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唐詩)로 대륙 중국을 헤아려보자<25>

차동영 이태백 시

당시(唐詩)로 대륙 중국을 헤아려보자<25>

차동영 씨의 저서 중국 李白 詩 해설집 ‘그대여! 보지 못했는가?’는 지난 23호로 연재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책 말미에 실은 재매있는 글들을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많은 애독 바랍니다. 23회에 걸쳐 연재된 李白 詩 해설집은 많은 독자들로부터 관심을 갖게 했던 연재물이었습니다.<편집자 주>

한편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조조 부자와는 달리 스스로 천하를 얻어 황제에 올라 나라를 다스렸으며 문학과 무예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그는 중국 역대 황제 가운데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시가에 있어서만은 조조 부자에 뒤지고 있다. 이세민은 시를 많이 지은 황제로 유명하다.『전당시(全唐詩)』1권에 수록된 그의 시는 모두 98수나 되며 그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고 있는 시는「행무공경선궁(幸武功慶善宮)」과「중행무공(重幸武功)」이다.

한편 망국의 군주 가운데 시가로 유명한 황제는 남당의 이욱과 남조의 진의 진숙보가 꼽히고 있다. 남당의 3대 군주는 정치적 역량에 있어서는 후대에 갈수록 약해졌으나 문학적 재능은 후대로 갈수록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황제 이욱의 시가는 당시 문학의 윗자리에 올랐다. 이욱은 나라를 망하게 한 군주로서 비통한 마음을 처량한 어조로 시에 담았는데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애처롭고 감동적이어서 문학사적으로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망국의 군주가 그 감정을 표한 작품이 문학사적으로 높이 평가된다니 아이러니한 역사의 현장이다. 이욱의 인생은 두 모습을 보였다. 40살 이전에는 황제 계승자로 호화롭고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생활을 원 없이 즐겼는데, 이때 작품들은 호화로움과 연정을 그린 시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의 「옥루춘(玉樓春)」을 소개한다.

저녁 화장 갓 마친 뽀얀 피부 눈처럼 희구나

봄기운 완연한 궁전에서 무희들 물고기처럼 가지런히 늘어섰네

흥에 겨운 생활과 퉁소소리 저 멀리 강물과 구름사이로 흩어지며

다시 새로 보이는 <예상우의곡> 선율 울려 퍼지네

바람 타고 향 가루 날리는 이 누구인가

취해서 난간 두드리니 흥취 더욱 절절해지네

돌아갈 때 촛불을 밝히지 말아야지

청량한 달빛 타고 말발굽 소리 울려 퍼지도록

이욱은 25살에 남당의 황제로 즉위했지만 그 당시 남당은 이미 송의 신하를 자처하고 있을 때다. 15년의 재위기간 동안 송의 간섭과 압박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면서 시와 가무로 위로를 삼았다. 「옥루춘」은 그 같은 이욱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표출한 시라 하겠다.

이욱과 마찬가지로 주색과 가무에 빠져 나라를 망하게 한 군주로 진숙보가 있다. 진숙보 얘기 중에 망국을 노래한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를 빼놓을 수가 없다. 다음은 당대의 유명한 시인 두보의 시 한 구절이다.

술집 아가씨들 나라 잃은 서러움을 알지 못하고

강을 사이에 두고 「후정화」를 부르고 있구나

진숙보는 진의 마지막 황제다. 그는 구중궁궐에서 자랐으며 여색을 밝혀 온종일 술에 취해있었다. 하지만 그는 시가에는 능해『진서』와『수서(隋書)』「음악지(音樂志)」등에 따르면 「임춘악(臨春樂)」,「금채량수수(金釵兩鬚垂)」,「당당(堂堂)」,「옥수후정화」등 여섯 곡의 노래를 지었다. 하지만 여섯 곡의 악보는 현재 전해지지 않으며 가사마저도「옥수후정화」 c번째 한 구절만이 남아있다.

진숙보가 주색에 빠져 있을 때 수나라 문제는 대군을 이끌고 진의 국경을 압박해왔다. 그러나 진숙보는 주지육림의 질탕한 연회를 멈추지 않았다. 「옥수후정화」의 노래가 날 새는 줄 모르고 울려 퍼졌다. 지고무상(至高無上)한 황제의 자리에서 죄인으로 몰락하여 옥에 갇히게 된 자신의 처지를 비참한 어조로 적나라하게 그린 「옥수후정화」는 나라가 망했어도 계속 불려 대표적인 망국의 노래로 문학사에 기록됐다.

꽃 숲에 묻혀있는 장귀비의 전각이 임춘고각에서 바라보이네

단정한 귀비모습 경국의 미인일세

창문에 어른거릴 뿐 나오지 않음은

휘장 걷고 서로 만날 때 함박 웃자는 뜻이겠지

아름다운 네 모습 네 얼굴 이슬 먹은 꽃송이 같구나

만발한 흰 꽃에 흐르는 빛이 뒤뜰에 가득하구나

꽃이야 피었다 시드느니 고운 자태가 얼마나 길까만

뜰 안에 가득히 떨어진 꽃잎은 어디론가 스러져가겠지

오늘날 읽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슬픈 사랑 노래다. 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나 노래만은 계속 불리며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망국의 군주 가운데 또 한사람이 있다. 폭군 수양제가 그이다. 수양제는 이름난 폭군이지만 풍류엔 뛰어났다. 그의 시에는 호방한 기상이 그대로 드러나 당시 문단에서 손꼽히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질투심이 강하여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이는 그냥 두지 않았다. 그는 「연가행(燕歌行)」을 짓고 모든 이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나 왕면의 시가 자신의 시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알고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죽여버렸다.

위에 언급한 황제 외에도 시문이 뛰어난 군주는 여럿이 더 있다. 양나라 간문제 소강, 송태조 조광윤의 「영초일(詠初日)」과 명태조 주원장의 「국화(菊花)」가 유명하다. 「영초일」을 소개한다.

첫 태양 떠오르니 그 빛에 눈이부셔

이산저산 모든 산에 불이 붙은 듯

해가 삽시간에 높은 하늘 길에 떠올라

별들과 조각달을 다 물리치네

멋진 노래다. 아래 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주원장의 「국화」이다.

백 가지 꽃이 될 때 나는 피지 않는다

내가 필 때는 모든 꽃을 죽이리라

서풍과 일전을 하기 위해

온몸에 황금 갑옷을 입는다

시의 제목과는 달리 살기가 등등한 시의 분위기다.

영웅호걸들이 전장에서 적을 물리치고 패업에 성공하여 문득 인간 본성으로 돌아갈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장면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주원장의 「국화」 역시 문학적이고 아름다운 시 제목이었으나 전장이란 소재를 떼어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장수는 전장을 떠날 수는 없나보다. 한편 당나라 선종은 시인 백거이의 애도시인으로, 「백거이를 애도하다(弔白居易)」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뜬구름처럼 매이지 않으니

이름은 거이(居易: 편안함에 거하다)

조화무위(造化無爲)하니 자는 낙천(樂天)이라

어린아이도 「장한가」를 읊조릴 줄 알고

오랑캐도 「비파행」을 노래할 줄 아네

대시인을 사랑하는 군주의 뜨거운 마음이 가감 없이 드러난 시라 하겠다.

차동영의 학력및 경력:▴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중어중문학과▴서강대학교 대학원 중국어과▴삼성 배우기 최고가상품 개발▴DMZ종주상품 및 태권도방한관광상품 개발▴CITM(중국국제여유대전)한국관 최우수관 선정 및 수상

*편집자주:본지는 저자의 양해를 받아 ‘그대여! 보지 못했는가?’ 중에서 술과 직접 관련이 있는 대표시를 연제한다. 삽화및 관련 사진은 청어사가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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