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그린빈으로 와인도 빚고, 커피냑도 생산

폴리 그린빈 와인 제주커피수목원 김영한 대표

커피 그린빈으로 와인도 빚고, 커피냑도 생산

‘꼰대’ 마인드 버리니까 창의적인 생각이 술술

 

제주의 6월은 녹색의 바다다. 녹색의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에 혹사당했던 눈이 모처럼 호강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육지 사람들이 간만에 제주를 찾았을 때 이런 감정이 생겨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바람결에 들었다. 제주에 커피로 와인을 빚는 와이너리가 성업 중이라는 것. 맛이 기가 막히다는 것. 세계에서 커피로 술을 빚는 것이 처음이라는 것 등등 호기심이 발동했다. 제주도가 외국도 아닌 우리나라 영토인데 마다할 수 있겠는가.

산방산이 바라보이는 커피수목원에서 세계 최초로 커피와인을 빚고 있는 김영한 대표.
세계 최초로 커피 그린빈으로 와인을 빚는다

커피 와인을 맛보기 위해 불원천리 마다 않고 찾은 ‘제주커피수목원(대표 김영한 72)’은 큰 규모는 아니었다. 꽁지머리 스타일인 김영한 대표가 반갑게 맞아 준다. 반나절 쯤 김 대표와 지내다 보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실감난다. 생각 하는 것이 청년 같았다.

“꼰대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지론이란다. 그래서 김 대표는 벌써 오래전에 마음속에서 “‘꼰대’를 사망시켰다”고 했다.

커피와인 이야기에 앞서 ‘꼰대’이야기부터 꺼내는 것은 그래야 김영한 대표가 커피수목원을 하게 된 동기를 이해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먼 훗날이면 모를까 8년 전 제주도에 커피농장을 차린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젊은이도 아닌 60대 초로가 커피농장을 하겠다니 지인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무모한 짓이라며 혀를 찼다고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마늘밭이었던 현재 수목원 부지를 매입하여 커피농장을 시작했다. 그러나 커피농사란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커피나무를 심고 기르는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했다. 그래서 커피 생산국으로 날아가 커피농장에서 배우기도 하고 커피에 관한 책도 구해도 공부도 했다.

차제에 커피를 제대로 알겠다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했다. 커피에 필이 꽂힌 것은 남달리 도전정신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영한 대표가 자랑하는 증류기에서 생산한 커피냑
주변 사람 모두 말렸지만 커피농장 시작

김 대표는 10여 년 전 서울생활을 접고 이곳 제주로 낙향했다. 김 대표는 젊어서부터 제주도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제주의 바다와 산, 그리고 물과 공기 같은 자연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놀고만 지낼 수 없어 커피에 대해선 1도모르면서 산방산 앞 해안가에다가 커피 전문점을 차렸다. 그 흔한 프랜차이즈가 아닌 독자적인 카페였다.

“커피를 팔다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커피농사를 지어서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무모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꼰대’ 생각을 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미래형이다. 과거지사에 대해선 과묵할 만큼 입을 다문다. 그러나 김 대표의 지난날들은 누구 못지않은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커피와인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처음부터 커피와인을 생각 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엔 커피농장이 여러 번 실패 했지만 커피나무가 잘 자라자 커피 잎으로 녹차처럼 차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맛이 녹차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커피나무가 자라면서 하얀 꽃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빨간 과육을 먹어 보니 단 맛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이 과육으로 술을 담가보았습니다.”

커피나무 꽃은 보기 드문 꽃이다.
커피열매

 

 

 

 

 

 

그래서 처음에 김 대표는 커피과육으로 술을 담그려고 주조장 면허를 신청했더니 국내에선 커피과육이 식용으로 분류되지 않아 유해여부를 검사해 오라는 것이었다.

민간이 이를 검사하기란 쉽지 않아 커피의 생두(green bean)로 방향을 바꾸었다. 따지고 보면 과육과 생두의 비율이 3:7이어서 자재확보도 훨씬 수월했다.

제주대학 식품영양학과 박성수 교수의 산학협력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커피와인(Coffee Wine)이 2015년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제조과정은 그린빈을 분쇄하여 발효 통에 넣고 3-4주를 기다리면 된다. 다음공정은 일반와인 제조와 비슷하다. 이 커피와인은 세계 특허를 받아둔 상태다.

서울국제주류박람회에 참가한 김영한 대표가 참관객들에게 커피냑을 시음토록 하고 있다.
맛은 어떨까?

소주, 맥주, 막걸리 같은 술에 쪄든 입맛으로 커피와인 맛을 표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렇다고 레드나 화이트와인 맛도 아니다. 기존의 술맛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끌리는 맛이다. 단맛이 올라오기도 하고 커피향이 나오기도 한다. 알코올 도수가 11도라 여성들이 마시기에 적합할 것 같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혼술족에 딱 어울리는 술. 또 최근 결혼 피로연에 와인이 많이 나오는데 와인이 끝나고 아이스와인을 대신해서 커피와인을 내 놓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갖게 한다.

김 대표는 술을 잘 못 마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술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면 커피와인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철저하게 소비자 입장을 생각하고 와인을 빚고 있습니다.” 이는 김 대표의 전공인 마케팅 전략이라고 할까.

김 대표는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커피도 좋아하고 예술도 좋아한다.”는 생각에 주명(酒名)도 예술 같은 와인과 브랜디를 만든다는 뜻으로 ‘아이엠 오페라(IAM OPERA)커피 와인’이라고 지었다.

오페라공연을 펼치는 오페라 하우스
커피와인을 증류한 술에 커피진액 넣은 ‘커피냑’은 신의 한수

와인을 빚는다면 다음 단계는 자연스럽게 코냑으로 넘어가기 마련. 김 대표는 커피와인을 증류시켜 코냑을 만들었다.

모든 술들이 증류과정을 거치면 무색무취가 된다. 커피냑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외국의 유명 코냑들은 이 증류주를 오크통에 넣어 수년간 지하저장고에서 숙성시켜 오크통의 갈색깔이 배도록 한다. 그래서 오크통에서 숙성된 코냑이나 스카치들은 비슷한 암갈색을 띠게 된다.

커피냑이 제주화산석으로 빚은 옹기에서 숙성되고 있다.

좀 더 좋은 코냑을 생산하기 위해 김 대표는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코냑에 대해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다 할 아이디어를 얻지 못하던 차에 프랑스 공항 면세점에서 유명하다는 코냑 한 병을 구입했다. 이 때 점원이 “코냑을 맛있게 마시려면 코냑에 약간의 커피를 타서 마셔봐라 그러면 맛이 더 좋아진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 소리를 듣고 귀국하자마자 커피와인을 증류한 술에다가 커피를 내려서 타보니 색깔부터 맛이 기가 막히더라는 것. 김 대표의 표현대로 ‘신의 한 수’.

그래서 40도짜리 아이엠 오페라 커피냑(Coffee Nac)이 탄생되게 되었다.

현재 제주커피수목원에서는 커피와인(11%) 375㎖는 18,000원, 커피냑(40%)은 30,000원에 판매한다. 전화 주문도 가능하다.

‘2019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스피릿 브랜디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당들 유명 코냑과 비교해도 손색없다는 ‘커피냑’

혼자만 커피냑을 마시고 평가하는 것은 객관성이 떨어질까 봐 지인들과 함께 마시고 평가를 부탁했다. 술 좀 마신다는 사람들이다.

한 마디로 향이나 맛, 목넘김에 있어 유명 코냑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하기야 이 커피냑은 지난 해 조선비즈가 주최한 ‘2019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스피릿 브랜디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코엑스에서 개최한 ‘2020 서울국제주류박람회’에서도 커피와인과 커피냑은 대단한 주목을 끌었다. 외국인들도 커피의 그린빈으로 와인을 제조했다는 말에 놀란 눈치, 그러면서 엄지 척을 한다.

주말이면 김석철 오페라 가수가 직접 노래를 부른다.

 

주말에는 김석철 오페라 가수가 펼치는 오페라도 들으며 커피와인 즐겨

주명을 오페라고 한 것은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욕망도 컸던 것 같다. 단순히 오페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아무것도 없다면 이 또한 고객들에게 결례가 될까 싶어 진짜로 오페가수인 김석철 씨와 손잡고 주말이면 오페라 공연을 펼친다. 비롯, 작은 오페라 하우스이지만 여기서 오페라 연주도 들으며 커피체험도 가능하다.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도 마시고, 와인도 마시며 주말의 오후 한 때를 보낸다는 것. 커피와 와인향에 취해보라 이것이 바로 현대인들의 로망 아니겠는가.

김 대표는 삼성전자 출신으로 국민대학에서 마케팅 전략을 강의 하던 교수로 수십 권의 책을 썼다. <펭귄을 날게 하라>, <삼성처럼 회의하라> 등 70여 권의 책을 집필한 그는 최근 제주 커피농사에 도전한 이야기를 담은 책 <꿈이 있으면 늙지 않는다>를 펴냈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총각네 야채가게>도 그가 지은 책이다. 현대차, LG, SK 등 대기업 마케팅 교육을 진행했다.

김영한 대표가 꿈꾸고 있는 커피수목원의 미래.
김 대표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우선 빠른 시일 내에 하고 싶은 것은 라이프스타일 와이너리를 조성하여 드라이브 스루 웨딩홀을 만드는 것입니다. 폴리페놀 함량이 높은 그린빈을 자연 발효시켜서 그린빈 와인을 만들고 나서 나오는 부산물로 화장품을 만들 계획입니다. 폴리페놀 성능은 다이어트에도 좋지만 피부에도 좋은 물질입니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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