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台祐교수의 특별기고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23>
윈스턴 처칠, 젠틀맨의 샴페인 플로저
샴페인을 가장 사랑한 명사로 손꼽히는 윈스턴 처칠, “내 입맛은 아주 단순하다. 나는 최고에 쉽게 만족한다.” 샴페인은 오랫동안 사랑받은 만큼 유명인들의 사연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 중 윈스턴 처칠의 ‘플로저(Pol Roger)’이야기가 유명하다. 처칠은 젊은 나이였던 1908년 우연히 ‘폴로저 샴페인(Pol Roger Champagne)’을 접한 이후 이때부터 평생 이 샴페인을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승리의 순간에 샴페인은 당연하다. 그건 패배의 순간도 마찬가지다.” 윈스턴 처칠이 샴페인을 두고 즐겨했던 말이다. 그는 점심과 저녁 매일 두 병씩 샴페인 즐겼다는데, 특히 1928년산 ‘폴로저’에 푹 빠져 아예 평생 마실 ‘폴로저 샴페인’을 주문했다고 한다. 자신이 소유한 경주마의 이름까지 ‘폴로저’라고 지었다고 하니 그의 ‘폴로저’ 사랑이 얼마만큼 극진했을지 짐작이 간다.
세계를 호령한 대제국 ‘해가 지지 않는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나 청년 시절을 보냈고 대영제국의 전성기에 장년을 보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이끌었던 윈스턴 처칠은 곧 그가 영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존경받는 리더, 영국의 대표 지도자인 윈스턴 처칠은 2차 세계대전 고난의 시절과 승전의 기쁨, 그리고 91세로 타계할 때까지 일생에 거쳐 샴페인을 사랑했다. 윈스턴 처칠의 ‘폴 로저(Pol Roger)’ 사랑은 대단했다.
전쟁터에서도 항상 폴 로저를 지녔던 윈스터 처칠이 살아생전 가장 사랑한 샴페인은 ‘폴 로저 브뤼 빈티지’다. 이 샴페인은 몽따뉴 드 랭스와 꼬뜨 드 블랑 지역 중 프리미엄 크뤼와 그랑 크뤼에서 수확한 피노누아와 샤르도네를 6대 4 비율로 브랜딩하고 약 9년 간의 숙성과정을 거친다. 깊이 있는 구조감과 풍부한 바디감, 매혹적인 향과 섬세한 산도가 잘 어우러지는 프리미엄 샴페인이다. 다른 빈티지 샴페인이 3년 정도 숙성을 통해 출시되는데 반해 ‘폴 로저 브뤼 빈티지’는 그 3배인 9년 간 숙성해 깊이감이 남다르다.폴로저 측의 처칠 사랑 또한 대단했던 모양이다. 처칠을 위해 그의 음주량에 맞는 샴페인 병을 따로 제작하고 그를 위해 2만 병의 와인을 따로 보관하기도 했다. 1965년 처칠이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샴페인의 병목에 검은 리본을 달아 그를 애도했고, 사망 10년 후 폴로저에서 생산하는 최고의 샴페인에 ‘폴로저 뀌베 써 윈스턴 처칠(Pol Roger Cuvee Sir Winston Churchill)’이라는 이름을 붙여 처칠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런 스토리에 힘입어 ‘젠틀맨의 샴페인’이라고 알려진 폴로저는 2004년부터 영국의 엘리자베스 II세 여왕을 위한 공식 샴페인 공급처로 선정되었고, 수많은 인사들이 아끼는 샴페인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내 입맛은 아주 단순하다. 나는 최고에 쉽게 만족한다.” 처칠의 폴로저(Pol Roger)에 대한 평가다. 아마도 그가 샴페인을 극히 좋아했던 것은 젖가슴처럼 생긴 술잔을 감싸 안듯 하면서 마시는 그 감촉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그는 주종불문의 주당이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그의 건강을 위해 ‘처칠 칵테일’까지 제조해 주었을 정도였으니 그가 샴페인의 진정한 맛을 느끼는 주선의 경지였을까는 의문스럽다. 그는 위스크 마니아였다.
또 한 명의 역사 속 인물은 프랑스 전 대통령인 샤를 앙드레 조제프 마리 드골이다. 그는 사후 어떤 훈장이나 감사장도 받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겨 후세에 더욱 회자되고 있는 세기의 인물이다. 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리는 추모의 글과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기념패의 행렬은 끝날 줄 몰랐다. 그는 ‘위대함이 없는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고 천명했을 만큼 프랑스 자존심의 상징이다. 그런 그도 샴페인을 즐겼는데, 그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도 있다. 로랑 페리에라는 샴페인 하우스에서 생산한 샴페인에 직접 ‘위대한 시대’라는 의미의 ‘그랑 씨에클(Grand Siècle)’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그 후 샴페인의 브랜드 네임으로까지 사용되고 있을 만큼 위대한 정치가에게서 받은 특별한 이름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는 상파뉴 지방의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 와인에만 허락된 이름인 샴페인과 누구에게도 굽히기 싫어했던 정치가 드골,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자존심의 세기적인 만남으로 거론되고 있다.
샴페인은 서양에서는 벼락부자라는 뜻으로 사용될 정도로 상류사회의 상징이다. “샴페인은 승자뿐 아니라 패자를 위해서도 준비되어야 한다”는 명언을 남기며 평생 샴페인을 즐겼던 윈스턴 처칠의 샴페인 폴로저는 영국에서 젠틀맨의 샹파뉴(Champagne, 샴페인은 샹파뉴의 영어식 발음)로 불리며 유럽 황실 인증서를 받을 정도로 유럽 황실에서 즐겨 찾고 있다.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샴페인은 마신 후에도 여자를 아름답게 해주는 유일한 술”이라고 예찬했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중앙대학교(교수)▸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헌정보학과 박사▸2011.07~2013.07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2009.07 한국도서관협회 부회장▸2007.06~2009.06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2004.01~2006.12 한국정보관리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