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녕하 칼럼
미스 서울
1965년 10월, 그 당시의 유행가 가사에 등장하는 “먼 남쪽 섬에 나라∼” 월남(越南)과 월맹(越盟) 호치민(胡志明)과의 전쟁판에 대한민국 국군이 참전한다. 청룡부대를 시작으로 맹호, 비둘기 부대가 투입되고 1972년 2월까지 6년 5개월간 진흙탕 싸움을 하다 돌아온다. 월남전 참전은 혈맹으로 엮인 미국의 요청을 받아 용병(?)처럼 참전했는데, 철군 이후의 후유증은 우리나라에 지금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다 지우지 못하고 있다. ‘고엽제’, ‘라이 따이한’ 등 국가 차원에서의 실익과 피해를 간단명료하게 판정할 수 없는데다가, 그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참전을 요청했던 미국도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명분 없는 전쟁을 벌였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을 감내하지 못했고, 전쟁의 와중에서 빈껍데기 평화협정을 맺고 미군철수를 결정하는 바람에 미국은 해외파병 최초의 패전국 불명예를 떠안았다. 뒤이어 ‘미국이 월남을 버렸다’는 오명은 세계 경찰국가 미국의 패권에 큰 상처를 남긴다. 그런 와중에서도 기막힐 정도로, 대한민국은 종전 직전! 몸을 쏙 빼내는 신출귀몰할 미래예측과 선견지명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한다. 이는 전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 덕분이었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모티브는 베트남 혼혈아가 월남 패망 이후 우여곡절 끝에 미국인 아버지와 상봉하는 장면이 담긴 한 장의 보도사진에서 비롯된다. 베트남인 어머니가 미국인과의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를 종전 후 우여곡절 끝에 상봉한 미국인 아버지에게로 넘겨주고 헤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 직후 자살해버리는 월남 여인(어머니)의 모습을 극적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전개는 오페라 ‘나비부인’과 거의 흡사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미스 사이공’이나 ‘나비부인’이나 미군을 상대로 했고, 그의 아이를 낳고 재회를 갈망하는 내용으로써 시대적 배경만 다를 뿐이다. ‘미스 사이공’은 ‘케츠’,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과 더불어 세계적인 4대 뮤지컬로 꼽힌다.
정복당하고 망해버린 나라의 국민은 노예와 다를 바 없다. 그나마 성적 노리개로 쓸모가 있는 여성은 점령군의 노리개로 전락하여 생명을 부지해나갔지만, 남성은 부역자로 변신하여 살아남지 못하면, 보트피플이 되어 남지나해를 나뭇잎 같은 목선에 의지하여 떠돌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기를 염원하다 대부분 풍랑에 휩쓸려 물고기 밥이 됐다.
혼혈아를 낳은 월남 여인과 같은 사연은 6.25 이후 미군이 주둔하던 지역, 동두천, 의정부, 파주, 문산, 오산과 같은 곳에서 비공식적으로, 수도 없이 많이 발생했다. 미군을 따라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피부색과 눈동자가 다른 혼혈아를 떠안고 동포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천형의 멍에를 짊어진 채 질곡의 삶을 살아내야 했다. 마치 ‘미스 사이공’을 판박이 한 그림이었다. 그런가 하면,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던 직업여성, 이른바 ‘양공주’라는 비칭(卑稱)으로 통하던 한국 여인들의 삶의 궤적은 더욱 비참하였다.
불안한 국제정세와 툭하면 쏘아 올리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협박성 발언 정도로는, 위험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둔감해진 오늘날, 위정자들의 아집과 오판으로 근역강산(槿域江山)에서 핵전쟁 또는 생화학 전쟁이라도 터진다면,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6.25 때처럼 피난가도 소용없고, 이리저리 골목 바람에 휩쓸리는 낙엽보다 못한 신세로 전락한다면,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19년 현재, 대한민국의 여성 중 ‘미스 사이공’의 여주인공과 나이가 같거나 비슷한 연령의 여성은 얼마나 될까.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진다면, 훗날 세계인들은 이들을 ‘미스 서울’로 불러줄까? 그것도 아니면, 그 존재가치 조차도 소멸하고 말까?
권녕하
시인, 문화평론가 <한강문학>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