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는 행복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박정근 칼럼

음주는 행복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박 정근(대진대 교수, 윌더니스 문학 주간, 소설가, 시인)

 

젊은 시절 연말이 오면 송년회 술 파티가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거나하게 마시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게다가 술기운에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자리는 오페라 가수가 된 듯 했다. 그래서 필자는 친구가 좋아서 서울을 간다는 속담처럼 돈만 생기면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시자고 앞장을 서곤 했다.

사실 필자의 성격은 어렸을 때 그리 공격적이거나 적극적이지 못했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자의식이 상당히 강한 편이라 남 앞에 서는 것을 꺼리는 수줍은 청소년이었다. 그래서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발언을 주저하다가 번번이 남 앞에서 설 기회를 잃어버린 적이 많았다. 이런 나의 심약한 성격을 바꿔놓은 것은 단연코 술이었다.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술에 강한 유전자 탓인지 좀처럼 술자리에서 먼저 떨어진 적이 없었다. 술이 얼큰해지면 심약한 마음이 담대해져서 제법 호기를 부릴 수가 있었다. 어쩌면 호기를 부리기 위해 술에 의존하는 버릇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술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맞는가보다. 나이가 육십 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연말에 몰려오는 술자리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항상 자신하던 간이 연속되는 술자리에 지쳐서 푹푹 쳐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십이월 중반이 넘어서면 빽빽하게 들어찬 송년회 표시가 슬슬 목을 조이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술에 강하다는 지금까지의 평판이 한물 가버렸다는 징조이리라.

지난 해 십이월이 되면서 처지는 몸 상태가 지속되더니 치주염의 증세로 잇몸이 부어오르고 치통이 생겼다. 밤새 끙끙 앓다가 치과에 갔더니 의사는 잘못하면 발치해야 한다고 겁을 주었다. 이를 빼지 않으려면 신경치료를 해야 했다. 그런데 마음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일까. 남들에게 치통이 심하다고 엄살을 부리면서 술자리를 피할 수가 있다는 생각에 슬쩍 미소를 짓는 나를 발견하고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는 청탁불문을 외치는 주선이라고 떠들썩했지 않은가. 그런 내가 술자리를 피할 핑계를 찾고 있다니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인가 말이다.

아내는 남의 속도 모르고 친구들 앞에서 이가 아파 술을 못 마시니 쌤통이라고 쾌재를 불렀다. 아내와 나는 술에 대한 서로 속마음 감추기 게임을 즐기며 연말 2주 정도를 술을 멀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맹물만 마시며 두세 시간을 견디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무리 남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흥을 돋우려고 해도 취기가 전혀 없는 맨송맨송한 분위기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이것이 술꾼의 한계라는 것일까. 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흥을 만들어내지 못하니 말이다.

필자는 이십대부터 배우로 연극을 하고 연구한 사람이다. 무대에 올라가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흥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슬픔에 잠기는 연기에 능숙한 배우로 자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술에 취하는 역할을 못하고 있다니 말이 안 된다고 속으로 스스로에게 자조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술을 마시지 않고 잘 어울리는 목사지망생인 친구가 있었다. 그는 사이다를 마시면서도 친구들 속에 파고들어 전도를 한답시고 가슴을 열어젖히고 술꾼들을 감동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술꾼이라는 필자가 술을 마시지 않고는 술꾼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면 술꾼이요 배우인 내가 목사지망생보다 못하다는 논리가 되지 않은가.

필자는 술을 마시지 않고 흥을 못내는 상태에 대해서 열등감을 극복할 음주의 당위성을 개발하고자 한다. 술을 같이 마시면 자신만의 고립적 베일을 찢고 분열되었던 타자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니체는「비극의 탄생」에서 주장한 바 있다. 이성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모든 분열 자들은 사실 거대한 대지의 자식들일 뿐이다.

술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식의 고립을 극복하고 단독자의 환상에 빠진 타자들을 상실한 형제로서 가슴에 안고 기쁘게 하는 효과를 낸다. 성경에서 보여주듯이 혼자 방탕하게 살겠다고 집을 나간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면 틀림없이 아비는 기뻐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꿈에도 그리던 자식을 보고 아비는 기쁜 나머지 잔치를 열고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술을 마실 것이다.

왜냐하면 부자관계는 육신으로야 나뉘어있지만 마음과 가슴으로는 하나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연말도 지나고 어느덧 경자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필자의 술에 대한 철학도 새해에도 변함없이 시대와 세월의 변화를 읽고 발전해야 할 것 같다. 분열을 조장하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공동체의 통합을 향해서 나아가야 하리라. 술꾼들도 이념으로 분열된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통일을 이루도록 한 몫 거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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