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 칼럼
천상병의 막걸리론
박정근(대진대 교수, 윌더니스 문학 주간, 소설가, 시인)
중국에서 술을 좋아하는 시인이라면 단연코 이백과 두보를 손꼽지만 한국에서는 두말 할 것 없이 천상병을 떠올린다. 여기서 애주가라면 술로 비극적인 파멸을 맞이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음주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 인생을 만끽하기 위해 술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주선에 낄 수 없으리라. 그런 위상을 지닌 시인에게는 술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동인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천상병(千祥炳, 1930년 1월 29일-1993년 4월 28일) 시인은 인생에 대한 쾌락주의자로서 필요충분조건을 지녔다. 그는 술과 가까이하면서 행복했고, 그런 삶을 시로 노래했다. 그런 탓인지 그의 시인적 기질에서 술을 빼면 어쩐지 허전하게 느껴진다. 천상병 시인이 술을 좋아했다는 전기적 사실은 평생 술을 가까이 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막걸리를 조금씩 음미하면서 소일을 하곤 했다. 그의 일상에서 술이 없다면 그는 중심추가 빠진 팽이처럼 돌다가 맥없이 쓰러지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었으리라.
술의 애호가가 되려면 술의 긍정성을 체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술을 마시고 이웃이나 친구들과 싸우는 부류는 애주가의 자격을 상실한다. 애주가라면 어찌 술을 부정적인 목적에 이용할 수 있겠는가. 술을 마심으로써 사랑과 우정이 더해지고 멋과 우아함을 얻을 수 있어야 진정한 주선(酒仙)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삶은 그리 즐거움의 연속이 아니다. 어쩌면 매일매일 따분한 일상을 반복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반복되는 일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을 준다. 오죽하면 사뮤엘 베케트가「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희망과 구원의 상징인 고도는 오지 않고 하루 종일 따분하게 그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를 처절하게 묘사했겠는가. 하지만 친구나 연인과 함께 나누는 술은 사막 같은 따분한 삶에 생명수를 주는 오아시스로 인식된다.
살기 위해서 먹는 빵은 생명을 유지시켜주지만 재미를 주지 못한다. 하지만 한 잔의 술은 단조로운 인생을 재미있는 게임으로 변화시킨다. 빵을 마련하려는 생활인의 시각으로는 한 잔의 술로 재미를 찾으려는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천상병의 아내는 생활인이었기에 빵 대신에 술을 찾는 시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탓하였던 같다. 시인은 술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를 천진한 아이의 마음으로 나무란다. 그는 일상의 권태를 한잔의 막걸리로 극복하였다. 하지만 그는 가끔 맥주 한잔의 맛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어쩌다 원고료가 나오면 그걸 명분으로 맥주 맛을 보려고 시도한다. 몇 달에 한번 좋아하는 맥주 한잔을 마시는 기분을 생활인인 아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자못 서운할 수밖에 없다.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한 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천상병 ‘막걸리’ 부분)
흔히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술을 금기시하는 사건은 가족에서 흔히 일어난다. 특히 집안에서 과음하는 남편들에게 바가지를 긁는 아내들의 일화는 다반사로 발견할 수 있다. 천상병 시인 부부도 예외가 아니었던 같다. 어느 아내가 과음하는 남편을 좋다고 방치하겠는가. 아내들의 남편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잔소리이다. 가난한 시인이 밤낮으로 술을 즐기는 것을 보고 아내는 술을 사는 비용이 아까워 남편의 무능을 나무랐으리라. 하지만 천상병 시인의 귀에 아내의 잔소리는 그저 남편을 아끼는 아내의 최소한의 관심으로 인식될 뿐이다.
천상병 시인은 아내에게 음주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이해시키고 싶어 했다. 그래서 천상병은 막걸리를 마시는 행위만이 그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고백한다. 쾌락주의자의 최고의 가치는 즐거움이며 주선(酒仙)에게는 술을 마심으로써 유일한 쾌락을 느낄 수 있다. 술을 마시는 것으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데 그걸 그만두라는 것은 삶의 본질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삶의 최고의 쾌락을 주는 막걸리는 그저 술이 아니고 육신을 유지시켜주는 밥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천상병 ‘막걸리’-
세속 사회의 번뇌를 떠나서 한 잔의 막걸리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천상병 시인이야말로 거의 도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남보다 더 소유하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세속인들이여!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들이 평등하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리고 어떤 권력과 금력도 그대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 설혹 그런 아귀다툼에 빠져 있다가도 가끔은 한 잔의 막걸리를 기울이며 인생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기 바란다. 아마도 그런 명상을 하며 천상병 시인의〈막걸리〉를 조용히 읊조리면 금상첨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