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醉中眞談
肝에 奇別이 가서는 안 된다
해 바뀌면 금연을 하겠다는 사람 또는 금주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경자년이 시작 된지도 여러 날 되었다. 새해가 되면서 금연, 금주를 외쳤던 계획들이 이미 수포가 되어버린 사람들도 많을 듯싶다. 이른바 작심삼일형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술을 마시지 않아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나 한번 피우기 시작한 담배, 한두 잔으로 시작한 술을 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주당은 ‘술을 끊는 다는 것은 목숨을 끊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일갈했다.
수년 전 송태호 박사(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가 <내 장기들의 수다>란 칼럼에서 장기들은 “이 양반아, 술 좀 작작 마셔”라며 각각의 장기들은 연말이 되면 힘들어 죽겠고 하소연을 풀어 놓는데 그 중에서 특히 간장(肝臟)선생은 “누가 뭐래도 술이 들어오면 제일 큰 고생은 내가 합니다. 가뜩이나 이것저것 만들고 할 일도 많은데 이맘때면 만사 제쳐놓고 알코올 분해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하니 내 몸이 축날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열심히 알코올을 무찔러도 소주 한 병 분해하려면 하루 이상 걸립니다.”
간장 선생은 또 “2차, 3차까지 들이부으면 나는 뒤치다꺼리에만 며칠이 걸립니다. 게다가 2~3일에 한 번만 마셔주면 그럭저럭 꾸려나갈 텐데 매일 새로운 적들이 몰아닥치니 작년에 결국 탈이 난 거예요. 그 후유증으로 내 세포 사이에 지방이란 놈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아 일을 방해하니 설상가상입니다. 더욱이 비타민이나 무기질처럼 알코올을 무찌르는 데 꼭 필요한 자재가 충분치도 않고요.”
이 칼럼을 읽으면서 내 장기들도 똑 같은 고생도 하고, 푸념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 준 장기들이 고생을 덜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술 이기는 장수 없다’고 나이 들어감에 금주형도 생기고 절주형도 생겨난다.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의사로부터 금주령을 명 받은 사람이야 어쩔 수 없다 치고, 몸을 생각하여 술을 줄이겠다는 사람들의 결심이 주변 사람들의 방해로 무너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나 딱 석잔 만 할께”라며 건너오는 술잔을 사양하면 “그 것 마시고 간에 기별이나 가겠냐!”며 강권하는 주당들이 문제다.
“간에 기별이 간다!” 막상 간에 기별이 가면 어떨까. 의학 상식이 부족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간이 알코올이 쳐들어온다는 기별을 받는 다는 것은 결국 간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이 아닌가.
‘기별(奇別)’을 조선시대에는 ‘조보(朝報)’라고 했다. 조선시대 승정원에서 매일 아침 발간하여 전국에 배포한 일간신문의 이름이다. 조보에는 왕의 동정, 왕에게 올라간 상소와 답변, 조정의 인사이동, 행사와 새로운 정책, 일본과 여진 등의 해외소식까지 담았다고 한다. 조보는 관보이기는 하지만 유배지에까지 보냈고, 거의 500년 내내 발행한 나라는 당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니 우리의 언론은 그 만큼 선구자적이었다.
장기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하면서 부족한 점 또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즉시 장기를 관장하는 뇌에게 전달하고 뇌는 주인에게 기별한다.
다른 장기들도 중요하지만 간장만큼 중요한 장기도 없을 듯싶다. 그래서인가 우리의 일상 대화 가운데 장기를 들먹이며 하는 말이 의외로 많다. 그 중 특히 간장이 많은 편이다.
배짱이 두둑한 사람을 ‘간 큰 남자’라거나 나쁜 말로 ‘그 친구 간덩이가 부었다’라고 한다.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 ‘간이라도 빼어 줄듯이 하다’, ‘애간장을 녹이다’, ‘간이 떨어지다’, ‘간이 콩알만 해지다’ 등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이러한 말들을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지만 이것은 모두 간의 기능과 관련이 있는 일차적인 표현이 의미론적으로 뜻을 더하여 관용어나 속담으로 된 것이다. 실제로 간덩이가 부을 수도 있고, 콩알처럼 작아질 수도 있으며,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들 보다 간이 큰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이차적인 뜻이 더하여 새 의미의 관용어가 된 것이다.“자 주당들이여! 올해부터는 술 적당히 마셔서 장기들 혹사 시키지 맙시다.” 장기들이 수다를 떨면서 “우리 주인이 우리들 고생 덜 시켰네요, 우리 주인님 짱이야! 하는 소리 듣고 싶지 않습니까”
<삶과술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