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①
지난 2년간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를 이끌어 주셨던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가 지난 호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에 관한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들을 만납니다. 많은 구독 바랍니다.<편집자 주>
인간의 의식에서 ‘신화(myth)’와 ‘로고스(logos)’의 관계는 서로 반목하는 관계가 아니다. 다만 시대적인 기능을 할 뿐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의 상징적 기능을 역사적, 시대적 변천과 함께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신 디오니소스의 의미가 강조되거나 문제로 제기되는 때는 항상 ‘이성의 위기’와 그에 대한 반성이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시대에서이다. 디오니소스는 각 시대마다 다른 의미, 다른 형태로 수용되었지만, 그 가운데 그가 대변하고 맡은 ‘시대 비판’, ‘이성 비판’의 역할은 항상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디오니소스가 고대 그리스 이후 낭만주의와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에서 다시 등장한 이유이다. 낭만주의와 현대에서 신화성의 의미가 강조되고, 특히 디오니소스가 이 신화를 대표하는 신으로 등장했던 것은, 이때 각각 다른 형태로 나타났던 이성과 합리성의 독주에 대한 견제 및 이성 영역의 확장 자체를 포괄적으로 상징할 수 있었던 것이 디오니소스 신화이기 때문이다.
이성과 분리될 수 없는 신화 자체의 운명, 이것은 곧 디오니소스의 운명이다. 물론 디오니소스 주제가 이때 ‘로고스(logos)에서 미토스(mythos)로’라는 낭만주의와 현대 사이의 공통적인 입장을 묶어주는 말임은 분명하다. 낭만주의에서나 현대에서나 신화적 사유가 ‘이성 비판적’, ‘시대 비판적’ 태도로서 심미적인 것을 철저히 강조한다는 점도 당연한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Zeus)와 테베의 왕비 세멜레(Semele) 사이에서 태어난 ‘신과 인간 사이의 반신반인’이다. 그는 태어 날 때에 불타는 빛의 세례를 받고 비에 의해서 길러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상징적 메타포로서 ‘비’는 포도 줄기와 잎에 생기를 북돋운 것으로, 뜨거운 햇빛은 포도 열매를 익게 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연유로 디오니소스는 장성한 뒤에 그는 포도를 발견하고,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기술을 터득하였다.
야생의 사유로서 신화
‘신화’를 뜻하는 ‘미스(myth)’는 그리스어의 ‘미토스(mythos)’에서 유래한다. 이는 논리적인 사고 내지 그 결과의 언어적 표현인 ‘로고스(logos)’의 상대어이다. 사실 그 자체에 관계하면서 그 뒤에 숨은 깊은 뜻을 포함하는 ‘신성한 서술(Sacred narrative)’이라 할 수 있다. 신화에서 로고스, 즉 이성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나온 ‘미토스(신화)’와 ‘로고스(이성)’는 모두 ‘말하다(legein)’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다. ‘미토스’가 신이나 왕족, 영웅이 말할 때 쓰인 동사 ‘미테오마이
(mytheomai)’에서 나온 반면, ‘로고스’는 여자나 노예, 모략가가 말할 때 쓰인 동사 ‘레게인(legein)’에서 파생했다. 따라서 ‘미토스(mythos)’는 천상의 서술로 ‘고결한 이야기(A noble story)’이고, ‘로고스(logos)’는 지상의 언어로 ‘비루한 이야기(A mean story)’가 된다.
미국의 종교철학자 브루스 링컨(Bruce Lincoln, 1948- )은 이러한 ‘미토스’와 ‘로고스’의 위계질서를 뒤엎은 사람이 철학자 플라톤이라고 하였다. 예술을 이데아의 복제품으로 평가 절하한 플라톤이 시인의 언어로서 ‘미토스’를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몰아붙이고, ‘로고스’를 철학자들의 ‘참된 이야기’로 새롭게 포장하면서, ‘미토스 = 신화 = 허무맹랑한 것’과 ‘로고스 = 이성 = 진실한 것’의 공식이 확립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의 세계에서 인간세계로 인식전환을 볼 수 있는데, 사실은 그의 이데아론과는 모순된다. 그는 천상의 세계를 연구주제로 삼은 철학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Poetics)>에서 ‘미토스’를 이야기의 순서를 정한 ‘극의 줄거리’, 즉 ‘플롯(plot)’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미토스’에서 떠나 ‘로고스’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표현하기 곤란한 것을 기술하기 위해(소크라테스 이전), 논리적 사색을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플라톤) ‘미토스’의 비유적·직관적 표현을 자주 이용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토스와 로고스’를 구별하였는데, 철학은 경이(驚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미토스’도 불가사의한 것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미토스’를 사랑하는 사람도 어떤 의미에서는 철학자라 하였다.
신화에는 여러 종류와 갈래가 있고, 그 구조와 성격도 복잡하여 간단히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각종 신화에 공통되는 일반적·기본적 성격을 든다면 대략 다음과 같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의 기원에 관한 신성한 전승 설화인데, 그것은 단순히 태고에 있었던 사실에 관한 서술에 그치지 않고, 현재에 있어서의 자연·문물 ·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까지도 규제력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즉 신화는 여러 가지 현실적 존재인 우주·인간·동식물, 특정의 인간 행위·자연 현상·제도 등이 어떻게 하여 출현하였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서, ‘창조’에 관한 설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창조역사의 주역은 여러 가지 초자연적 존재들이고, 그들은 태초에 맡은 역할로 알려져 현재의 모든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요컨대, 신화는 초자연적 존재의 창조 활동을 설명하고, 그 활동의 성스러운 성격(초자연성)을 나타내며, 또한 성스러운 것의 현실에 대한 참여를 의미한다.
인간은 죽어야 할 존재이고 양성(兩性)으로 나뉘었으며, 서로 싸우는 등의 현상은 초자연적 존재의 간섭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신화의 진실성은 실제로 존재하고 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물과 현상으로 증명된다. 이를테면, 우주창조 신화가 진실인 것은 세계가 현존함으로써 증명되며, 죽음의 기원 신화의 진실성은 죽음이라는 사실로써 입증된다.
레비 스트로우스(Claude Lévi-Strauss)는 그의<신화와 의미(Myth and Meaning: Cracking the Code of Culture, 1995)>에서 ‘우리가 역사를 신화의 연속으로 이해한다면, 그 경계는 허물어질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인간의 삶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하는 보편적 규칙을 찾는데 노력했다. 원시사회를 통해 보편적 규칙을 탐구하던 그는 원시사회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신화’에 주목했다.
이때 ‘신화’란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해결되지 않는 모순을 상상적으로 해결하려는 이야기’이다. 이는 인간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해결된 것처럼 옮김으로써 그 문제에 대한 불안을 줄이려 했다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본 ‘신화’는 ‘불안 해소를 위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가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되고, 햇빛에 바라면 ‘역사’가 된다.’는 은유적 표현처럼 신비스러운 데가 남아있다. 그렇지만 신들이 ‘이야기’로 인간을 가르친 신화의 맥락이 존재한다.
미국의 인류학자 크라프(H. Krappe)는 “신화란 특별한 성격을 지닌 이야기이며, 그 속에서 신들은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하고, 보테로(J. Bottero)는 ‘이미지화 된 철학’으로 신화를 정의한다. 신화는 고쳐지지 않은 문명의 원판이며, 야생의 사유다. 모든 어른 속에 아이가 들어 있듯이 인류는 그 사유 속에 원시를 품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문명은 원시로부터 시작되었다. 원시를 품지 않은 문명은 죽은 것이다. 신화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오래된 원시의 철학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는 수천 년간 끊임없이 문학과 회화, 조형예술과 음악 등 다양한 장르 속에서 예술적 소재로, 또 영감의 원천으로 수용되어왔다. 그 가운데 주신 디오니소스는 단순한 신화적 소재로 등장하는 여타 그리스 신들이나 영웅적 인간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럽의 중요한 정신사적 변화과정에 등장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신화의 시대가 끝난 이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항상 새로운 의미와 상징을 획득하는 유일한 신화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나 배경은 무엇인가? 아마도 분명한 속성을 통해 등장하는 대부분의 신화의 신들과 달리 디오니소스의 본질은 구체적으로 특징지을 수 없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가 상징하는 무한한 영역, 규정할 수 없는 이중적이고 모호한 본성, 대립적인 성격을 자신 안에 동시에 지니고 있는 모순성 등 독특한 존재양식은 그의 출생 신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주신 디오니소스는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이중적 존재로서 ‘신’ 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운명’, 즉 삶과 죽음을 둘러싼 고통의 삶을 사는 특별한 상황에 있다. 디오니소스는 인간인 세멜레의 자궁에서 첫 번째 죽음을 맞은 후 제우스의 허벅지로부터 다시 태어났다. 제우스로부터 직접 이루어진 이 두 번째의 탄생은 어머니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디오니소스가 신일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즉 신화의 신들에 속하면서도 이들과 거리를 취하는 디오니소스의 예외적인 위치는 디오니소스에게 신화적 사유 자체에 대한 상징성을 부여하는 계기이다.
제우스의 탄생신화
가이아(Γαῖα)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이기도 하고, 세상을 모두 지배하는 지배 여왕이라는 애칭도 있다. 로마 신화의 텔루스(Tellus) 영어 이름 테라(Terra)와 동일시된다. 지모신의 형태로 보면 된다.
헤시오도스가 쓴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카오스(Chaos)와 타르타로스(Tartaros) 등과 더불어 태초부터 존재해왔던 ‘태초신’이라고 하며, 또한 카오스의 유일한 아내이자 딸이라는 설도 있다. 하늘을 신격화 한 세계의 지배 신 우라노스(Uranus)와 바다의 신 폰토스(Pontus)의 어머니이자, 또한 어둠의 신 에레보스(Erebos)와 밤의 여신 닉스(Nyx)와 아이테르 등 많은 남매들을 낳은 어머니 신이다.
아버지 카오스를 남편으로 최초로 맞이하고 에레보스, 닉스 등을 낳았다고도 한다. 또 아들 우라노스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족과 퀴클롭스(Cyclopes), 퓌톤(Phyton) 등의 괴물을 낳았다. 우라노스가 크로노스에게 거세를 당한 후에는 또 한 명의 아들 폰토스를 남편으로 맞이했다고 한다. 허나 어머니 신이여서 손자까지도 그녀를 품었고 가이아의 또 다른 남편들 중에서는 티탄족의 왕이자 아들인 가의 신 오케아노스(Ōkeanós)와 손자인 포세이돈 그리고 제우스까지 그녀의 많은 남편들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
서양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시작은 대지의 신 가이아(Gaia)로부터 시작된다. 가이아는 자신이 낳은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와 결합해서 크로노스와 제우스에 이르는 그리스 핵심 계보를 형성한다. 제우스를 기준으로 크로노스(Kronos), 우라노스는 각각 아버지, 할아버지에 해당된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