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뇨기과 전문의 남재만 박사의 저서 <서로에게 말하고 싶은 배꼽밑 이야기>를 분재해 본다. 이 책의 내용은 모 잡지에 인기를 얻으며 연재된 후 단행본으로 발행, 당시(1999년) 전국적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간 인기도서 였다. 남재만 박사는 대구에서 출생, 경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전문의며, 시인이자 수필가로 활동하며 “시문학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저서로는 시집 : <까치소리>, <아스팔트에 고인 물>, <아직도 하늘은>, <하느님 전상서> 등이 있고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이 글은 뭐꼬?
현대는 성의 방임시대요, 성의 인스턴드 시대이며 동시에 섹스토피아 시대이기도 하다. 총각은 멸종되고 처녀는 희귀동물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사람들은 성(性)에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모르면서도 알고 있고,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것이 바로 성이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한다. 그래서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이고 나쁘게 말하면 개판이다.
우리는 이제 성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인류의 삶이 활력소이며, 익살의 원천이고, 소망의 친구인 동시에 행복의 최대공약수인 섹스를, 오염된 수렁에서 건져 올려야 한다는 말이다. 섹스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녹아들어가 있다. 예술, 철학, 종교, 문학 그리고 의학이 거기 들어가 있고, 사람들의 희로애락도 거기서 표출된다. 따라서 이 글은 단순한 의학강좌가 아니다. 척박한 인생의 삶의 토양을 일구어, 삭막한 가슴에 한 자락 훈풍 같은 잔잔한 재미와 미소를 머금게 할 것이다.
인간의 특혜
젊은 남녀가 만나 다방엘 갔는데 서로가 찌릿찌릿 전류가 흘렀다. 그래서 아가씨가 “자기 멋쟁이”라고 했다. 그 다음 그들은 나이트클럽에 갔다. 한바탕 신나게 흔들고 나서 “자기 깍쟁이”라고 아가씨가 말했다. 그 다음 코스로 그들은 자연스럽게 모텔로 갔다. 모텔에서 나오면서 아가씨는 남자를 꼬집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기 악마”.
처음 만나서 끝내주기까지 불과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초특급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이래서 인스턴트 섹스인 것이다.
Sex란 말은 원래 Secare란 라틴어에 근거한 Sexus란 말에서 유래한 것인데, 그 것은 ‘끊다’, ‘나누다’, ‘분리하다’라는 뜻으로,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눈다는 그런 단순한 뜻으로 사용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어쩌다가 오늘날 성행위를 지칭하는 말로 둔갑을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동물들의 섹스는 종족보존을 위한 부득이한(?) 생식행위일 뿐이지만, 인간의 섹스는 종족보존은 물론이고, 섹스를 엔조이할 수 있는 플러스 알파의 특혜를 조물주로부터 받았다. 그것도 다른 동물들은 일정한 시기에만 섹스를 하지만, 인간은 차한에 부재하며 완전자율이고 전천후다.
인간이 뭐가 그리 살가워서 조물주가 이토록 엄청난 특혜를 줬는지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쨌든 다음과 같은 우스갯 소리가 있다. 믿거나 말거나.
태초에 조물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각각 알맞는 시기에 섹스를 하도록 정해주셨는데, 인간의 섹스 시기를 미처 정해주기도 전에, 이미 날은 저물고 피곤하기도 해서 그만 보따리를 싸려고 했다. 그걸 본 인간은 기겁을 해서 조물주의 손을 부여잡고는, 우리는 어떡하라는 말이냐고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자 조물주께서는 크게 하품을 한 번 하시고는, 몹시 귀찮고 피로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구, 나도 모르겠다. 네 멋대로 해라”.
이렇듯 섹스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특혜를 받았기에, 인간이 그만큼 섹스를 남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는 다름 아닌 그 섹스의 남용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다.
즉 포로메테우스가 신들의 전용물인 불을 훔쳐서 인간들에게 갖다 주었을 때, 발끈한 신들은 독수리로 하여금 영원히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게 하는 형벌을 내렸고, 그걸로도 직성이 풀리지를 않아 ‘판도라’라고 하는 여자에게 상자를 하나 주며,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동거하라고 했다. 단, 그 상자는 열어봐서는 안 된다는 경고와 함께.
그러나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인간 아닌가. 어느 날, 호기심에 못이기 판도라는 몰래 그 상자를 열어보았고, 그 순간 온갖 재앙이 와그르르 쏟아져 나왔다. 판도라는 엉겁결에 상자를 닫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다만, 희망하나만 빠져나오지 못하고 상자 안에 남았다고 한다.
여기서 ‘상자’는 여성의 생식기를 상징한다. 그러니 함부로 시도 때도 없이 열어젖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것도 남편인 에피메테우스가 연 것이 아니고, 아내인 판도라가 스스로 열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는 이 신화에서 섹스 남용의 엄청난 재앙을 경고한 그리이스 사람들의 지혜를 읽을 수가 있다. 하지만 에덴동산에 있는 금단의 과일을 끝내 따먹었기에, 인간이 동물적 존재에서 벗어나 희로애락 오욕칠정에 울고 웃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런 인간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판도라도 그 금단의 상자를 기어이 열어젖혔기 때문에 인간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이걸 알아야 한다. 판도라가 그 상자를 닫았을 때 , 그 속에 희망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남았다는 사실은, 인간에겐 이제 희망이 없다는 말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상자 속에 갇혀 있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섹스가 요즘처럼 천덕꾸러기가 된 때도 그 유례가 없었다. 퇴폐, 음란, 성폭력, 성의 상품화 그리고 인신매매라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고, 이른바 제비족이 날렵하게 날아다니고, 꽃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설치고 다니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성에 대한 욕망, 즉 성욕은 젊음과 정력과 힘과 박력의 상징이다. 그러니 이토록 소증한 성욕을 함부로 발산할 게 아니라, 인류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성문화를 창도(唱導)해 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仁)이 곧 인(人)이듯, 성(性)은 곧 성(聖)이기 때문이다.
“노인은 성욕에서 해방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존경할 만하다”라고 익살을 부렸던 쇼펜하우어도 이 성욕의 위대함을 이렇게 칭송하고 있다.
“성욕은 욕망 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것이며, 소망 중의 소망, 의욕의 집중이다. 이것의 만족은 행복의 절정이며, 노력의 최종 목표이고, 이것이 달성되면 모든 것이 달성된 것 같고, 이것이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한 것 같다. 또 이것은 전쟁의 원인이요 평화의 목적이며, 모든 진지함의 근거요 익살의 목표이며, 마르지 않는 재치의 샘이요 모든 암시의 열쇄인 동시에, 모든 비밀의 신호이자 모든 눈치의 총화이다”
사람들이여 시도 때도 없이 함부로 판도라의 상자, 그 뚜껑을 열어젖히지 말라. 조물주께서 유독 인간에게만 엄청남 섹스의 특혜를 주신 그 깊은 뜻을 아는 사람은, 섹스를 함부로 낭비하지 않는다. 자료제공 : 허홍구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