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쉽다
이영식
마시기 쉽고
취하기 쉽고
쉽게 깊어진다
쓰러진 소주병을 보면
주절 주절꾼,
쉽게 나를 따라 주고 닿은
아픈 바닥이 있다
더 내려갈 곳 없다는 순간
처음처럼
또다시 한잔이 건너온다
소주는 쉽다
깨지면 날을 세우지만
쉽게 맺고 쉽게 지우고
사철 초록 입술 동그랗게 벌려
이슬을 따라 놓는다
나를 퍼낸다
♧ 나이가 들면 마시는 술의 종류도 바뀌게 되는가 봐요. 요즘은 소주가 좀 뜸해졌지만 젊었던 시절에는 통과의례처럼 소주를 마셨지요. 소주 덕분에 흉허물 없이 속마음 털어놓으며 좋은 친구도 참 많이 사귀었어요. 사철 동그랗게 입 벌리고 나를 따라오던 소주의 고 예뿐 주둥이, 두고 못 잊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