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록담의 전통주 스토리
박록담의 복원전통주 스토리텔링/70번째 이야기
두 번 다시 도전하고 싶지 않은 술 ‘편주(扁酒)’
‘편주(扁酒)’라는 주품명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그 의미를 깨칠 수 없다. 다만, ‘편주’의 주방문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주품명이 두 가지 있었는데, <양주방>의 ‘층층지주’와 경북지방의 전승 토속주인 ‘김천과하주’였다.
‘편주’는 매우 독특한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주품으로, 그에 따른 주방문은 <曆酒方文>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편주’와 ‘층층지주’, ‘김천(金泉) 과하주(過夏酒)’는 단양주라는 사실 외에도 술 빚는 방법에서 공통점이 많다. 그런데도 ‘층층지주’가 떠올랐던 이유는 술 빚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다. 술 빚는 과정을 살펴보면, “찹쌀을 씻어 불린 지 3일째 되는 날, 물 1동이를 백비탕으로 끓여 식히되, 일체의 날물이 들어가지 않게 한다. 씻어 건진 찹쌀을 시루에 안쳐서 질게 고두밥을 찌는데, 익었으면 퍼서 안반에 펼쳐 놓는다. 차게 식혀놓은 물을 쳐가면서 고두밥을 씻어서 차디차게 식기를 기다리는데, 고두밥을 씻고 남은 물에 누룩가루 7홉을 풀어 누룩 물을 만들었다가, 고두밥에 뿌려가면서 다시 치대어 인절미 떡처럼 된 술밑을 빚는다. 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쓰고 남은 누룩 물을 쏟아 부은 뒤, 술독 바깥 몸뚱이를 찬물로 깨끗하게 닦아 술 냄새가 나지 않게 해준다. 이어 술독은 술체를 덮어 발효시키되, 술이 익을 때가 되면 곧 밀봉해서 이불로 싸매주고, 재차 숙성시켜 찹쌀 밥알이 떠오르면 채주한다.”고 하였다.
이상의 과정이 ‘편주’를 빚는 방법인데, ‘고두밥을 씻고 남은 물에 누룩가루 7홉을 풀어 물 누룩을 만들었다가, 고두밥에 뿌려가면서 치대어 인절미처럼 된 술밑을 빚는다.’고 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 보면, ‘편주’를 빚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 수 있다. 이때의 고두밥은 찬물로 씻었기 때문에 거의 낱알 상태가 되어 있는데, 물 누룩을 쳐가면서 치대는 작업이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다. 고두밥을 물로 씻는 과정이 아니면 ‘편주’는 ‘김천과하주’와 매우 유사하다.
술을 빚는 과정이 힘든 이유의 첫째는, 고두밥이 뭉쳐지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절미와 같은 떡이 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편의상 절굿공이로 찧거나 떡메로 치면 좋겠다 싶지만, 고두밥이 물러질 때까지는 일일이 손으로 으깨듯 문질러서 점성이 생기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주방문을 생각하면서 술을 빚는 내내 ‘헛헛’하는 헛웃음을 계속 지었었다. ‘왜 이런 술빚기를 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순간 깨우친 것이 있었다. 내 ‘급한 성격’ 때문에 더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의 습관대로 모든 일을 하루에 다 끝내버리려는 급한 성격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또 헛웃음을 지었다. 식구들이나 제자들이 나의 이런 모습을 볼까도 싶었다.
어떻든 어렵게 술빚기를 마칠 수 있었는데, 찹쌀 1말의 고두밥에 누룩 7홉을 섞은 물 누룩으로 인절미 같은 술밑을 빚는다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고두밥을 두세 덩이로 나눠서 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술빚기를 마치고 나니, 절구통에 치댄 술밑(고두밥)을 넣고 다시 떡메로 쳐낸 인절미처럼 늘어지는 모습이었다. 술을 빚는 동안 계속해서 물 누룩을 발라가면서 치대어야 했으므로, 먼저 빚은 인절미 상태의 술밑과 두 번째 빚은 술밑, 세 번째 빚은 술밑이 서로 엉키지가 않았다. 술밑이 그릇에 달라붙지 않게 하기 위해 겉면에 발라둔 누룩물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형태로 술독에 담아 안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서 떠오른 생각이 “어쩌면 이와 같은 떡 형태 때문에 납작할 ‘편(扁)’자를 쓴 주품 명을 붙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주’는 고두밥을 인절미처럼 쳐서 술을 빚는 과정에 있어서는 ‘김천 과하주’와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술이고, 술밑이 완성된 형태로 미루어서는 <양주방>의 ‘층층지주’와 같은, 그러나 두 번 다시는 도전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술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술을 빚으면서 떠올랐던 생각이 맞는 것인지를 알고 싶어 다시 도전해 보았는데, 그 예상은 맞았다. 술 빚는 일도 훨씬 힘이 덜 들고 시간도 단축되었다. 한두 차례의 실험양주 끝에 떠올랐던 생각은, 고두밥을 찬물로 씻어낸 다음, 고두밥이 물기를 다 흡수하길 기다렸다가 술을 빚는 일이 그것이다. 고두밥 표면에 물기가 없어지면, 고두밥을 뭉치기가 훨씬 쉽고, 곧바로 떡메나 절굿공이로 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편주’는 감칠맛이 뛰어난 술이다.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37일 만에 술을 뜰 수가 있었다. 고두밥알도 제법 떠올랐다. 알코올도수는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단맛이 적으면서 매우 깨끗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편주’를 통해서 다시금 ‘급한 성격’을 다스리는 훈련을 할 수 있어, 매우 기분이 좋았다. 인생과 술공부가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술 공부는 이렇게 배우고 익히는 과정의 연속’인 것 같다.
◈ 扁酒方 <曆酒方文>
◇ 주 원료:찹쌀 1말, 누룩가루 7홉, 백비탕 1동이(말)
◇ 술 빚는 법:①찹쌀 1말을 백세 하여(물에 백번 씻어 매우 깨끗하게 헹군 뒤, 새 물에 담가 3일간 불렸다가, 다시 씻어 말갛게 헹궈서) 물기를 빼 놓는다. ②쌀을 불린 지 3일째 되는 날, 물 1동이를 백비탕으로 끓여 식히되, 일체의 날물이 들어가지 않게 한다. ③씻어 건진 찹쌀은 시루에 안쳐서 질게 고두밥을 찌는데, 고두밥이 익었으면 퍼서 안반에 펼쳐 놓는다. ④차게 식혀놓은 물을 쳐가면서 고두밥 씻어서 차디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⑤고두밥에 뿌리고 남은 물에 누룩가루 7홉을 풀어 물 누룩을 만들고, 고두밥에 뿌려가면서 치대어 인절미 떡처럼 된 술밑을 빚는다. ⑤6. 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쓰고 남은 물 누룩을 쏟아 부은 뒤, 술독 바깥 몸뚱이를 찬물로 깨끗하게 닦아 술 냄새가 나지 않게 해준다. ⑦7. 술독은 술체를 덮어 발효시키되, 술이 익을 때가 되면 곧 밀봉해서 이불로 싸매주고, 재차 숙성시켜 찹쌀 밥알이 떠오르면 채주한다.
<扁酒方> 粘米一斗百洗浸之又以水一盆百沸猛煮而切忌生水盛置于盆三日後出浸水一斗米作飯攤置安板上而亦切忌生水取百沸水洒勻候極冷後以曲末七合同合於上百沸冷水另搗於安板上成餠調合後納于缸中限以手指第二節盛置勿褁布帒等物以篩(更更)使疏通其氣以冷水磨上過其缸可也易生蠛蠓及其熟卽褁之(緩)熟則粘米蟻上
(찹쌀 1말을 백번 씻어서 물에 담가둔다. 또 물 1동이를 펄펄 끓여서 절대로 생수는 가까이 하지 말고 동이에 담아둔다. 3일 뒤에 물에 담가 두었던 쌀로 밥을 지어 안반 위에 헤쳐 놓되 생수는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게 한다. 그리고 앞서 잘 끓여놓은 물로 밥을 씻어서 냉각시킨다. 누룩가루 7홉을 위에 끓여서 식힌 물로 반죽을 하여 안반 위에서 주물러서 떡을 만든다. 위의 것을 모두 섞은 후에 항아리에 담는데 손가락 둘째 마디 정도의 공간을 두고 담는다. 천으로 싸 놓지 말고 체로 덮어서 공기는 통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냉수로 항아리를 깨끗이 씻어 주어야 한다. 멸몽이 생기기 쉽게 때문이다. 술이 익을 때가 되면 곧 봉해서 싸주어야 한다. 익으면 바로 찹쌀 벌레가 뜬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