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케 보다 맛 좋은 淸酒 개발 (주) 草家 李昌浩 대표
철원오대쌀과 토종효모로 빚은 본격청주 ‘韓淸’
계절은 한 겨울이다. 소한을 막 넘긴 날씨가 겨울답지 않게 비를 내린다. 목말라 하던 대지가 활기를 찾는 것 같다. 비 때문인가 산야에 드리운 물안개로 벌써 봄이 왔나 싶을 정도다. 이러다가 동면에 들어갔던 개구리라도 깨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하며 대한민국의 최북단 땅 철원군 김화(金化)로 차를 몰았다. 거기에 술맛 좋은 양조장 (주)草家가 있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김화로 양조장 취재를 떠난다니까 김화가 어느 도에 있느냐고 묻는다. 하기야 김화지역에서 군대 생활을 했거나 연고가 없다면 김화를 모르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청정지역이다. 그렇지만 철원평야는 우리나라 3대 평야에 속할 만큼 드넓은 곡창지대다. 그 유명한 ‘무공해 철원 오대쌀’이 바로 이곳에서 생산된다. 좋은 쌀이 생산된다는 것은 물맛과 기후가 좋아야 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草家집’은 기와집에 비해 더 정겨운 집이다. “초가삼간 집을 지은 내 고향 정든 땅…” 홍세민이 70년 대 초 불러서 히트한 ‘흙에 살리라’를 읊조리며 도착한 (주)草家(대표 李昌浩)는 생각했던 초가집과는 거리가 먼 최신식 공장 건물이다.
철원오대쌀과 토종효모로 빚은 韓淸
내비게이션이 멈춘 곳에 당연히 있어야 할 양조장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서 확인 하니 이 대표가 나왔다.
“간판이 없네요”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고요, 하도 외지다 보니 객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아서요….”
이 대표는 인천 사람이다. 그런데 이곳 김화에 둥지를 튼 이유에 대해 “양조장의 기본은 물 아닙니까. 예로부터 술맛은 물맛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본격적으로 양조장을 설립하려고 전국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물맛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곳에 양조장을 지었죠”
그러면서 물 한잔을 건넨다. 물맛이 술 담그기엔 알맞은 연수(軟水)다. 지하 200여m 밑에서 끌어 올린 물 쳐 놓고는 여타 광물질이 섞여 있지 않은 것같다.
물 한잔을 마시고 나니 이번엔 이 대표가 5년여 기간 개발했다는 ‘韓淸’을 내놓는다. 운전을 해야겠기에 마시지는 못하고 향과 맛을 보니 “와!…”
‘한청(韓淸)’은 청주다. 약주와는 다른 술이다. 국내에서 그동안 00수복이니 차례주니 하며 출시되고 있는 청주와는 완전이 다른 술이다. 우선 색깔부터가 다르다. 소주처럼 완전 무색이다. 모르는 사람은 증류식 소주가 아니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지난 해 9월 개발을 끝내고 ‘2019년 우리 술 축제’에 출품했다. 부스를 방문한 방문객들이 처음에는 소주인줄 알고 맛을 보다가 일본 술인 사케를 우리식으로 개발한 청주란 설명에 다시 잔을 내밀고 맛을 음미하면서 “어떻게 이런 술을 만들 수 있냐”며 감탄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이 대표가 전했다.
‘韓淸’은 한국의 청주를 줄인 말
‘韓淸’은 한 마디로 깨끗하고 깔끔하다. 이유는 누룩을 사용하지 않고 오대쌀과 물, 토종효모만으로 술을 빚기 때문이다.
이렇게 빚은 청주는 알코올 도수 15%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쌀로 빚은 술에서 증류를 하지 않고도 소주처럼 맑은 술을 뽑아내다니 궁금증이 발동했지만 이 대표는 이것만은 절대 밝힐 수 없단다. 그러나 언젠가는 전국 양조장들과 비법(?)을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청주는 보통 한랭하고 공기가 청정(淸淨)한 동계(11∼3월)에 빚는다. 쌀을 쪄서 누룩과 물을 가하여 며칠 두면 효모균과 술효모가 발육한다. 이것을 독에 넣고 다시 3번에 걸쳐 찐 쌀과 누룩과 물을 가하여 잘 섞어서 저장해 두면 효모균의 작용으로 쌀의 녹말은 당분으로 변하고, 효모의 작용으로 알코올로 변한다. 보통 최고온도 14∼16 ℃로, 16∼25일간 숙성시킨다. 이것을 걸러낸 것이 탁주이고 이것을 통에 부어 30∼35일간 깨끗한 곳에 두면 맑은 청주가 된다.
그런데 초가에서는 고두밥 대신 팽화미(오대쌀)를 사용하고 누룩 대신 토종효모만을 사용한다. 여기에 약간의 과당과 젖산이 가미된다.
‘韓淸’이란 주명은 한국의 청주를 줄인 말이다. 국내뿐만 아니고 외국 특히 일본으로 수출하는 술이름에 한국을 강조해도 괜찮을까?
“그런 것도 생각 안한 것은 아니죠, 하지만 우리의 술을 팔면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여겨서 ‘한청(한국의 사케)’이라고 했습니다.”
막걸리를 ‘マッコリ’라고 처음 사용한 이 대표
草家는 2005년 7월한 설립한 회사다. 초가를 이끌고 있는 이 대표는 인천탁주를 이끌고 있는 정규성 대표 전 이영찬 대표가 큰 아버지다. 따라서 이 대표는 어려서부터 술과 인연이 있다고나 할까.
인하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일본 와세다(早稲田) 대학원에서 역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이 대표가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당시인 1992년 인천탁주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농주를 테트라 팩((Tetra Pak:종이팩)에 담아서 판매를 시작했다. 이 자체도 혁신적인 변화였다.
그런데 소성주에서 93년 1월 60박스(720개)를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 대표한테 보내왔다. 시장 조사를 해 보라는 목적이었다. 세관에서는 정식 수입품이 아니라고 딴죽을 걸었지만 사정사정하여 통관을 받아 친구들과 함께 마셨다. 마셔본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 정식으로 소성주 막걸리를 수입해서 판매를 시작했다. 막걸리를 어떻게 표현 할까 고민하다가 발음 그대로 ‘マッコリ’로 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マッコリ’라고 표현한 원조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가기 전까지는 잘 팔리던 막걸리가 이일로 한일관계가 삐거덕거리면서 막걸리 판매도 하향 길로 접어들었다. 이 대표는 차제에 국내에서 직접 막걸리를 빚어야 겠다고 마음먹고 현재의 김화읍에 2005년 7월 양조장을 설립했다.
‘草家’란 이름은 상호는 영어로 ‘CHO GA’라 쓰고 ‘초가’로 읽을 수 있고, 그 뜻도 정겨워서 지은 것인데 일본 사람들도 술집에서 그대로 ‘초가’를 주문하다.
현재 이 대표는 일본에도 초가에서 빚은 술을 수입 해다가 판매하는 회사를 운영한다. 일본에서 공부도 했고, 술을 판매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사케와 인연을 맺어 사케 빚는 양조법을 공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韓淸’을 개발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연유로 ‘草家’는 우리술을 일본에 수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설립된 양조장이라고 보면 된다.
전통도 중요하지만 현재 술맛이 더 중요하다
이 대표와 여러 시간 대화를 나누다 보니 굉장히 우리술에 대해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표는 “양조업을 하시는 분들은 근본적으로 생각을 바꿔야만 우리술을 사케나 빠이주 또는 위스키처럼 세계화 할 수 있지 전통 누룩을 사용하여 전통주만 고집하다보면 우물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이나 유럽의 여러나라에선 수 백년 술을 빚어 오면서도 전통을 앞세우지 않고 오로지 현재의 술에만 집념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역사가 얼마가 되었다. 무형문화재가 빚은 술이라 등 술 맛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를 가지고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외국에선 전혀 통하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바로 현재 눈 앞에 있는 술맛이 어떠냐가 중요하지 그 회사의 역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백년 전에 술을 잘 빚던 사람이 지금 술을 빚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술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술은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샌포드 드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속도에 쫓기는 사람들은 오히려 시간과 효율을 낭비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높은 타율을 자랑하는 야구선수는 타석에서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날아오는 공을 최대한 오래 바라보며 방망이를 최대한 늦게 휘두른다. 공이 포수의 미트에 들어가는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투구가 어디로 오는지 정확하게 판단해서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술은 과학적으로 계량적으로 빚어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초가에서는 오는 3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개최되는 ‘Prowein2020’에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참가한다. 세계 일류 양조장들의 술과 당당하게 겨누겠다는 것이다.
김치, 불고기와도 궁합이 잘 맞는 한청
우리의 청주인 ‘韓淸’과 일본 사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이 대표는 안주를 비교하면서 일본 사케는 간장+와사비 조합에 어울려 생선회에 적합한 술이라면 한청은 한국인이 항시 섭취하는 김치, 불고기와도 궁합이 잘 맞아 생선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을 때 진미를 느낄 수 있도록 개발된 술이라고 했다. 특히 사케는 기름진 로스나 매운 요리엔 맛이 어울어지지 못하는데 ‘한청’은 어느 요리건 상관없이 진가를 발휘한다고 했다.
운전 때문에 마시지 못한 ‘韓淸’을 집에 도착해서 시음했다. 700㎖ 한 병을 비우면서 참 좋은 술이라고 느껴졌다. 사실 초가에선 지난 해 가을까지 OEM방식으로 ‘둘다(18도)’를 생산한 적이 있어 필자는 둘다를 구해서 맛을 본적이 있었다. 어찌 보면 둘다 보담은 ‘한청’이 한 수 위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맛이 더 깔끔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청하 같은 술은 단 맛이 많이 올라와서 주당들이 마시기엔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데 ‘한청’은 청주 치고는 비교적 덜 단편이라서 안주 맛을 해치지 않아서 좋다.
한 잔 두잔 마시다 보면 입안에 잔향이 생기게 마련인데 마치 잔향이 철원 오대쌀의 향이 올라오는 것 같다.
혹 부엌에 있는 쌀이 오대쌀이라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닐까.
글 · 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