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많이 팔 생각 애초부터 없었습니다”…좋은 술 빚는 것으로 만족해요

친한 벗과 어울려 술을 나누는 멋, 삶의 활력소가 따로 있겠습니까. 지란지교 한 잔 어떠세요.

‘芝蘭之交’를 실천하는 농업회사법인‘(유)친구들의 朰’ 林叔周 대표

 

“술 많이 팔 생각 애초부터 없었습니다”…좋은 술 빚는 것으로 만족해요

 

 

국내에서 지리표지집체상표(地理標志集体商標)의 대표적인 상표로 ‘안동간고등어’, 순창고추장, ‘한산모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고추장 고장 가운데 ‘순창고추장’이 대표적 상표로 대접받는 이유는 순창의 환경적 특성상 발효식품이 다른 고장에 비해 월등히 잘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북 순창(淳昌) 하면 고추장을 떠 올릴 만큼 고추장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비록 옹색해 보이는 양조장이지만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증류식 소주도 전통방식 그대로 소줏고리로 내린다.

이런 발효식품 고장에 수제 막걸리를 가지고 명품 대열에 도전장을 내민 이가 바로 농업회사법인 ‘(유)친구들의 술(朰)’ 임숙주(林叔周, 64) 대표다. 명주 개발을 꿈꾸면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친구들의 술’은 법인명 보다 여기서 빚는 술 이름 ‘지란지교’가 더 유명하다.

기자가 ‘친구들의 술’ 임 대표와 안면을 트고 지내기 시작한 것은 그가 한창 전통주를 배우기 위해 한국전통주연구소(소장:박록담)를 출입할 때다. 수원에서 30여 년간 공무원을 하다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집(순창)으로 귀향하면서 무화과 농장을 할 때니까 햇수로 꽤 여러 해가 되었다.

처음에는 수확한 무화과로 식초를 만들었다. 임 대표의 모친이 식초를 잘 만드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식초를 과거에는 ‘쓴술’이라고 한 적도 있으니까 지금 임 대표가 빚는 술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 막걸리 식초의 뿌리가 막걸리이듯 식초를 만들 수 있으면 양조는 쉽게 이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친구들의 술’이 수작업으로 생산하고 있는 술들

임 대표가 수확한 무화과로 직접 생산한 무화과 식초 맛도 보았고, 내외주가에서 열었던 계절주 세미나 때도 그가 담가온 탁주를 맛보았다. 지난 가을 정식으로 양조장 면허를 받아 본격적으로 술을 빚게 되었다는 소식에 불원천리 마다 않고 순창으로 핸들을 돌렸다.

순창으로 길채비를 한 날은 딱 좋은 초겨울 날씨. 이번 취잿길에는 선·후배 몇이서 막걸리 맛좀 봐야 겠다고 따라 나서서 취재여행이 한층 즐거웠다. ‘지란지교’들이 ‘지란지교’를 찾아 나선 셈이다.

‘지란지교’들이 ‘지란지교’를 찾아 나섰다

임 대표가 빚는 술의 주명(酒名)이 ‘지란지교(芝蘭之交)’다. 사전적 의미로 지란지교는 ‘지초(芝草)와 난초같이 향기로운 사귐이라는 뜻’으로, 벗 사이의 맑고도 높은 사귐을 이르는 한자 성어다. 회사명 ‘친구들의 술’과도 썩 잘 어울린다.

지초와 난초는 둘 다 향기로운 꽃으로, 지란지교는 곧 지초와 난초처럼 맑고 깨끗하며 두터운 벗 사이의 사귐을 일컫는다. ‘명심보감(明心寶鑑)’〈교우(交友)〉편에 나온다. 지란지교는 여기서 유래한 성어이다. 공자의 말처럼 벗을 사귈 때는 지초와 난초처럼 향기롭고 맑은 사귐을 가지라는 뜻이다.

임 대표는 주명을 ‘지란지교’라고 한 것은 박록담 소장이 양조장을 방문하고 나서 임 대표와 부인 김 수산나가 술 빚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지워준 이름이라고 했다.

박록담 소장(가운데)이 방문했을 때 부부가 술 담그는 모습이 진정한 친구 같다하여 ‘지란지교’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박록담 소장은 ‘지란지교’를 추천하면서 “술은 예(禮)로 시작하여 예로서 마시고 대접하여 예의(禮儀)로 마치는 것이다. 그 예의 바탕에 술을 빚는 부부가 사랑과 신의를 다 하니 ‘지란지교’가 되었다.”고 했다.

박 소장은 또 “옛날 평양의 이름난 주가(酒家)에서는 순창에서 생산되는 누룩을 가져다 술을 빚을 만큼 순창 건곡리는 예로부터 명주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면서 “‘지란지교’는 이곳 건곡리의 구전비법(口傳秘法)누룩과 주방문(酒方文)을 빌어 재현한 술로, 멥쌀 죽과 찹쌀 고두밥으로 두 번 빚고(이 양주 법), 일체의 첨가물 없이 오직 전통누룩으로만 100일간 발효와 숙성을 끝낸 정통 청주(淸酒)”라고 평가 했다.

‘친구들의 술’에서 빚은 ‘지란지교’에서는 진짜로 향이 난다. 은은한 과일향이다. 참외향 같기도 하고 수박향 같기도 하다.

처음 지란지교를 맛본 이들이 “어떻게 술을 빚었기에 이런 향이 나느냐?”고 물어오면 임 대표는 “정성껏 빚으면 그런 향이 나온다.”고 할뿐이라고 했다. 비단 지란지교에서만 그런 향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누룩과 쌀, 물을 정성스럽게 항아리에 담그면 자연스럽게 그런 과일향이 나오는 것이 진정 우리의 전통주다.

‘명주’ 개발에 임숙주 대표와 부인 김수산나 씨가 열과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전통주 업계의 떠오르는 샛별이 된 ‘지란지교’

임 대표가 본격적으로 술을 빚겠다고 작심한 것은 2013년 귀농 이후 2015년에 순창군이 진행하는 전통주 제조과정 교육을 통해 전통주에 첫 발을 내닫고 부터다.2015년부터 술 공부를 하면서 빚었던 술이 운 좋게 2016년 ‘대한민국명주대상’에서 대상(大賞)을 수상한 것이 진짜 술 쟁이가 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2016년 ‘대한민국명주대상에 출품했을 때 주명은 ‘설주(舌酒)’였다. ‘혀로 맛보고, 음미하고, 가슴으로 마신다’는 뜻을 담기 위해서였다.

처음 따라 나선 낚시에서 월척을 잡은 것이 평생 낚시꾼으로 만든 것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임 대표는 대상을 받았을 때 심정이 “얼떨떨하기도 했습니다. 전통주를 빚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도 많은데 대상을 받으니까 영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 후 참으로 열심히 술 공부를 했다는 임 대표는 옆에서 묵묵히 조언과 격려를 해준 부인이 있었기에 술 공부에 전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노력의 대가는 점점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25-26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서울시와 NH농협이 공동주최한 ‘WITH 米 페스티벌’에서 ‘지란지교’(탁주 13%)가 전통주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우리 쌀 가공식품과 전통주를 테마로, 쌀을 이용한 우수한 가공식품을 시민들에게 소개하고자 마련된 페스티벌에서 지란지교는 서울시장상과 함께 부상으로 상금 200만원을 수상했다.

이 보다 앞서 지난 2017년에도 순창세계소스대회 전통주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전통주 분야에서 입지를 높여 나가고 있다.

임 대표는 전통주 장인으로 오랜 기간 이 분야에 몸담아 온 인물도 아니고, 전통주를 배운지 불과 4년 만에 이뤄낸 성과라 전통주 업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전통주 업계의 떠오르는 샛별이 된 것이다.

“꽃이 없다고 무화과라고요?” 내 꽃은 열매 속에 숨겼답니다
양조장을 찾은 손님들에게 술잔을 건네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임숙주(사진 외쪽) 대표.

임 대표는 경기도 수원에서 공무원으로 30년간 근무하면서 퇴직 후에는 그가 태어난 고향으로 귀농하겠다며 틈틈이 귀농에 대비해 공부를 한 것이 무화과(無花果)라고 했다.

고향, 그것도 임대표가 태어나서 자란 집으로 귀향후 ‘순창샘터농원’을 개설했다. 일반적으로 무화과는 쉽게 물러서 유통기간이 짧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장기간 보관해도 잘 무르지 않는 무화과를 개발해 냈다. 한약재를 이용한 퇴비를 만들어 거름을 주니 다른 무화과에 비해 유통기간이 배나 길어졌다.

임 대표는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과일, 무화과! 다들 좋아하시나요?”

임 대표는 무화과를 제대로 홍보하기 위해서 ▴여러분 사랑이 샘솟고!▴여러분 건강이 샘솟고!▴꿈이 목마르지 않는 농원! 이라고 홍보도 열심히 했다.

임 대표는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무화과를 좋아한다.”면서 무화과는 “껍질을 까든, 까지 않든 한결 같이 맛이 좋고, 피부미용에도 좋다.”고 강조했다.

무화과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임 대표 부부는 나이에 비해 무척 동안이다.

술을 빚는 한편 임 대표는 현재도 연 7톤 정도의 무화과를 생산, 연 3천5백만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고기를 먹었는데 소화가 잘 안 되시나요? 무화과를 드셔 보세요. 단백질 분해효소가 많이 들어 있어 육식을 한 뒤 무화과를 먹으면 소화를 도와준답니다.”

꽃이 없는 과일이라고 해서 무화과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사실 이 과일은 꽃을 열매 안에 숨겨두고 있다. 한 입 베어 물면 선홍빛 예쁜 꽃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인 김지하는 <무화과>란 시에서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 섰다. 이봐/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주며/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술 많이 팔 생각 애초부터 없었다

‘지란지교’를 빚는 양조장은 크지 않았다. 임 대표가 나고 자란 집을 양조장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술을 빚은 발효실은 옛날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술 항아리를 이불로 꼭꼭 싸매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벽에 걸려 있는 ‘名酒’란 휘호가 유난히 돋보였다. 도회지에서 기계 돌려가며 자동으로 생산하는 큰 양조장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증류주를 내릴 때도 증류기를 사용하지 않고 옛 방식 그대로 소줏고리를 이용해서 증류식 소주를 내린다. 그리고 숨 쉬는 항아리에서 1년 정도 숙성과정을 거친다. 모든 것이 수작업이다.

-비경제적으로 보이는데요, 수지 타산이 많나요?

이 질문에 임 대표는 웃었다. “술 많이 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전통주가 좋았고,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좋은 전통주를 못 만들게 해서 제사 지낼 때도 술 대신 현주(玄酒:밤에 우물을 뜬 때 검게 보여서 붙여진 이름)로 지낸 경험 등이 아타까웠습니다. 술은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고, 소통을 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입니다. 이런 매개체를 과거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해 보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습니다.”

수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양조장을 확장하여 규모를 크게 하면 수지를 맞추기 위해 정성이 덜 들어간 술을 빚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임 대표는 양조장이고 집이고 다른 집에는 거의 있는 가게부가 없다고 했다. 얼마가 남는지 적자가 나는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속이 편해진다는 것이 임 대표의 경영 철학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부인과도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한다.

전통주 가격이 아닌 품질로 승부 걸어야

‘친구들의 술’이 현재 출시하고 있는 술은 3가지다.

모두다 국내산 찹쌀, 멥쌀, 누룩만 사용해서 원료세척부터 가공까지 모든 공정을 전통방식 그대로 술을 빚는다.

15%와 17%인 프리미엄 전통약주(375㎖/ 500㎖)가 대표주자, 다음이 크레프트 탁주다. 13%와 15%(375㎖/ 500㎖) 두 종류가 있는데 시중 일반 탁주보다 도수가 높지만 목넘김이 깔끔하다. 입안에 남아 있는 잔류 향이 다음 잔을 재촉한다.

프리미엄 전통약주를 전통방식으로 증류한 43% 소주(375㎖)가 있다. 출고가가 상당히 고가란 말에 동행했던 지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임 대표가 큰맘 먹고 소주병을 따자 술잔을 내 밀기가 미안할 정도다. 참으로 귀한 술인데….

임 대표는 이런 느낌을 알아채고 “지난 11월 15일 aT센터에서 개최된「2019년 대한민국 우리 술품평회」에 지란지교를 들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한테 가장 인기를 얻은 술이 소주였다”면서 가격 따지지 않고 구입을 하겠다는 의견을 준 사람들이 많아 임 대표도 놀랐다고 했다.

이제 전통주는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주질 즉, 맛이 좋으면 얼마든지 판로는 열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서울시청광장에서 서울시와 NH농협이 공동주최한 ‘WITH 米 페스티벌’에서 ‘지란지교’(탁주 13%)가 전통주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지난 ‘WITH 米 페스티벌’에서 전통주 부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자 서울 전통주 전문점에서 임 대표에게 납품을 의뢰했지만 대량 생산이 어려워 고민 중에 있다고 했다.

임 대표는 앞으로 “현재 농사를 짓고 무화과와 전통주를 접목시킬 수 있는 분야를 점차 확대해 순창을 대표하는 전통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임숙주 대표와 그의 부인 김수산나 씨가 “‘지란지교’를 많이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 전통주와 더불어 좋은 벗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 소박한 희망”이라고 한 말이 곱씹힌다.

11월 15일 aT센터에서 개최된「2019년 대한민국 우리 술품평회」에서 인기를 끈 지란지교부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이런 향기 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횡재를 한 느낌이 든다.

문뜩 이런 시구가 생각난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중략-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친구와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생길 필요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 <지란지교를 꿈꾸며>中, 유안진 –

글 · 사진 김원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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