볼을 들어 들이켰다. 그래서 아무 일 없이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고집 센 촌장은 총독이 요구하는 사항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총독은 비즈니스에 실패한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통역을 맡았던 영국 유학파 출신의 촌장 부하가 귀띔을 했다. “아까, 촌장님께서 처음에 마시던 물은 사실은 마시는 물이 아니고, 걔들 손 씻는 물입니다” 그러자 촌장은 깜짝 놀라며 “그래? 그러면 미리 알려줘야지!” 그러자 부하는 “뭐, 앉으시자마자 드시니까 말릴 틈이 없었죠.” 촌장은 약이 바짝 올랐지만,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총독도 그 물을 마셨잖아?” 그러니까 부하는 “아마도 총독은 촌장님께서 어색해 하실까봐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이 순간, “아하! 총독, 된 사람이구나.”라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그 후 총독과 촌장이 다시 만났을 때, 어떻게 되었을까? 매너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촌장은 마시고 있는데 자기는 손을 씻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면, 촌장이 마시려고 하는데 “그건 마시는 물이 아닌데요.”라고 작은 목소리와 눈짓으로 얘기했다 해도 상대의 기분은 언짢다. 상대가 마시니까 나도 마신다는 간단한 생각 하나로 총독은 촌장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세련된 매너라도 상대가 기분 나쁘면 진정한 매너가 아니다. 이제는 ‘고객 만족’보다는 ‘고객 감동’이라야 한다.

 

 

필자:▴김준철와인스쿨(원장)▴한국와인협회(회장)▴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프레즈노캠퍼스 와인양조학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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