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법화산 아래 구름이 전하는 말
육정균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시인/부동산학박사)
2개월이 넘는 장마다. 빗줄기가 내리는 창가에 앉아 커피 한 모금을 머금고 저 멀리 법화산 중턱으로 흘러가는 비구름을 바라본다. 하느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구상에 인류를 살게 하실 때, 먹거리며, 집 등 모든 물자를 넉넉하게 만드실 것이지, 왜 이리도 메마르고, 부족하게 만드셨을까? 서로 싸울 필요 없이 풍족하고 넘치게 할 수는 없었을까? 요즘 시중에 민감한 부동산정책 변화에 대한 아우성을 보고 스치는 생각이다.
지구상 어느 곳을 가더라도 돈과 권력을 가진 자의 차이가 있다. 갑부에서 거리의 걸인까지 최극빈자가 있다. 아무리 부자나라에도 ‘가난’이 함께 있는 것을 보면 “가난은 나라도 구제할 수 없다.”는 격언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가난은 벗어나기 어려운, 깊은 뿌리를 가진 ‘사회·경제적 현상’이다.
가난이란 문제는 접근하기도 어렵지만 그 해소 방도를 찾는 일은 더 어렵고, 좋은 결과를 얻기는 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가난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하나의 사회적 ‘계층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약 500만 년 전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直立)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뇌용적(腦容積)이 450cc 정도의 원생인류이다. 현대인인 호모사피엔스의 뇌용적이 1400cc인데 비하면 1/3밖에 되지 않지만, 그들은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채집과 수렵으로 생활했다.
그런데 채집과 수렵에서 모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언제나, 모두가 똑같은 먹거리나 수확물을 얻었을까. 그렇지 않다. 기량과 능력에서 차이가 있었을 것이고 그 만큼 수확물에서도 차이가 나게 된다.
그렇게, 처음부터 우·열은 존재한 것이고 그 우·열에서 비롯된 빈부의 차이는 인류의 시작부터 함께 존재해 왔다. 사회공동체의 모든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우·열이 갈리며, 우열은 외모에서부터 의지까지 다양하다.
비록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경우에도 기본적인 자질과 의지가 부족하여 경쟁에서 지면 도태와 자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빈부문제에 접근하는 기본자세는 언제나 이런 사실 앞에서 정직해야 한다. 결국, 잘 살고 못 사는 것,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고 건강한 삶과 가족복지를 다시 유지하는 것은 모두 국민 개개인에게 부여된 삶의 무게이자 책임이다. 오직 개인이 의지를 갖고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삶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의 책임은 없다는 것인가? 대통령은 서민을 돌보지 않고, 집권 여당은 덜 가진 사람들까지 외면해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것도 커다란 울타리와 단계적 사다리만 반드시 제공하면 되지, 국민 개개인의 가난까지 모두 해결하려는 것은 지나치다. 왜냐하면,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쇼와 척이 되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인 서민의 기준을 주택(집)의 소유 유무로 구분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서민(庶民)이고, 주택을 소유한 사람은 부자(富者)라 구분한다.
그러나 주택을 소유하지 않았지만 20억대 임대주택을 전세로 사는 500억대 자산가도 있고, 소유한 주택이 변두리의 40년 경과한 10평짜리 다세대 주택이어서 5천만 원에도 팔리지 않는 주택을 가진 평범한 시민인 경우도 많다.
국가가 집 없는 영세서민 등 임차인을 보호하고, 영세서민이 보다 쉽게 주택을 장만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함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간 20여 차례가 넘는 주택가격안정정책이 필요했다고 본다.
최근에는 임차인의 보호를 위하여 임대기간을 최장 4년으로 보장하고, 2년 후의 임대료 인상률도 5%까지만 인상하도록 하였고, 주택의 보유과세(保有課稅)인 재산세, 이전과세(移轉課稅)인 양도소득세와 취득세·등록세, 부유세(富裕稅)인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인상하는 법률을 개정하였다.
그런데, 20억대 전세주택에 사는 500억대 부자에게까지 정책효과가 미치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과도한 보유과세, 이전과세, 부유세의 인상효과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전국에는 공공임대 300만호, 민간임대 580만호, 자가 점유 1,200만호가 있는데, 임대주택은 다주택자가 제공한다.
결국, 다주택자들이 세금인상분이나 임대료 억제부분을 자신이 다 감당하지 아니하고, 종국에는 집 없는 임차인에게 전가하게 될 것이다. 이는 보유세 실효세율과 그 효과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은 종전 실효세율이 0.16%, 미국 0.7%, 뉴저지 주 2.38%인데, 실효세율이 높은 뉴저지의 경우 그 증세액이 주택 가격으로 전가되어 집값 폭등이 여전하고, 투기가 판치는 문제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규제의 역설로 다주택자가 신규 공급주택의 매수를 회피하고, 그로 인하여 주택건설업자의 주택분양이 어렵게 되며, 종국에는 주택공급이 급감하고, 그 결과 주택시장에서 공급보다 수요가 월등히 많은 초과수요 현상이 나타나면 주택 가격은 다시 폭등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영세서민이 더욱 어렵게 됨을 경계할 일이다.
따라서 국가는 청년, 영세서민에게 국민주택규모(전용15~18평) 주택의 공급을 대폭 확대하고, 영구 및 장기임대주택도 많이 지어 서민들이 주거비 부담 없이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하는 서민주택정책과 희망사다리 마련에 진력해야 한다.
그 외 민간주택 부분은 당연히 자율적인 주택시장에 맡겨야 할 것이다. 아울러 많이 가진 자를 규제한다고 자칫 서민도 같이 죽이는 것은 아닌지? 최근 중국인들이 제주에서 시민권을 받아 자유롭게 서울 강남의 고급아파트에 싹쓸이 투기하는 역차별은 어떻게 할 것인지? 작금의 서울 강남을 비롯한 시민들은 과거의 연탄아궁이 아파트보다는 호텔급 주택수요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주택수요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정권을 초월하는 도시계획과 장기적인 주택정책의 입안과 지속적인 실행! 그것이 산허리를 지나가는 구름이 바람과 어울려 물이 필요한 곳에 비를 내리는 이치이다.
[경력]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