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록담의 전통주 스토리
溫故知新
박록담의 복원전통주 스토리텔링/66번째 이야기
살구꽃 향기 나는 방향(芳香)의 ‘행화춘주(杏花春酒)’
그간 한두 번 술을 빚어보고 그쳤거나, 아직 시도해보지도 못했던 다양한 주품들에 대한 복원과 양주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가장 매력 있게 다가오는 주품들이 몇몇 있는데, <음식디미방>의 ‘행화춘주’와 같은 주품들이다. ‘행화춘주’는 쌀과 누룩, 물로만 빚는 술인데도 “술에서 살구꽃향이 난다.”거나 “살구꽃이 필 때 빚는다.”고 하여 붙여진 주품명이라는 사실에서 호기심과 함께 힘든 술빚기에 대한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행화춘주’와 같은 유형의 주품명이 또 있는데, ‘하향주’를 비롯하여 ‘도화춘’같은 주품도 마찬가지이다.
술이름도 아름답거니와 술 빚는 시기가 꽃피는 계절이라는 의미라면 설레임이 있어서 좋고, 특히 술에서 나는 향기에 따른 주품명이라면 더더욱 매력적이기 때문이어서 그 유혹을 떨치지 못하게 된다.
그동안 누차 강조해 왔듯이 특히 쌀과 누룩 물이 전부인 전통주에서 꽃향기가 난다고 하는 사실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전통주가 세계화된 ‘와인’이나 ‘사케’, ‘맥주’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이요, 세계인의 술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디미방>의 ‘행화춘주’는 2양주인데도 밑술의 쌀 양이 덧술의 쌀 양보다 4배나 많다고 하는 사실에서 그 특징을 꼽을 수 있다. 대개의 주품들에서 술맛과 향기는 밑술의 쌀 양과 누룩의 양에 비례하고, 덧술의 쌀 양이 많을수록 좋은 방향(芳香)과 함께 도수 높은 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통설인데, <음식디미방>의 ‘행화춘주’는 이러한 통설을 뒤집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 사람이 멥쌀 4말을 백세작말 하여 끓는 물 6말로 범벅을 쑤어야 하는데, 과연 이 작업이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쌀 양이 많아질수록 범벅의 형태가 고르지 못하게 되어 자칫 실패를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음식디미방>의 ‘행화춘주’와 같이 밑술의 양이 많아 한꺼번에 하기 힘들 때에는 밑술의 원료를 4등분하여 1말 분량으로 범벅을 쑤고, 범벅이 다 쑤어지면 한데 섞어 차게 식기를 기다리는데, 범벅의 그릇과 똑 같은 크기의 그릇을 뚜껑 대신 덮고, 그릇과 그릇이 맞닿은 부분을 랩으로 칭칭 감아, 김이 새지 않도록 하여 하룻밤 재워두었다가 차디차게 식은 후에 술을 빚으면 훨씬 수월하게 해낼 수 있다.
범벅의 그릇에 뚜껑을 씌워 하룻밤 재워두면 범벅은 균일한 상태가 되고, 수분증발도 일어나지 않고 천천히 식기 때문에 범벅이 매우 부드러워져서 누룩과 섞은 후의 혼화과정이 매우 수월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행화춘주’에서 특히 밑술의 범벅을 익히고 식히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그 방법을 강조하는 까닭은 다름 아니다.
첫째는 범벅의 양이 많다는 것이고, 둘째는 범벅의 호화상태를 가능한 고르게, 많이 익게 만들어야 발효 중에 술밑이 끓어서 넘치는 일이 없고, 발효도 잘 일어난다는 사실 때문이다.
따라서 ‘행화춘주’는 밑술과정을 확실하게 처리한 후에라야 덧술 과정을 진행할 수 있고, 덧술 과정은 밑술보다 훨씬 간편하고 수월하여 술이 끓어 넘치는 일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덧술에 사용되는 밀가루는 차게 식은 고두밥에 뿌려서 섞은 후 밑술과 섞는 방법이 좋다. 밀가루가 덜 풀어져서 엉키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화춘주’는 술을 빚어보고서야 술 이름에 담긴 의미를 찾을 수 있었는데, 엷고 은은한 살구꽃향기를 느낄 수 있어, 술이름에 감추어진 의미를 찾을 수 있었으나, 술맛이 매우 담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덧술의 고두밥에 살수를 하여 뜸을 잘 들인 후에야 보다 부드럽고 감미로우면서 방향이 더욱 살아나는 ‘행화춘주’를 얻을 수 있었다.
<음식디미방>의 ‘행화춘주’를 빚는 과정과 주품명에 담긴 의미를 찾는 작업 역시 전통주의 보급을 위한 수단이자 목적에 귀착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우리 술이름에 담긴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보다 다양하고 개성 있는 술의 등장, 보다 개성화되어가고 기호도가 다른 현대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행화춘주’의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 행화춘주 <음식디미방>
◇술 재료 ▴밑술:멥쌀 4말, 누룩가루 6되, 물 6말 ▴덧술:찹쌀 1말, 밀가루 5홉
◇밑술 빚는 법:①멥쌀 4말을 백세(깨끗하게 씻어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서 물기를 뺀 후) 작말한다(가루로 빻는다). ②물 6말을 팔팔 끓여 멥쌀가루에 고루 나눠 붓고 주걱으로 고루 개어 담(범벅)을 만들고, 이내 넓은 그릇 여러 개에 퍼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차게 식힌 담에 (법제한) 누룩가루 6되를 넣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친 다음, 예의 방법대로 하여 4일간 발효시킨다.
◇덧술 빚는 법:①찹쌀 1말을 백세 하여 (하룻밤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가 빠지면) 시루에 안쳐 고두밥을 짓는다. ②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밑술에 밀가루 5홉을 먼저 넣고 버무렸다가, 다시 고두밥과 함께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소독하여 준비한 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7일간 발효시킨다. ⑤술이 익으면 용수를 박아 채주한다.
*주방문 말미에 “잘 넘는 술이니, 네 말 빚으려면 술독을 열 말들이 큰 것에 빚어 넣으라.”고 하였는데, 이는 덧술 과정이 아닌, 밑술의 발효과정에서 잘 넘는다는 것을 말함이다. 또 주품명이 ‘행화춘주’인데, 살구꽃이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살구꽃향이 난다는 의미이거나, 살구꽃이 필 무렵에 빚는 술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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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담의 복원전통주 스토리텔링/67번째 이야기
정통 방향(芳香)의 순곡주 ‘추포주(秋葡酒)’
우리나라 전통주에 대한 연구를 하다 보면, 원료의 선택이나 가공, 누룩 디디는 법, 그와 다양한 방면에서 술을 빚는 방법들에 대해 탐구를 하게 되는데, 의외의 부분에서 막히고, 그 원인이나 방법들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게 될 때가 많다.
특히 <酒饌>에 수록되어 있는 주품들의 경우에서 가장 많이 부딪혔던 문제였다.
그 예로 <주찬>에는 ‘추포주(秋葡酒)’를 비롯하여 ‘석탄향(石炭香)’, ‘절주(節酒)’, ‘송계춘(松桂春)’, ‘도화춘(桃花春)’, ‘은화춘(銀花春)’, ‘백탄향(白灘香)’, ‘진향주(震香酒)’ 등의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표현의 주품명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추포주’는 <주찬>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주품명으로, 자전풀이대로라면 ‘가을포도로 빚은 술’ 또는 ‘가을에 수확한 끝물의 포도를 사용하여 빚은 술’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으나. ‘추포주’ 주방문 어디를 보아도 ‘포도’가 사용된다는 내용이 없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품명이 ‘추포주(秋葡酒)’라고 하는 배경은 “술의 발효과정을 통해서 발현되는 향기가 포도의 향기와 같다.”거나 “술에서 포도향기가 난다.”는 뜻에서 유래한 주품명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하향주(荷香酒)’, ‘닥주’ 등과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문배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酒饌>의 ‘추포주(秋葡酒)’에 감춰져 있는 ‘포도 향기의 비밀’은 무엇일까?
<주찬>의 ‘추포주’를 분석하여 보면, 술을 빚는 과정이 조선시대 중기에 가장 성행했던, 다시 말해서 밑술은 ‘범벅’으로 하고 ‘진 고두밥’으로 덧술을 하는 아주 전형적인 양주(釀酒) 형태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은, 멥쌀 1말에 대하여 10%의 품질 좋은 누룩가루와 밀가루 5%, 150%의 끓는 물로 빚는 밑술과 멥쌀 2말에 대하여 끓는 물 150%의 끓는 물로 익힌 고두밥을 덧술로 하여 발효시키는 공식이 숨겨져 있다.
이 재료배합비율은 밑술과 덧술 공히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활발한 발효를 도모할 수가 있고, 특히 적은 양의 밀가루 사용은 잡균의 증식을 예방해주는 한편, 적당한 산미를 부여하여 균형 잡힌 육미(六味)를 갖게 하여 시원한 맛 까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안정적이면서 활발한 발효는 높은 알코올생성과 함께 풍부한 방향(芳香)을 수반하는데, 방향 가운데 포도향(葡萄香)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주찬>의 ‘추포주’가 멥쌀과 누룩, 밀가루 끓는 물로만 빚는 순수한 미주(米酒)이면서도 포도라고 하는 과일향기를 갖게 됨으로써, 주품명까지도 ‘추포주(秋葡酒)’라고 하는 이름을 얻게 된 이유이다.
◈ 秋葡酒 <酒饌>
◇술 재료 ▴밑술:멥쌀 1말, 좋은 누룩가루 1되, 밀가루 5홉, 끓는 물 1말 5되▴덧술:멥쌀 2말, 끓는 물 3말
◇술 빚는 법▴밑술:① 멥쌀 1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작말하여 넓은 그릇에 담아 둔다. ② 물 1말 5되를 팔팔 끓여 쌀가루에 골고루 붓고, 주걱으로 개어 죽(범벅)처럼 만든 뒤, (넓은 그릇 여러 개에 나눠 담고)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 차게 식힌 죽(범벅)에 좋은 누룩가루 1되와 밀가루 5홉을 합하고, 고루 치대서 술밑을 빚는다. ④ 술밑은 술독에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3일간) 발효시킨다.
▴덧술:① 멥쌀 2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쳐 고두밥을 짓는다. ② 솥에 물 3말을 팔팔 끓이고, 고두밥이 익었으면 넓은 그릇에 퍼 담고, 끓는 물을 골고루 붓고, 고루 헤쳐 놓는다. ③ 고두밥이 물을 다 먹었으면, 그릇 두 개에 나눠 담고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④고두밥에 밑술을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⑤ 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발효시킨다.
* 주방문 말미에 “빛깔과 맛이 매우 좋다.”고 하였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